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집에 대한 새로운 가치

도시와 집에 대한 새로운 가치
건축은 도시를 이해하는 핵심 도구다. 또한 건축에서 파생된 공간은 인간의 사유를 지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다. 공간과 도시 생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야 새로운 주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거주와 자산 가치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한국의 독특한 주거 문화는, ‘부동산 시장’이라는 뭉뚱그려진 말 위에서 위태롭게 표류하고 있다. 도시 생태를 꿰뚫는 전문가는 혹시 이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을까. 집과 공간, 건축과 도시에 대해 경계 없는 담론을 쏟아내는 유현준 교수에게 뉴 노멀 시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주거 가치에 대해 물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적어도 1~2년간 코로나19와 공생해야 하는 위드코로나(with Corona) 시기가 도래했음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생활 패턴이 정착되고 있어요.
그러면서 가장 주목받은 공간이 바로 ‘집’이죠.

재택과 언택트가 일상화되면서 일, 여가, 생활을 전부 집에서 해결하면서 집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쾌적한 삶을 위해 1인당 필요한 주거 면적이 늘었고, 집 안의 공간 구성도 기존과 달라지고 있고요. 하지만 집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보다 복합적입니다. GNP(국민총생산)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의와 식을 넘어 자연스럽게 ‘주(住)’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측면도 있어요. 여기에 SNS의 확산이 이런 현상을 부추겼죠. 코로나19 전에는 ‘소비하는 공간’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면, 지금은 ‘소유하는 공간’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집이 ‘공간’이라는 개념보다는 ‘자산 가치’의 관점으로 다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아파트를 중심으로 그런 현상이 극심하고 뚜렷하죠. 집의 속성을 볼 때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부동산은 우리가 구매하는 것 중 가장 비싼 재화에 속합니다. 한 번 사면 결정을 쉽게 번복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가치를 따져야 하죠. 문제는 주거 형태가 너무 단순하고 획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이 일종의 화폐의 기능을 한다는 데 있다고 봐요. 평면도를 보면 전국의 모든 아파트가 거의 비슷해요. 그러니 공간이 가지는 다양한 가치는 무시된 채 환금성을 기준으로 좋은 집, 안 좋은 집을 나누게 된 거죠. 아파트 공급자(건설사)와 수요자, 정책 결정자들이 모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우선 국내 주택 시장은 심각할 정도로 공급자 위주로 짜여져 있습니다. 표준화해서 대량 생산하는 구조예요. 조폐공사에서 돈 찍어내듯 아파트를 짓는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죠. 이들 몇몇에 의해 비슷한 집이 양산되고 있어요. 또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집을 계속 사주는 한 그들은 결코 바뀌지 않을 거예요. 개중 일부는 오히려 이렇게 표준화된 집을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 내부 설계가 독특한 아파트는 ‘취향이 강하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적고, 결국 나중에 되팔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정책 결정자들의 인식 수준이 낮은 게 또 하나의 큰 문제입니다. 공간과 건축,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 딱 집어서 문제다, 아니다를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집 얘기를 할 때마다 제가 좀 화가 나서 정책 비판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죠(웃음).

우선 도시 생태 관점에서 꼭 필요한 공간은 어떤 곳들일까요?

도시 곳곳에 지금의 정방형 공원이 아닌 세장형 공원을 조성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세장형 공원이 연트럴파크예요. 가늘고 긴 형태의 공원을 따라 주택을 짓고 1층은 전부 상업 시설로 구성하는 거죠. 이를 통해 공원에 인접한 세대수를 늘릴 수 있는데, 이런 구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효율적으로 공원, 외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될 거예요. 선형 공원의 또 다른 장점은 공원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옆 동네에 갈 일이 많아지고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점이에요. 공원을 따라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될 거예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실내에서도 각광받는 공간들이 있을 텐데요.
대표적인 곳이 테라스입니다. 제가 공간을 설계할 때 중요시하는 것이 테라스와 창문이에요. 명칭을 정확히 구분하면 위가 뚫려 있고 땅 위에 있는 곳을 ‘테라스’라고 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카페 1층 데크가 대표적이죠. 흔히 베란다라고 부르는 곳은 엄밀히 따지면 발코니인데, 더 정확히는 막힌 곳이 없어야 해요. 건축 용어와 일상에서 체험하는 용어가 달라서 편의상 ‘테라스’로 통칭해서 쓰고 있어요. 제가 강조하는 테라스의 가장 큰 특징은 햇볕을 쬐고, 비와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실내에서도 야외를 경험할 수 있는 ‘사적인 외부 공간’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설계를 하면서 테라스를 넣자고 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그 공간을 아까워했어요. 베란다를 확장해서 실내 공간화하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었으니까요. 실내를 한 평이라도 더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했죠. 하지만 지금은 테라스를 만들자고 하면 다들 흔쾌히 OK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바뀐 풍경 중 하나예요.

고밀화된 아파트를 대체할 대안 공간으로 상업적인 용도의 근생 건물을 꼽았어요. 상업 공간이 주거 공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국내 전체 연면적 중 50%는 주거, 30%는 상업 시설입니다. 그런데 최근 언택트 소비, 온라인 주문, 재택근무가 늘면서 상업 시설의 연면적이 줄고 있어요. 지금은 골목마다 식당이 있지만, 배달 비중이 늘면 굳이 1층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가며 테이블 다이닝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낄 거예요. 지하 공간에 부엌만 두고 장사하는 집이 늘겠죠.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 될 거예요. 도시에서 상업 시설의 연면적이 15% 줄어든다고 치면 근생 건물의 2~4층이 전부 공실인 셈인데, 이렇게 비는 공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제가 이 공간에 주목한 이유는 근생 건물들이 대부분 다 기둥식으로 지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아파트처럼 벽으로 구획을 나누지 않고 뻥 뚫려 있죠. 원룸보다도 훨씬 넓고, 공간 구성도 자유로워요. 천장고도 높아서 개방감도 있고요. 뉴욕 소호의 스튜디오형 주거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주변에 카페나 맛집들도 많아서 1~2인 가구가 딱 살기 좋은 환경이에요. 이런 주거 문화가 정착되면 아파트로만 몰리는 실질적인 수요를 많이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여러 개의 방으로 쪼개진 집에서 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아파트 수요에서 빠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필요한 4인 가구가 들어갈 수 있죠. 선순환이 될 것이라고 봐요.

현재 주택 시장의 과열 양상은 ‘살고 싶은 곳’이 한정적이라는 데에서 온다고 봅니다. 훌륭한 대중교통망, 저가부터 초고가까지 촘촘히 짜인 상권, 공원과 한강 등 모두가 누리고 싶어 하는 자연 환경이 일부 지역에 치중돼 있죠. 이런 것들을 공공이 효과적으로 나누어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서울 압구정역을 예로 들어볼게요. 압구정역에 내려서 한강 시민공원을 가는 길은 복잡합니다. 인근의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야만 갈 수 있어요. 저는 역에서 한강까지 가는 길이 상업가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걷고 싶은 거리, 상점들이 늘어선 가로수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한강에 도착하게끔요. 그럼 애초에 왜 도시 계획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 강남 필지를 구획할 때 한강 주변은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었거든요. ‘한강 고수부지’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한강 주변은 범람하는 곳, 침수하는 곳이었어요. 자세히 보면 그 지역 모든 아파트가 한강을 등지고 있습니다. 남향 배치를 해야 했기 때문에요. 물이 넘치는 지역이니 당연히 상업 시설도 들어갈 수가 없었죠. 그런데 몇십 년 지나 침수 지역이 비싼 동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동네가 된 거예요. 강남 집값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런 동네에 아파트를 높게 지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게 해주고 수요를 어느 정도는 충족해 주는 것이 차라리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 지역의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해결책이 될까요?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부자들이 인프라를 독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조합에서는 법적으로 15%의 땅을 ‘공개공지’로 제공해야 합니다. 아파트 건축에 들어가는 공공의 자원이 있으니 이를 거주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이죠. 의도는 좋은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예요. 시에서 엉뚱한 위치에 공개공지를 받아서 아무도 가지 않는 공원을 만들 것이 아니라, 역에서 한강 시민공원까지 가는 길을 공개공지로 받는 건 어떨까요? 세대수를 1.5배 늘려서 더 많이 살게 해줄 테니 1층은 수영장, 도서관, 공원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개방하라는 거죠. 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도 내려와서 즐길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공간을 조성한다면 그거야말로 자연스러운 소셜믹스가 아닐까요? 진정한 소셜믹스는 익명성이 보상된 상태에서 가능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짜로 강남 집값을 잡고 싶은 거라면 지금과 같은 정책으로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봐요. 관점을 달리해서 여러 차원의 논의를 거치면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이 충분히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새로운 공간의 창출, 도시 생태의 획기적인 전환은 수요자와 공급자, 정책 수립자 모두의 인식이 바뀌어야 가능하겠군요.
맞습니다. 도시 생태, 주택 시장 구조가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위드 코로나 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의 주거 환경과 집 안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테라스가 딸린 집은 늘어나겠지만, 기존 주택에서의 공간의 변화라는 건 결국 넘치는 짐을 줄이고 베란다를 정리해서 화분을 들이는 것 정도가 될 테니까요. 동네 구석구석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두 세 곳 만들어놓는 것도 도움은 되겠죠.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 없이 미래 주거 문화를 논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주거와 주택에 대한 비전을 시민들이 서로 공유하고,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변화를 꿰해야 합니다. 당장 1~2년 안에 나타나는 가시적인 효과는 미미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도시 구조 개혁은 충분히 가능성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사실 앞서 말한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나한테 필요한 주거와 공간은 무엇인지 자기만의 취향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사회가 성숙할수록 자신의 취향을 아는 사람의 비중이 높다고 하잖아요. 주거와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하게는 여행지를 다니면서 펜션, 독채 등을 빌려 실제로 그 공간에 살아 보세요. 그때 얼마나 좋고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는지 계속 스스로 되묻는 것이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알아야만 결국 원하는 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나한테 필요한 주거와 공간은 무엇인지 자기만의 취향을 찾는 것이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자신의 취향을 아는 사람의 비중이 높다. 주거와 주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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