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의 젊은 막걸리

양조장 하면 시골에 있는 황토 집 같은 전통적인 풍경만 떠올린다면 옛날 사람. 다이내믹한 서울의 면면을 닮은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들을 만났다.


C막걸리
주소 서울 강남구 논현로 18 문의 0507-1338-2621

유학 생활을 하면서 생막걸리를 구할 수 없던 최영은 대표는 누룩을 공수해 독특한 부재료와 함께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막걸리 학교에서 제조법을 배우고 집에서 담근 술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다 지난 7월, 시중에는 없는 개성 넘치는 술을 새로운 가양주 문화 콘텐츠로 풀어냈다. 21세기 강남의 동네 양조장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나?
도시에서 만드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컨템퍼러리(Contemporary)’, 다채로운 색의 ‘컬러풀(Colorful)’, 독특한 부재료의 조합 ‘크리에이티브(Creative)’, 전통 막걸리 양조 방식을 따르는 ‘클래식(Classic)’ 등의 의미를 담았다. 비공식적으로는 성이 최 씨인 이유도 있다. 강남 개포동이라는 위치가 이색적이다. 술을 포함한 대부분의 창작물은 만드는 사람의 환경을 담는다. 강남에서 나고 자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결국 나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술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이 동네였다.

C막걸리의 종류는?
지금까지 ‘시그니처 큐베’ ‘퍼플 막걸리’ ‘옐로우 막걸리’ ‘레드 막걸리’ ‘그린 막걸리’ ‘브라운 막걸리’ 총 6종으로 모두 알코올 도수 12%다. 술을 빚을 때 보통 부재료로 색감과 질감을 위한 재료 한 가지, 향을 위한 재료 한 가지를 조합한다. 유일하게 평범한 막걸리 색을 띠고 무난한 맛의 시그니처 큐베가 상시 생산하는 술이다. 주니퍼베리와 건포도를 넣어 범벅 밑술 과정을 거친다. 나머지 다섯 종류는 호불호가 확실하고 시즌별로 생산되는데, 각각 부재료로 블루베리와 라벤더, 당근과 레몬그라스, 비트와 꾸지뽕잎, 케일과 개똥쑥, 100% 천연 카카오와 진피가 들어간다.

자칭 마니아를 위한 막걸리라고 들었다.
술을 많이 마셔본 사람들을 위한 술이다. 자신만의 확실한 술 취향이 있는 분들을 타깃으로 삼은 만큼 막걸리 입문자나 대중적인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마니아들은 술을 마실 만큼 마셔봤으니 계속해서 새로운 술을 찾는 경향이 있다.

C막걸리를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
마곡동 ‘심야식당 켬’, 사당동 ‘낯선한식 븟다’, 금호동 ‘금남정’, 왕십리 ‘아맘’ 등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소규모 비스트로 다이닝에서 요리와 함께 곁들일 수 있다. 지리산에서 난 식재료로 한식 오마카세를 선보이는 합정동 ‘지리’처럼 약선 요리를 하는 셰프들도 관심을 보인다. 또 원효로의 ‘꽃술’같이 독특한 콘셉트의 공간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문래동 ‘현지날씨’, 충무로의 ‘술술상점’, 코엑스 ‘쿠캣마켓’ 등 우리 술을 전문으로 하는 보틀 숍에서 취급한다. 또 한 달에 세 번 정도 토요일마다 열리는 양조장 오픈 하우스를 통해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로 온라인 유통을 하지 못하는 대신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장점을 살렸다.

오픈 하우스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가?
지금까지 나온 막걸리를 시음해보고 취향에 맞는 맛을 찾는 데 중점을 둔다. 10월부터는 월별로 테마가 있는 시음회를 연다. 처음으로 선보인 시음회 ‘숙성의 맛’에서는 8~10월에 생산해 숙성 정도가 다른 막걸리를 차례대로 맛보고 비교해봤다. 또 올해 안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막걸리’ 시음회 등이 계획돼 있다. 정확한 일정은 인스타그램으로 미리 공지한다.


한강주조
주소 서울 성동구 둘레15길 12 문의 0507-1387-1125

전통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 술을 즐겨온 고성용 대표. 저렴한 술, 감미료가 들어가는 술, 높은 연령층이 즐기는 술 등 막걸리의 낡은 이미지에 대한 도전과 우리나라의 수도이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서울에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로컬 양조장이 없는 데 대한 아쉬움으로 성수동에 ‘한강주조’를 열었다. 아리수를 정수해 서울에서 재배되는 쌀로 빚은 ‘나루 생막걸리’는 이제 서울을 대표하는 지역 특산주가 됐다.

서울에서도 가장 힙한 성수동이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어 마신 만큼 다양한 술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술과 쌀에 대한 통제로 우리의 술 문화가 단절됐다.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는 이전의 화려했던 우리 술 문화를 현대에 소개하고 미래로 연결하는 양조장이 되는 것이다. 성수동은 카페나 디자이너 쇼룸 등이 들어섰다고는 해도 여전히 서울에서 가장 큰 공업지대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 생긴 맛집도 좋지만 오래된 노포도 즐길 줄 아는 것이 힙한 문화가 되었듯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기에 성수동만 한 곳이 없다.

쌀도 서울산이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강서구에서 재배하는 경복궁쌀을 사용한다. 김포평야의 끝자락과 인접해 있고 한강의 영향으로 농사에 적합한 환경을 갖췄다. 친환경 항공 방제를 진행하고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방생해서 키우는 우렁이 농법을 활용하는 것도 훌륭한 품질의 쌀이 자라는 이유 중 하나다. 밑술과 두 번의 덧술 과정을 거치는 삼양주 방식을 취하며, 감미료 대신 발효한 쌀에 남아 있는 당으로 단맛을 낸다. 단맛과 산미의 밸런스가 좋고 깔끔한 맛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이 된다.

막걸리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일관된 맛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10~12일의 발효 과정에서 매일의 당도, 산도, 알코올, pH 체크가 필수다. 지금까지 쌓아온 생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오차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를 확인한다. 직접 맛도 보지만 정확한 데이터를 확인하는 과정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술이 만들어질 때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도 그렇다.

지난 7월 첫 출시 소식을 들었는데 올초 지역 특산주로 선정까지 됐다.
지역 특산주로 선정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명인이 만드는 술, 또 하나는 지역 생산물을 활용하는지 여부. 서울에서 나는 쌀로 서울에서 만든다는 점을 인정받아 지역 특산주 면허를 땄다. 한강주조를 시작할 때와 같은 재료, 같은 방식이지만 작년에는 한강주조를 검증하는 시간을 거친 것이고. 지역 특산물을 사용해 면허를 받은 게 의미 있다.

나루 생막걸리의 주 타깃은?
지금까지 막걸리는 주로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심지어 요즘 젊은 세대 중에는 막걸리를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친구들도 있다. 막걸리가 익숙지 않은 20대나 우리 술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개방적인 30~40대에게 막걸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보여주려 한다. 패키지 역시 나루터를 형상화해 심플하면서도 직관적인 느낌을 담았다.

한강주조의 다음 목표가 궁금하다.
단순 판매에서 나아가 로컬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진정한 로컬 브루어리가 되는 것. 한강주조 안에서 러닝, 필라테스, 조경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싶다. 먼 미래에는 드넓은 논과 브루어리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직접 재배한 쌀로 막걸리를 생산하고 캠핑이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루 생막걸리를 즐기는 본인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6도의 경우에는 음료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게 가장 맛있다. 갈증 날 때 가볍게 한잔하거나 매운 음식과 곁들여 즐긴다. 크래커나 치즈와도 나쁘지 않다. 11.5도는 기름진 음식과 어울리는데, 개인적으로 족발과 먹는 걸 좋아한다. 적당한 단맛과 함께 산미가 느껴지고 입안에 여운도 남는다. 6도가 드링크업 음료라면 11.5도는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기에 제격이다.


구름아양조장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14길 16 문의 0507-1486-9201

꿀술을 빚던 ‘곰세마리 양조장’의 양유미 양조사, 이두재 양조사와 최근 합류한 증류주의 숨은 고수 소지섭 양조사까지. 술을 빚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인 ‘구름아양조장’은 이제 떠난 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 남아서 새롭게 이어나갈 이로 나뉘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저 어제 빚은 술보다 오늘 빚은 술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을 꿈꾼다.

구름아양조장의 막걸리를 소개하자면?
첫 술 ‘사랑의 편지’는 철원의 오대미와 복숭아, 꿀 등으로 빚어 여과기를 돌리지 않고 맑은 부분만을 떠낸 술로 강렬한 첫인상과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올해 선보인 ‘만남의 장소’는 철원의 오대미 또는 신동진 쌀과 생강, 후추 등으로 빚는다. 전통 누룩을 사용해 배치(batch)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사랑의 편지는 연인과 먹기 좋은 느낌이라면 만남의 장소는 가까운 이들과 어울려 먹기 좋다.

배치마다 술맛이 다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QC로서는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그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술만 판매하고 있다. 누룩이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 맛을 즐기는 일 또한 술을 마시는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울이라서 가능한 부분은 무엇일까?
언제든지 원하는 재료를 구해서 만들 수 있다. 술을 두 종류밖에 출시하지 못했지만 마음껏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많은 사람이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열려 있다.

술을 빚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이 사랑을 주며 잘 보살필수록 맛있고 좋은 술이 나온다.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어떻게 해야 계속 일을 기쁘게 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일부러라도 행복한 마음가짐을 가지려 하고 술을 빚는 과정에서 리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양조장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맛있고 즐겁게 먹었다는 얘기가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술인데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에 먹은 막걸리가 떠오른다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들려올 때 특히 기분이 좋다. 얼마 전에는 노신사분이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을 위해 멀리서 찾아오셨다. 예약판매제인데 인스타그램도 모르시는 데다 결혼기념일 이야기를 하시니 한 병 안 드릴 수가 없더라.

어디에서 구름아양조장의 막걸리를 맛볼 수 있나?
‘사랑의 편지’는 올해가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 예약 계정(@guruma_reservation)을 통해 200~300병쯤 판매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천도복숭아와 신비복숭아 두 가지 품종으로 반반씩 준비했다. 11월과 12월에는 네 번에 걸쳐 노들섬 ‘앤테이블’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술을 빚는 클래스도 오픈한다.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시네밋터블’ 프로그램에서도 사랑의 편지를 맛볼 수 있다.

Editor 손지수
Photographer 이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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