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시골 책방입니다

≪시골책방입니다≫를 펴낸 작가 임후남은 2년 전 용인 사암리에 책방 ‘생각을 담는 집’을 열었다. 건물 2층에는 부부가 거주하고, 1층은 북 카페, 3층과 4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나이 들어 한적한 곳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소박한 꿈을 실현한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시골 책방에서는 도심의 큰 서점이나 인터넷 주문에 익숙한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뭉근한 담소와 정이 오간다. 부드러운 연둣빛 나뭇잎이 한결 선명해진 여름의 문턱에 책방을 직접 찾았다.


조용할 줄 알았는데, 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네요.
입구 쪽 창가에 앉아 있던 두 분은 어젯밤 게스트하우스에 머문 손님이에요. 다른 숙박업체처럼 오후 3시 체크인해서 다음 날 12시에 체크아웃하는 시스템인데, 그사이 이곳 1층 북 카페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죠. 게스트하우스는 오롯이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일부러 책을 갖다 놓지 않았거든요. 간혹 북 카페인지 모르고 차만 마시러 오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책을 보거나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와요.

직접 큐레이션한 책들로 서가를 채웠다고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책들인가요?
시집과 인문 교양서 위주예요. 개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도 있죠. 여기까지 책을 사러 오는 손님들은 베스트셀러를 원하는 분들이 아니에요. 책을 고르는 자기만의 취향이 뚜렷한 분들이 대부분이죠. 혼자 오는 손님도 많아요. 독서는 철저히 개인의 내면화된 행위잖아요. 어떤 분은 아침 10시 반쯤 문 열자마자 오셔서 한 권 고른 다음 늦게까지 그 책을 다 읽고 가기도 해요. 그러라고 만든 공간이라 그런지, 여럿이서 온 손님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고요.

작은 시골 동네 서점치고는 서가의 규모가 꽤 큰데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웃음). 제가 직접 읽어보고 좋았던 책 위주로 주문하지만, 물리적으로 다 읽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서평이나 리뷰를 끊임없이 찾아 보고 참고해요. 또 저희 책방은 용인시에서 운영하는 ‘희망도서 바로대출’ 협약 서점으로 지정되어서, 동네의 도서관 역할도 하고 있어요. 관내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서점을 지정한 뒤 도서를 신청하면 저희가 그 책을 준비해서 대출해주는 방식이에요. 시민들의 책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서점을 활성화하기 위해 용인시에서 처음 도입한 시스템으로 알고 있는데, 꽤 괜찮은 제도더라고요. 동네에 ‘저기 카페에서 책도 빌려준대’ 이렇게 소문이 나서 호기심에 들르는 분도 있고, 한적한 동네에 소소하나마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웃음).

젊은 시절엔 신문사와 잡지사, 출판사를 두루 거치며 내내 도시 생활을 이어왔다고요.
저는 출판 일을 오래 했고, 남편은 CBS 보도국 방송기자 출신이에요. 늘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살았고 일의 특성상 남들보다 문화나 트렌드를 더 많이, 빨리 접했죠.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남편이 퇴직하고 나서 일상이 크게 바뀌었어요. 매일 한두 시간씩 차를 타고 출퇴근할 일도 없어지고, 소위 핫하다는 공연이나 전시를 보지 않아도 일상에 크게 지장이 없게 된 거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집에 대한 관점과 태도도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시골로 이사를 결심했어요.

결국 오랜 도시 생활 끝에 다다른 집이군요.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닐 때 살던 곳은 주상복합 건물이었는데, 지하에는 식당이 즐비하고 바로 앞에 유명 백화점이 있었어요. 안에는 대형 서점과 영화관, 커피숍 등 없는 것이 없었고요. 그 당시만 해도 시골에 산다는 건 막연하고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 같았죠. 명품 핸드백을 한 손에 들고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시골에 살고 싶어”라고 별 의미 없이 말하는 그런 꿈요(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창 바쁜 시절 저는 시간만 나면 집 떠날 궁리를 했던 것 같아요. 쉬기 위해 떠나는 거죠. 아이를 앞세워 서울 곳곳, 전국 방방곡곡, 제주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다녔어요. ≪아이와 길을 걷다 제주올레≫ ≪아이와 여행하다 놀다 공부하다≫ 같은 책들이 그렇게 나왔고요(웃음). 나중에는 여행하고 싶은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 이제 진짜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오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은 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지더라고요. 그즈음부터 남편과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하다가 여기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건물치고는 제법 규모가 크죠. 전 주인이 원래 갤러리를 하고 싶어서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층 층고가 아주 높은데 이 건물을 보자마자 한쪽 벽면을 높은 서가로 만들면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그래서 가진 예산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덜컥 계약을 했고요.

많은 것 중에 하필 ‘책방’을 선택한 이유는요?
신문사와 잡지사, 출판사를 거치면서 평생 책을 다루고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게 꼭 일이어서라기보다는 정말 책을 좋아했거든요. 잡지나 신문을 보면 신간 소개 코너가 있잖아요. 시니어 기자가 되면 보통 그런 단신 코너를 잘 안 맡는데, 저는 팀장이 돼서도 신간 코너를 담당했어요. 후배들한테 “신간은 나한테 넘기고 너희들은 다른 기사 써” 하곤 했죠. 보도 자료가 워낙 잘 쓰여 있기 때문에 굳이 일일이 다 읽을 필요도 없는데, 저는 관심 가는 책은 꼭 직접 읽어보고 서평을 쓸 정도로 책을 좋아했어요. 여기 꽂힌 낡은 책과 잡지도 다 그때 봤던 것들이고요. 지금도 그 습관이 남아서 되도록이면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누가 책 좀 골라 달라고 하면 신나고요(웃음). 잡지나 신문의 신간 코너는 길게 쓰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누가 “책 추천해 주세요” 하면 제가 느낀 것들을 마음껏 다 얘기할 수 있어서 훨씬 좋아요. 적성에 맞나 봐요.

게스트하우스도 함께 운영 중이죠?
남는 공간이 아까워서 활용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좋았던 여행지를 생각해보니, 여기처럼 숲에 둘러싸인 곳에 갔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더라고요. 바다를 보는 게 좋았다면 아마 저희 책방은 바닷가 근처에 있었을 거예요.

북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정원 텃밭까지 관리하려면 두 분 일손으로 부족할 것 같아요.
남들은 은퇴하고 부부가 온종일 붙어 있다 보면 싸울 일만 는다는데, 저희는 그럴 일이 없어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마주 앉아 있을 시간이 거의 없거든요(웃음). 남편은 회사 다닐 때는 집안일을 전혀 안 했어요. 가부장제 남편의 전형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관리실에서 다 고쳐주고, 설거지와 빨래는 기계가 다 하니 할 필요조차 못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는 이틀 정도만 게으름을 부려도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요. 아마 평생 할 가사 노동을 이사 와서 2년 동안 다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몸은 훨씬 가뿐하다고 해요. 육체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공간을 손수 하나하나 돌보는 성취감이 꽤 크더라고요.

시골 책방을 연 뒤 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이사하고 첫날밤 자고 일어났는데 정말 개운한 거예요. 몸 어디 한 군데 찌뿌드드한 곳이 없었어요. 주변이 온통 숲인 데다 이 건물이 2층부터 4층까지 전부 황토로 지어졌거든요. 서까래 같은 건 양양에서 직접 가져온 소나무를 제재해서 만들었고요. 겉은 일반 양옥 건물인데 내부는 완전 한옥처럼 지어진 셈이죠. 그래서인지 수면의 질이 엄청 높아졌어요. 또 하나는 식습관인데, 고기 말고는 웬만한 식재료는 거의 자급자족한다고 보면 돼요. 특히 남편은 고기 없이 식사를 안 할 정도로 육식파였는데, 여기 와서 채소를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 잘 먹고, 잘 자는 것만큼 큰 변화가 있을까요?(웃음)

시골살이에 로망을 지닌 사람도 많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는 의견도 많아요.
운이 좋게도 저희는 시골살이가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마을 사람들이 정말 좋고 잘해주시거든요. 올해 초 독서 모임을 하는데 한 사람이 “보통 책은 인터넷에서 주문하거나 근처 도시로 가는데 이런 시골 마을에 책방이 있어서 놀랍고 신기했다”고 하니 점잖게 앉아 계시던 주민 한 분이 대뜸 “우리 동네입니다” 하시더라고요. 그날 독서 모임에 처음 참석하신 분인데, 모종의 자부심 같은 게 느껴지는 한마디였어요. 아마 흔한 음식점이나 베이커리 카페였으면 이 정도로 환영받지는 못했지 싶은 생각은 들어요. 마을 이장님도 저희 공간을 특별하게 생각하시고, 풋내기 농사꾼인 남편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최근 출간한 책 ≪시골책방입니다≫에도 방문객들의 소소한 일화가 참 따뜻하게 담겼더군요. 이런 곳에서 하루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읽어주셨다니 되려 고맙네요. 시골이다 보니 아무래도 동네에 연세가 높은 분들이 많이 살아요. 손주들을 데리고 종종 방문하시죠. 동네에 손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정말 좋다고 하세요. 또 몇몇 주민분들은 독서 모임에도 오시고요. 코로나로 인해 몇 달간 모임이 끊겼는데, 그 전까지는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에세이 창작 등의 모임을 꾸준히 가졌어요. 주말에는 저자나 연주가를 직접 초대해 북토크나 공연 등을 열고요.

시인 조은, 박지웅, 문태준, 소설가 임재희, 백민석, 작가 정혜신·이명수 부부 등 책방을 다녀간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특히 이병률 시인과의 인연은 각별하다고요.
이병률 시인과는 오랜 친구인데, 책 «시골책방 입니다≫에서도 그렇고 제가 너무 많이 팔아먹어서 미안할 정도예요(웃음). 그뿐만 아니라 여기 와주신 모든 작가, 연주가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죠. 시골 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작가들에게 섭외 메일을 쓸 때예요. 그분들의 강연료나 바쁜 스케줄을 빤히 아니까 더 어렵고 망설여지더라고요. 백 번쯤 고민해서 메일을 보내는데, 고맙게도 흔쾌히 허락해주고 혹여 거절의 답변이라도 얼마나 고심하고 보냈는지 느껴져서 제가 다 울컥할 정도예요. ≪슬기로운 화학생활≫을 쓰신 김병민 작가님이 “시골 책방이라서 갑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딱 그런 마음으로 와주시는 분들이에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겠죠.
‘생각을 담는 집’이 그런 곳일 것 같네요. 연인과 와도 좋고, 친구와도 좋고, 혼자여도 좋지요. 아이를 데리고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아요. 아이랑 일일이 눈 마주치며 좋아하는 그림책을 골라주는 부모를 보면 참 좋더라고요. 그렇게 종일 북 카페와 정원에서 놀다가 깜깜한 여름밤에 모닥불 피워놓고 앉아 있으면 얼마나 운치 있는데요. ‘불멍’만 해도 저절로 힐링이 될걸요? 타이밍이 좋으면 신청하신 분들에 한해 최고급 시즈닝을 가미한 바비큐도 맛볼 수 있어요. 올여름은 유난히 더울 거라고 하는데 시원한 숲속 책방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로 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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