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속의 사유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꽤 여러 공간을 이웃들과 나눠 써야 한다. 코로나 이후 엘베에서 만난 이웃이 반갑지만은 않고, 커뮤니티센터와 놀이터가 폐쇄된 것도 이런 이유다. 수많은 뉴 노멀의 기준 속에 아파트 정원은 또 다른 욕망의 프리미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아크로리버하임의
모던 테라스

집 가까이에 공원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집 안에서 누리는 ‘자족 자연의 영역’이 필요한 시대다. 그렇다고 모두가 도심 외곽에 마당 딸린 집을 짓고 살 수는 없는 법. 요즘 신축 아파트에서 흔히 보이는 ‘테라스 세대’는 효율성과 편리함을 극대화한 한국식 아파트 라이프에 인간의 자연에 대한 욕구를 접목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서울 아파트들은 외관과 구조만 봐도 몇 년도쯤에 지어졌는지 알 정도로 유행을 타잖아요. 단독주택에 살 엄두는 안 나고,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 살기도 싫어서 일부러 테라스 세대가 있는 아파트 청약만 노렸어요. 비슷한 시기에 분양한 옥수동과 삼각지의 신축 아파트 청약에 떨어진 뒤 운 좋게 만난 곳이 이 집이죠.” 지하철 9호선 흑석역 바로 앞에 있는 아크로리버하임은 한강 남단 지역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프리미엄 신축 아파트 단지 중 하나로,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다는 파노라마 한강 조망이 가능하다. 입주 당시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동과 단지 안쪽의 테라스 동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과감하게 한강 조망을 포기하고 테라스를 선택했다. “요즘은 외출 자체가 조심스럽잖아요. 이런 생활 패턴은 앞으로 지속될 것 같고요. 넓지는 않지만 두 아이가 테라스에서 물감 놀이도 하고, 식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잘했다 싶어요.” 면적이 넓지 않다 보니 조경 시공에는 1000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 철마다 시장에서 꽃을 사다 심고, 좋아하는 나무를 한 그루씩 늘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같은 단지에 사는 아이 친구 엄마는 종종 ‘죽어가는 화분’ 좀 살려달라며 테라스에 놓고 가기도 한다. “물을 자주 줘야 하는 것이 가끔 번거롭지만, 은근히 또 힐링이 돼요.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한강 보이는 집이 지금 우리 집보다 값이 더 올랐다는 얘기를 들으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집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 완벽히 독립된 공간에서 육퇴 후 즐기는 혼맥이 일상의 가장 큰 힐링이거든요.” 아파트 정원은 때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연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의
프라이빗 정원

‘역세권’에 견줄 만한 프리미엄으로 ‘숲세권’이 꼽힌다. 숲=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코로나 시대에는 3000㎡의 공원을 999개로 쪼개 집집마다 3㎡의 마당이나 테라스를 주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이 보여주듯, 최근 아파트에서도 정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도시의 성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오래된 비밀 정원을 품고 있다. 올해로 지어진 지 43년, 총 122동 5540세대의 거대한 공동주택단지다. 단지 내에 하천(성내천)이 흐르고 단지 가운데서 바깥으로 갈수록 동의 층고를 높여 조망권을 확보한 방사형 배치,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필로티 구조를 적용해 독특한 외관을 완성한 점 등은 아파트도 충분히 건축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각 동의 1층에 딸려 있는 제각각 다른 구조의 정원은 올림픽선수촌아파트의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단층뿐 아니라 층고가 높은 듀플렉스 평형도 있는데 90년대 당시 꽤 이국적인 느낌으로 인기가 높았다. “어떤 집은 독립적인 앞뜰과 뒤뜰이 있는 반면, 어떤 집은 앞뜰만 있기도 하고 또 뒤뜰이 공동 정원처럼 구성된 세대도 있어요. 실내 구조도 물론 다르고요.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구조를 일일이 확인하고 취향껏 선택할 수 있어요. 골라 사는 재미가 있죠(웃음). 완벽하게 독립된 정원이 앞뒤로 있는 이 집이 나왔을 때 고민 없이 구입했어요. 1층은 대부분 자기 정원을 가꾸며 사는 분들이 살아서 매물이 거의 안 나오거든요.” 펜스를 올리고 사과나무와 살구나무 등을 심어 외부 시선을 차단했다. 또 계절별로 피고 지는 꽃들을 다양하게 배치해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집 정원의 특징. 최근 신축 아파트의 관상용 가든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농익은 완성형 프라이빗 정원이라 할 수 있다. 며칠만 방심해도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제거와 물을 자주 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정원이 주는 안정감과 만족감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노동일 뿐이다. 벌레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받이창의 빈틈을 메운 것도 정원을 가꾸며 얻은 노하우다. “가장 좋아하는 뷰는 마스터룸의 통창으로 보이는 정원이에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녹색이 한가득 들어와요. 남편과 아이는 정원 테이블에 앉아 듣는 빗소리를 가장 좋아하고요.” 아파트의 프라이빗 정원은 ‘집’이라는 공간을 완벽히 ‘시간’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용인 이스트팰리스의
럭셔리 루프가든

흔히 아파트의 프라이빗 정원이라고 하면 테라스 또는 1층 정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옥상이다. 그 위로 더 이상의 주거 세대가 없는 아파트 꼭대기에는 종종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는데, 용인 이스트팰리스의 루프가든이 대표적이다. “1층의 정원이 안정감을 준다면, 루프가든은 ‘특별함’을 선사해주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만족감도 크지만, 지인들을 초대해 짠 하고 공개했을 때의 반응도 즐겁고요(웃음). 웬만한 좋은 식당보다 훨씬 근사한 분위기를 낼 수 있거든요. 보통 아파트의 프라이빗 정원 하면 1층이나 테라스를 떠올리는데, 옥상에 이렇게 개인 정원이 있다는 것에 다들 놀라죠. 무엇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활동량이 늘어서 만족스러워요.” 133㎡(40평) 정도 규모의 루프가든은 개인의 취향을 100% 반영한 조경과 리조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급스러운 아웃도어 퍼니처로 꾸민 근사한 야외 라운지로 구성돼 있다. 그 옆에는 바비큐 그릴이 있다. “건물 밖으로 산책 나가는 것조차 귀찮을 때는 정원을 거닐어요.” 루프가든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취향에 따라 작은 월풀 스파를 매립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 이토록 완벽한 옥상을 꾸미는 비용은 얼마 정도일까. “이 정도 규모면 최소 5000만 원 선에서 시작하는데, 저희는 대략 1억 원 정도 들었어요. 관리는 전문 조경업체에 맡깁니다. 1년에 200만~300만 원을 내면 월 1~2회 방문해서 계절에 따라 월동, 제초, 방제 작업 등을 해주죠. 그래서 규모는 크지만 관리 부담은 별로 없어요.” 내 삶과 가족의 일상이 특별해지는 데 드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만족도는 더욱 올라간다. 정원이 좋은 이유는, 계절에 따라 뚜렷하게 모습을 바꾸는 풀과 나무가 주는 생명력이다. 거실에서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이라는 말을 절로 실감할 수 있다고. 100% 자연 채광은 정원에서 반사돼 실내 공간까지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편리함은 편리함대로, 자연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그것대로 누린 경험 덕분에 집에 대한 선택 기준도 완전히 달라졌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더 큰 식물을 가꾸면서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광교 파크자이더테라스의
마당 같은 테라스

정원과 테라스에 대한 욕망을 그대로 대변해 아예 아파트 전 세대에 테라스를 도입한 아파트도 있다. 광교 파크자이더테라스는 총 268가구로, 집집마다 평균
99㎡ 크기의 테라스 정원이 딸려 있다. 테라스라기보다는 ‘마당’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집집마다 테라스의 레이아웃이 제각각이다. 잔디를 깔아 마당과 텃밭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나무 데크를 깔아 야외 카페테리아 분위기를 낸 집도 있다. 거대한 고무 풀장을 설치한 집들도 눈에 띈다. “어릴 때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았는데, 그때의 좋은 추억 때문에 저희 아이들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키우고 싶었어요. 이 단지가 광교택지개발지구의 가장 끝 쪽에 있는데, 그래서 바로 뒤가 산이에요. 지형적으로 완벽한 배산임수라고 해서 청약 경쟁도 꽤 높았어요. 정원 가꾸는 일에 비교적 익숙하기도 해서 입주 후 만족도는 아주 높은 편이에요.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 여기로 오길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다들 아이들과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저희는 테라스 정원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보냈거든요.” 인공 지반이다 보니 물을 거의 매일 줘야 하고, 가지치기나 잡초 제거 등 손 가는 일이 제법 많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놀이처럼 아이들과 함께 한다. 특히 공동주택 내의 정원이나 테라스에 관한 건축법상 제약은 잘 알아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종종 테라스 정원을 개인 주택의 정원과 착각하는 분이 있어요. 공동주택 내의 정원에서는 화목난로를 사용할 수 없고, 기둥이 있는 루프어닝은 설치가 불가해요. 또 통유리로 펜스처럼 사방을 막는 것도 불법이고요. 처음에는 잘 몰라서 실수하는 집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정화돼서 거의 없어요. 우리 집만 있는 것도 아니니 밤늦게는 가급적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아파트 내 주민들과 적당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사는 것도 큰 매력이다. 같은 단지에 사는 아빠들이 카페를 만들고 주말이면 9인승 승합차로 단체 ‘꽃시장 투어’에 나서기도 한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여느 아파트들과는 다른 적당히 견고하고 느슨한 연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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