미니멀리스트 부부의 미술관 같은 집

외부와 담담하게 마주한 간살 도어를 열고 들어가면 디자이너 부부의 선명한 취향과 관점이 포개진 공간을 마주한다.


파주의 드넓은 논밭 사이에서 낯설고 이질적인 까만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디자이너 핸드백 브랜드 ‘세이모온도’를 이끄는 두 대표, 사현진&강수연 부부가 지난해 에이라운드 건축사 사무소 박창현 소장과 함께 완성한 작업실 겸 집이다. 패션 종사자 대부분이 그러하듯 줄곧 강남 한복판에서 지내온 부부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인 시대에 더 이상 도심에 지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과감히 남편의 고향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전원주택에서 흔히 볼 법한 넓은 정원도, 사면을 아우르는 창도 내지 않은 채 그들만의 공식으로 공간을 채웠다. 미니멀리스트 부부의 모던하고 간결한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같은 온도’라는 뜻인 브랜드명처럼, 두 사람은 취향이 일치하나요?
강수연(이하 강) 원래 무척 달랐는데, 10년 가까이 함께 브랜드를 이끌며 일하다 보니 점점 비슷해졌어요. 남편은 현실적인 성향에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하는 반면 공상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의 저는 쿠튀르 브랜드를 좋아해요. 유일하게 둘 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장 미셸 바스키아인데, 그의 예명이 ‘세이모’라는 걸 알았죠. ‘세이모온도’는 온도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같은 온도를 나누며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에요.

미술관처럼 건물이 모던해요. 이곳을 지으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큰 그림은 저희가 그렸는데, ‘블랙’과 ‘뮤지엄’의 두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풀어냈어요. 블랙은 둘 다 좋아하는 색인 데다 싫증이 났더라도 다시 좋아지는, 언제든 취향이 회귀할 수 있는 성질이 있잖아요. 외관을 블랙 콘크리트로 마감한 덕에 캄캄한 밤에는 아예 집이 없는 것 같은 점이 재밌어요. 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외딴섬 같은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길 바랐고요. 남향으로 더 많은 창을 낼 수도 있었지만, 외부 시선이 차단되길 바랐죠. 1층과 2층은 작업실 겸 창고로 3층은 주거 공간으로 설계했는데, 거실 전창 옆의 외벽을 길게 빼 밖에서는 테라스를 볼 수 없도록 만들어요. 사현진(이하 사) 저희 부부는 사생활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예전에도 사무실 창을 모두 페인트로 칠해 외부 시선을 차단한 적이 있어요. 임대 건물이어서 나중에 변상했지만요(웃음). 이곳에 오면 긴장된다거나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지만, 저희는 마음에 들어요.

그림이나 오브제로 꾸몄을 법도 한데, 불필요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는 간결한 인테리어가 돋보여요. 마치 쇼룸처럼 생활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단정하네요.
디테일을 최소화한 미니멀 주택이 되길 바랐어요. 모든 공간을 선과 면으로 구성했어요. 내부 조명은 모두 매립했고, 스위치도 벽 색에 맞춰 칠했죠. 콘센트는 아래쪽에 배치하고, 문은 최대한 천장에 닿도록 길게 만들어 시선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공간으로 꾸몄어요. 정리 정돈은 즉시 하고, 최대한 오래 쓸 물건만을 구입했죠. 그리고 저희는 잘 버려요. 불필요한 물건은 바로 버리죠. 남편이 워낙 깔끔한 성격이에요.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이젠 저도 잘 버리게 됐죠. 청소는 로봇청소기의 도움을 받아요(웃음). 자연 풍경이 그림이나 마찬가지니 따로 그림을 걸 필요가 없었죠. 가구 욕심도 없어서 연애할 때 구입한 테이블을 10년 가까이 썼어요. 얼마 전 토비아 스카르파의 암체어를 구입했는데, 배송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물건이든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기 전에는 구매를 자제하는 편이에요.

이곳으로 온 뒤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매일 콩벌레를 볼 수 있다는 점? 이제껏 살아온 도심, 아파트와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 재미있어요. 매일 먹던 배달 음식을 주문할 수 없고, 마트도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죠. 외식을 하고 싶을 땐 좋아하는 동네인 연남동으로 가요. 게다가 회사 물류 창고가 가깝고 소음이 없어 작업하기도 좋다 보니 전보다 일을 훨씬 많이 해요. 반려견 ‘호’와 ‘랑’이는 자유롭게 뛰놀 수 있어 훨씬 건강하고 활달해졌죠.

흔히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누리기 위해 도심을 떠나잖아요. 이곳에 정착한 이유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특이하네요.
온라인으로 저희 브랜드를 접하는 사람이 많아서 생산 공장, 물류 창고와 근접성이 좋은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까웠죠. 세이모온도를 론칭한 2012년 초에 W컨셉, 29CM 같은 온라인 편집숍이 생겨났어요. 저희는 전략을 세웠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국내외 온라인 커머스를 받아들였어요. 티몰, 샤오홍슈 등 중국 플랫폼에도 진출했고,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죠.

부부가 함께 일할 때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만족스러운 디자인을 완성할 때까지 피드백을 정말 많이 주고받아요. 초반에는 자주 싸웠지만 지금은 서로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선뜻 디자인을 변경하기도 해요. 가끔은 “이게 디자인이냐” 하면서 촌철살인도 서슴지 않죠. “이건 인정”이라는 반응이 나올 때까지 합의점을 찾아나가요.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일상에서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가장 인기 있었던 ‘장미’ 디자인의 가방은 제가 자주 선물하던 장미 한 송이를 형상화해 만들었어요(웃음). 저희는 24시간 함께하지만, 둘의 작업 공간이 명확히 분리되는 걸 선호해요. 아내는 3층에 자리한 집의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고, 저는 주로 2층 작업실에서 하죠.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나요?
저희는 무언가 배우거나 활동해야 에너지가 생기는 타입이에요. 가만 있으면 더 침체되고 우울해지거든요. 브랜드 일 이외에 저는 지금 여성 기업가들과 모임을 이어가며 각자의 경험을 모아 책으로 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어요. 건축에 흥미를 느낀 남편은 저희의 정체성이 담긴 공간 디자인을 구상 중이에요. 업무 시간 외에는 각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얻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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