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컬렉팅을 시작한 이들에게

공들여 수집한 예술품으로 타인의 취향을 가꾸도록 돕는 아트 숍 디렉터들, 그들이 말하는 컬렉팅 그 이상의 기쁨.


스피크이지썸띵 @speakeasy_something
이리아 대표

비밀스러운 아지트를 연상시키는 공간에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리지널 포스터부터 판화, 원화까지 다채로운 작품이 자유분방하게 놓여 있다. 시각적 즐거움이 가득한 스피크이지썸띵은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국내 최초의 포스터 숍에서 수년간 디렉터로 일해온 이리아 대표의 갤러리 겸 작업실. 오랜 세월 한 점씩 모아온 그림과 전속 계약을 맺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주소도 오직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서만 알려주고, 하루 방문객도 3팀을 넘기지 않는 점. 방문객에게 꼭 맞는 작품 하나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 조각상들과 예술 서적 사이에 놓인 위스키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포스터, 판화, 원화까지 컬렉션이 다양하다.
오랜 꿈이 화가였고,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회화를 무척 좋아하는 미술 학도로서 장 드뷔페, 게르하르트 리히터, 피카소 같은 좋아하는 거장들의 포스터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컬렉터의 길로 들어섰다. 본격적으로 컬렉팅을 시작한 이후에는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의 소규모 옥션을 다니며 소장 가치가 높은 포스터를 하나씩 모아왔다. 이곳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거의 한 점씩밖에 없고 해외 빈티지 포스터 컬렉터에게 연락해 공수해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점차 국내 젊은 작가들의 원화 비율을 늘리고 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최근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에 대해 공부하며 여러 웹사이트를 서치하던 중 작가의 포스터를 소장한 사람의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셀러가 아니었지만 바로 메일을 보내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는데, 과거에 안젤름 키퍼의 전시 포스터를 직접 디자인한 디자이너였다.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운 좋게 석 점을 구할 수 있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공유하고, 컬렉션이 풍부하게 채워지는 경험이 마냥 즐겁다.

포스터나 그림을 제안하는 일을 해오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베티’라는 작품이 그려진 포스터를 구매한 손님이 있었는데, 그 포스터에 매료되어 가게의 이름까지 ‘베이커 베티’로 바꿨다. 내가 제안한 작품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은 것 같아 무척 뿌듯했다.

본인의 컬렉션 방향을 정의한다면?
컬러나 스타일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그림을 좋아한다. 작품을 걸 때도 틀에 박힌 배치는 피한다. 예를 들어 시그마 폴케, 도널드 저드 같은 작가의 그림 옆에 한국의 젊은 작가 그림을 놓아도 어색하거나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지는 조합을 추구한다.

국내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작가와 관람객의 매개 역할을 고민하던 차에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고 발굴하는 갤러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밀레니얼 세대의 작가들은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고 좋은 이미지를 많이 접하며 자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도 작업 방식도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정수정, 김지용, 홍해은 등 고유의 예술 세계를 펼쳐가는 작가들의 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판단해 전속 작가로 계약해 크루를 결성했다. 최근에는 손으로 직접 수를 놓아 다양한 작업을 하는 박찬수 작가와는 함께 에디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가의 작업 방식에 스피크이지썸띵의 색을 더했다. 국내 작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추후에는 해외 아트 페어에 참여해 동시대 한국의 미술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는 이들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와 투자는 다르기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그림을 살지 결정해야 한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사기보다 늘 곁에 두고 보고 싶은 작품을 먼저 구매해보길 추천한다. 요즘 취향이 좋은 사람이 너무 많다. 취향이 좋다는 건 고급스러운 걸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걸 좇는 것이라 생각한다. 컬러, 레이아웃, 공간의 분위기 등을 고려해 진정 마음이 동하는 작품을 발견해보길 바란다.


샤비워크샵 @shabi_work_shop
김성민 대표

예쁘게 다듬은, 비슷한 이미지가 만연한 포스터 시장에서 샤비워크숍은 조금은 난해하거나 개성적인 현대미술 작가와 사진가의 이미지를 소개한다. 풍부한 수집 덕에 지난해 문을 연 뒤 아라키 노부요시, 렌항처럼 독자적인 색을 지닌 사진가의 작품은 물론 데이미언 허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거장의 작품 외에도 무려 150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을 제안해왔다. 최근에는 세계적 사진작가 볼프강 틸먼즈의 주도 아래 포스터를 판매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창작에 어려움을 겪는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2020 Solidarity’ 프로젝트에 한국 공식 셀러로 참여했다. 이렇듯 아트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구축 중이다.

홈페이지와 아르떼22 갤러리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흥미롭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어떻게 쌓아왔나?
일본에서 사진 공부를 한 뒤 도쿄도 사진 미술관 수장고에서 1만5000점의 이미지를 다뤄왔다. 그때 자연스레 안목이 체화되었던 것 같다. 또한 저작권과 관련한 일을 해오며 점차 국내에도 예술 작품을 컬렉팅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느꼈고, 다양한 이미지를 제안해보고 싶어 컬렉팅을 시작하게 됐다. 포스터를 시작으로 원화, 판화의 비율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컬렉팅 기준은 무엇인가?
작가의 철학과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는 현대미술 작품과 1960년대 이후의 사진 작업을 선호한다. 그 시기에 사진이 현대미술사적 관점에서 인정을 받고, 이후 다양한 표현 방식을 지향하는 작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점씩 소개할 때마다 이미지 너머 작가의 주제 의식을 나누는 일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요시모토 나라의 그림을 소개할 때는 작가가 전쟁의 참상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 의도까지 알리고자 한다.

포스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예비 컬렉터라면 자기 취향을 분명히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만큼 값비싼 작품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포스터를 수집하는 일은 한 작가의 히스토리를 따라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리지널 감수를 마친 포스터는 작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양한 작품을 발굴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끝없는 디깅?(웃음) 전 세계 소규모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일정과 작가들을 계속 주시하고, 작가와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최근 루이 비통과 협업한 차바랄라 셀프도 뉴욕 출신의 신예 작가인데, 자랑이지만 발 빠르게 소개해 어느 컬렉터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최근 현대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의 포스터를 어떻게 빨리 구할 수 있냐며(웃음). 원화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포스터로 구하니 신기해하는 사람이 많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자면?
지난해 출장차 방문한 뉴욕에서 한 사진작가의 작업실을 들른 적이 있다. 얘기를 나누다가 작가가 내 초상화를 찍어주었는데, 세상에 오직 한 점뿐인 사진이라 매우 특별하고, 볼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이후에 샤비워크샵의 지향점을 고스란히 담은 에디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했다. 해외로 나갈 수 없는 요즘에는 유학 시절 만난 친구들이 특파원 역할을 톡톡히 해줘서 고맙다(웃음). 독일, 영국 등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이 전시 시즌에 맞춰 내가 빈티지 컬렉터들에게 오더한 작품을 공수해준다.

일반인이 좀 더 쉽게 컬렉션을 만나는 방법은?
8월 2일까지 ‘2020 Solidarity’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바삐 보낼 것 같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예술계를 위해 제프 쿤스, 윌리엄 이글스턴 등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 50인의 포스터 구입을 통해 기부에 동참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 아시아까지 확장되고 있는데 한국 참여 단체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식물관PH에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워크숍을 열고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컬렉팅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누구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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