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혜림의 사랑스러운 모먼트

여전히 사랑에 몰두하는 중이지만
무대 위에서 반짝이던 열여덟 소녀는 어느덧 사랑의 단상을 담백하게 풀어낼 만큼 성숙했다.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을 지나고 있는 우혜림의 사랑스러운 모먼트.

혜림은 인터뷰를 하다가 불쑥 가방 속에 있던 자신의 책을 꺼내며 말했다. “제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가지고 다녀서 띠지에 구김이 살짝 갔는데, 괜찮으세요?” 그러고는 능숙하게 사인을 한다. 열여덟 살에 최정상 걸그룹 ‘원더걸스’로 데뷔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저 사인을 수천, 수만 번은 했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올해 7월, 혜림은 태권도 선수 신민철과 7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회의통번역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 중이며, 최근에는 번역서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와 에세이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그녀와 마주 앉았다.

결혼한 지 이제 막 3개월 차에 접어든 ‘초보 주부’예요. 일상이 전과 많이 달라졌나요?
흠, 반반이에요. 생활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계속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틈날 때 글도 쓰고, 지인들도 만나고요. 가장 큰 변화는 아침에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선다는 거죠. 남편도 지금 한체대에서 석사 과정 중이라 둘이 같이 학교에 가거든요. 낮에는 각자 생활해요. 저는 공부를 하든 글을 쓰든 낮에 집중하는 타입이에요. 오늘처럼 촬영을 잡기도 하고요. 그러다 저녁때 집에서 다시 만나 같이 밥 먹으면서 대화도 하고, TV도 보고 그래요. 저희가 아직 신혼집을 못 구했어요. 원래 제가 살던 집에 남편이 들어온 것이라 더 변화를 크게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익숙한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니 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어요. 같은 듯, 다른 듯 묘하게 재미있네요.(웃음)

유튜브 채널 ‘림스 다이어리(Lim’s diary)’에 결혼식 현장을 공개했는데, 굉장히 신선했어요. 연예인들은 대개 결혼식을 비공개로 하니까요.
그런가요? 하하.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고,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많은 분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현재 제 모습을 기록하는 의미도 있고요. 저는 글도 쓰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그때그때 휴대폰에 적어두는 편이에요. 뭘 기록하고 남기는 걸 좀 좋아하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꽤 오래전 일 같아서 지금도 종종 영상을 다시 찾아봐요.

레더 소재를 사용해 쿨한 분위기의 블레이저와 벨티드 디테일 팬츠는 에잇 by 육스 8 by YOOX 스프링을 연상시키는 후프 이어링은 르이에 LEYIE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알파벳 T 모티프 링은 모두 티파니앤코 TIFFANY & CO. 브라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쉽게도 신혼여행은 못 갔다고 들었어요.
당시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진 상태여서 결혼식은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조심스럽게 진행했는데 여행은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쭉 집에만 있었어요. 가족 모임도 최대한 줄이고요. 오래 연애해서 그런지 크게 아쉽지는 않네요.(웃음) 지금은 일과를 마치고 밤에 둘이 영화 보면서 야식 먹는 시간이 가장 좋아요. 신혼 초에 살이 찐다고 하는 이유를 요즘 알 것 같아요. 왜 야식 없이 보는 드라마와 영화는 재미가 없는지 모르겠어요.

한가한 시간에 TV와 책,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요?
저는 당연히 TV! 요즘은 학교나 촬영 같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거의 집에만 있잖아요. 낮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저녁이 되면 무조건 TV를 봐요. 물론 책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쉴 때는 TV가 최고죠. 제가 속독을 못 하거든요.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서 읽는 타입이라 많이 읽지 못해요. 대신 틈틈이 글을 쓰고, 좋아하는 책은 푹 빠져서 깊이 읽어요. 요즘은 우지현 작가님의
«나의 사적인 그림»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림 하나마다 작가만의 감상과 이야기를 풀어낸 책인데, 읽다 보면 꼭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요즘 같을 때 딱이에요.

독서와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나요?
어릴 때는 책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때는 오로지 ‘음악’이 최고였죠. 2007년 열다섯 살 때 JYP 연습생을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쭉 홍콩에 살았어요. 교실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런 아이였고요. 그냥 하루 종일 음악만 들었어요. 마음속에 음악에 대한 열정은 들끓는데, 남들 앞에서는 차마 쑥스러워서 못 보여주고 제일 편한 엄마, 아빠 앞에서만 흥이 폭발했어요.(웃음) 그때는 부모님을 백만 관객이라고 상상하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제가 노래랑 춤을 너무 좋아하는 걸 아시고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죠. 그 덕에 한국까지 혼자 와서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이 된 거예요. 책은 그때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모국이긴 하지만 당시 저한테는 한국 문화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거든요. 아는 친구도 하나 없어서 의지할 데가 책밖에 없었어요. 종교 서적이나 «시크릿» 같은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매일 마음을 다잡았죠. 인상 깊은 문장은 줄을 그어놓고 읽고 또 읽고 그랬어요. 종이에 막 써서 방 여기저기 붙여놓고. 일기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자카드 소재와 다양한 절개 라인이 조화를 이룬 뷔스티에는 앤아더스토리즈 & OTHER STORIES 벨티드 하이웨이스트 팬츠는 에잇 by 육스 8 by YOOX 크리스털 이어커프는 빈티지헐리우드 VINTAGE HOLLYWOOD

평범한 일상 중에 문득문득 느끼는 애정, 고마움, 따뜻함, 감동, 서운함 같은 것들이 다 ‘글감’이 되죠.
그래서 약간 연애편지 쓰듯 쓴 글들이에요.

처음 쓴 책이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이라는 에세이예요. 왜 ‘사랑’을 주제로 정했나요?
요즘 저의 가장 큰 관심사가 ‘사랑’인가 봐요.(웃음) 지난해 우연히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서 책을 내기로 하고 담당 편집자에게 제가 쓴 글을 잔뜩 보내드렸어요. 보시고는 “‘사랑’에 관한 글이 가장 와닿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사랑이나 연애만큼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 드물잖아요. 평범한 일상 중에 문득문득 느끼는 애정, 고마움, 따뜻함, 감동, 서운함 같은 것들이 다
‘글감’이 되죠. 그래서 약간 연애편지 쓰듯 쓴 글들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감정들, 생각들을 담으려고 했어요. 사랑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과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읽으신 분들이 사랑과 관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큰 힘을 얻었죠.

남편 신민철 씨는 혜림 씨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신뢰를 주는 사람요. 남편을 만나고 한 번도 초조함을 느낀 적이 없어요. 신중하고 성실하고 솔직하죠. 제가 막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우혜림’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누구보다 저를 잘 알기 때문에 제가 고민이 있을 때 차분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해. 그래도 돼”라는 말이 참 힘이 되더라고요. 또 저의 타고난 장난기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최측근이기도 하고요.(웃음)

얼마 전 생일에 남편에게 책 100권을 선물 받았다고요.
네, 제 책 100권을 직접 주문했더라고요! 우리 얘기가 담긴 그 책이 너무 좋아서 저한테 그 마음을 다시 전해주고 싶었다고요. 특별한 날에는 좋아하는 초콜릿을 서로 선물하는데, 남편은 초콜릿 상자에서 하나를 꼭 빼고 줘요. 한 번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 준비한 거 티 내기 싫어서”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농담이긴 하지만, 남편은 늘 그런 식이에요. 티 내지 않고 은근히 챙겨주는데, 감동이 훅 차오를 때가 있어요.

남편은 국내 익스트림 태권도의 선구자라 불릴 만큼 운동 실력과 퍼포먼스가 뛰어나잖아요. 또 혜림 씨는 그 유명한 ‘원더걸스’ 출신이고. 운동이든 취미든 둘의 공통 관심사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법도 한데 제가 운동을 정말 안 좋아해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좀 하면 좋겠다 생각은 하지만 전혀 안 해요.(웃음) 너무 안 움직여서 몸이 찌뿌둥할 때 스트레칭을 조금 하는 정도? 연습생 시절부터 체중과 몸매 관리가 필수였기 때문에 운동을 강제로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굳이 안 해도 되니까 하지 말자’ 주의로 바뀌었어요. 식이요법도 따로 안 해요. 그래도 관리는 전혀 안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촬영 있는 날 하루 전에 야식 안 먹고, 아침에 고구마 하나 먹고 나오는 정도예요. 평소에는 야식으로 먹는 떡볶이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학교도 안 가고 일도 없는 날엔 주로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요즘 가장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신박한 정리>예요. 보면서 ‘우리도 좀 정리하고 살자’ 다짐하죠. 옷방 한 곳만 정리하는 데도 2~3일이 걸리더라고요. 최근에 안 입는 옷들을 정리했는데, 산처럼 쌓인 옷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반성했어요. 마침 인터뷰니까 그때 한 다짐을 대대적으로 ‘공언’해야겠네요. 제 생일인 9월 1일을 기점으로 1년 동안 옷과 신발, 가방을 사지 않기로 했어요. 저도 또래 여자들처럼 소소한 쇼핑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옷, 화장품 같은 것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샀고요. 그걸 일 년만 참아보려고요. 오늘까지 열흘 정도는 잘 실천하고 있어요. 하하. 1년이 지나고 저한테 약속 잘 지켰는지 꼭 물어봐주세요!

요즘 한창 신혼집을 찾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집에 살고 싶어요?
제 1순위는 교통이 편리한 동네예요. 운전을 안 하니 지하철, 버스 타기 편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인테리어는 남편에게 맡기려고요. 인테리어나 살림, 요리 같은 것에 아직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인테리어 콘셉트나 디자인 감각은 남편이 저보다 훨씬 뛰어나고요. 저는 이게 예쁘면 사고, 저게 예쁘면 사는 식이라 막상 모아놓고 보면 통일감이 전혀 없고 너무 제각각이거든요. 하하. 오히려 전체를 보고 꾸미는 일은 남편이 잘할 거예요.

곧 서른 살이에요. 무엇을 더 하고 싶나요?
뭘 더 새롭게 하기보다는 지금껏 해온 일들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서 완성도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처음 통번역학과를 갔을 때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통번역사들은 낮게 여러 우물을 파야 좋다고요. 조금씩이라도 알아야 번역이든 통역이든 시도해보고 자기의 전문 분야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너무 공감했어요. 10대부터 20대까지는 낮게 우물을 파는 시기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어떻게서든 다 도전했거든요. 그중에 좀 더 잘하고 싶은 것이 방송과 글쓰기예요. 기회가 된다면 가수든 연기든 예능이든 여러 방향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전공을 살려 통번역도 하고 글도 쓰고요. 지금은 ‘사랑’에 몰두해 있지만 그 다음은 뭘지 저도 궁금하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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