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이제는 소유가 아니라 비움과 절제로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다. 나와 세상에 무해한 삶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웰니스 커뮤니티 ‘나투라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고 있는 요가 강사 신지혜는 몇 년 전 요가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연결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가 수행자(Yogi)의 경전으로 불리는 «요가 디피카»와 «요가 수트라»에는 다양한 요가 철학이 담겨 있는데, 요기들은 이 철학을 바탕으로 삶을 정돈하고 수련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녀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해로운 삶을 살아왔는지 자각했다. 무해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즈음이다. 걱정만으로는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자신의 소비 지향적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조금씩 에코 프렌들리 일상을 실천해나갔다. 최근 출간한 책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는 제로 웨이스트와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그녀의 도전기이자 에코 라이프를 꿈꾸는 스타터들에게는 훌륭한 지침서다.

한때 스스로를 ‘코덕(코스메틱 덕후)’이라고 부를 만큼 화장품을 사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삶을 변화시킨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공연기획사 등에 다녔는데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안 좋은 타이밍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죠. 그때 우연히 요가를 시작하게 됐어요. 장비 하나 없이 내 몸과 호흡에만 의지하면 되는데 그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신선해지는 기분이 들고요. 내친김에 요가를 하러 발리 우붓에 갔다가 거기서 가벼운 차림으로 매트 하나만 메고 활기찬 표정으로 요가를 하는 수련자들을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요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삶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요가 철학에서 배운 ‘공존하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요가 수련은 나와 내 몸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에요. 비폭력, 불살생을 뜻하는 ‘아힘사(Ahimsa)’라는 요가 철학이 있어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말이나 생각 혹은 무지만으로도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창작자의 오리지낼리티를 무시하고 카피 제품을 사용하거나, 잔인한 동물실험을 거쳐 생산되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화장품을 사 모으는 것도 폭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또 하나는 청결을 뜻하는 ‘사우차(Saucha)’예요. 몸뿐만 아니라 생각과 말을 청결하게 하고, 우리 몸이 외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먹거리와 섭취 방식도 깨끗해야 한다는 거예요. 얼핏 나를 수련하는 방식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일련의 모든 것이 결국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삶과도 연결돼 있더라고요.

에코 프렌들리라고 하면 ‘플라스틱 줄이기’ 같은 구호밖에 생각나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헷갈렸어요. 당장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과 욕실용품으로 싹 바꿔야 하나? 그럼 기존 물건은 쓰레기가 되고 결국 또 소비를 하게 되는데, 과연 맞나? 그래서 시작을 ‘물건 정리하기’로 정했어요. 일을 그만둔 지 오래돼서 어떤 방식으로든 생활비를 조달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타이밍이 맞아떨어졌죠. 자전거, 옷, 화장품, 가구에 이르기까지 쓰지 않는 물건을 죄다 팔았더니 돈도 되고 공간도 가벼워지고, 제 마음도 정말 편안하더라고요. 시시한 이유로 물건 정리를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저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죠.

얼떨결에 ‘축소주의 운동’에 동참했네요.
하하, 맞아요. 영국에서 시작된 ‘축소주의 운동’은 사람들이 육식을 10%만 줄여도 기후변화, 동물 학대, 각종 질병 감소에 큰 도움이 된다는 환경 운동이죠. 고기를 먹을지 말지 결정하기는 너무 어렵지만 조금 줄이는 건 할 수 있잖아요. 물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차피 100% 완전무결한 환경친화적 삶이 불가능하다면, 부담감과 죄책감을 조금씩 더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에요. 완벽한 환경주의자 한 사람보다 축소주의자 백 사람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잘 쓰고 있는 물건을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고 해서 버리거나 처분할 필요는 없어요. 가지고 있는 물건을 충분히 아끼고 잘 쓰는 것도 친환경적인 삶이니까요.

100% 완전무결한 환경친화적 삶이 불가능하다면, 부담감과 죄책감을 조금씩 더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완벽한 환경주의자 한 사람보다 축소주의자 백 사람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물건을 줄였으니 생활 패턴도 달라졌을 텐데요. 대표적인 변화는 어떤 것들인가요?
일단 먹고 씻고 입는 것이 무척 단순해졌어요. 욕실에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과 쓰레기로 배출되는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기 위해 천연 비누 하나로 세안과 샤워를 하고, 머리도 비누바 하나로 해결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덜 씻은 듯 찝찝했지만, 요즘은 과정이 간결해진 만큼 정신적·시간적으로 훨씬 여유를 느껴요. 화학물질 대신 천연 성분을 넣은 제품이니 몸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먹는 것도 가급적 도시락으로 해결해요. 유통 거리가 길지 않아 신선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지역 농산물을 애용하고, 가볍게 조리할 수 있는 것들로 준비하죠. 재료가 한정적이니까 오히려 맛있게 만드는 법을 더 찾아보게 돼요.(웃음) 내 돈 주고 플라스틱과 비닐, 일회용품은 구입하지 않아요. 가끔 불가피하게 생기는 경우에는 깨끗하게 잘 모아두었다가 정성 들여 재사용하고요. 이게 비닐봉지의 원래 용도라는 걸 혹시 아셨나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마다 쓰고 버리는 종이봉투 때문에 너무 많은 나무가 벌목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 ‘재활용할 수 있는’ 비닐을 만들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었다고 해요.

비닐이 원래 용도를 되찾은 것처럼,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다 걷어낸 거군요.
맞아요. 우리가 흔히 환경보호를 얘기하면서 ‘지구를 구하자’ ‘환경을 살리자’ 같은 말을 하잖아요. 사실 지구는 사람이 없으면 잘 돌아가요.(웃음) 우리가 구하고 지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죠. 책에 쓴 ‘무해한 하루’라는 말도 지구에 해 끼치지 말고 살자는 의미를 담은 거예요. 해 끼치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학제품이나 합성섬유는 배제하고 자연에서 유래한 성분들로 일상을 채우게 됐어요.

여러 통계에 따르면 축산업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임이 틀림없어요. 그래서 엄격한 채식을 하고 있나요?
저는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에요. 채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크게 베지테리언과 세미베지테리언으로 나뉘어요. 베지테리언은 육류와 해산물을 먹지 않는 그룹으로 유제품과 꿀은 먹는 락토, 달걀은 먹지만 유제품은 먹지 않는 오보, 달걀과 유제품까지 먹는 락토오보가 있죠. 우리가 자주 쓰는 ‘비건’은 육류와 해산물을 비롯해 달걀, 유제품, 꿀 등 동물에서 얻은 식품은 일절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해요. 또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인 ‘프룻테리언’도 있어요. 저는 분류하면 세미베지테리언이에요. 육식은 하지 않고 해산물과 달걀, 유제품은 먹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이죠. 완전 채식에도 도전해보고, 채식을 지향하면서 가끔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도 해봤는데 체질상 ‘페스코’가 저한테 가장 맞더라고요. 음식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변화보다는 자기 체질이나 여건에 맞춰서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친환경적인 생활 습관이 무엇인지 알지만 막상 실천하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팁을 주신다면요?
제가 책에서도 언급한 ‘제로 웨이스트를 위한 7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중 ‘다시 생각하기’와 ‘거절하기’ 같은 것부터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물건을 살 때 집에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꼭 필요한 물건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거예요. 진짜 필요한 물건인지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충동적으로 사는 행위를 좀 줄이게 돼요. SNS 사용도 줄였어요.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을 차단하니 오히려 삶이 간결해져서 좋은 것 같아요. 의지와 상관없이 쓰레기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거절하면 돼요. 종이 우편물을 전자 고지서로 변경하고, 필요 이상의 사은품은 받지 않고, 장바구니를 가방에 늘 넣어 다니면 불필요한 비닐봉지와 쓰레기를 확실히 줄일 수 있죠. 또 먹을 만큼 사고 만들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도 있어요.

‘친환경 라이프는 곧 나를 돌보는 일’이라고 했는데, 변화된 삶에 만족하나요?
네.(웃음) 전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어떤 문제를 인지하면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으로는 못 돌아가잖아요. 자꾸 눈에 거슬려야 고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세 플라스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몸에 쌓이는지 안 이상 플라스틱을 못 쓰겠어요. 육식을 멀리하니까 고기 특유의 비린내에 예민해져서 지금의 식생활이 크게 고통스럽지도 않고요.(웃음) 예전에는 허한 마음을 쇼핑으로 달랬는데, 지금은 쓰레기 줄이기에 재미를 붙였어요. 일주일 동안 쓰레기가 이것밖에 안 나왔어? 그러면서 엄청 뿌듯해하죠. 더 나은 것을 위해 포기하고, 어떤 것들은 단호하게 지키는 지금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네요.


+plus tip
무해한 하루를 위한 에코 루틴

욕실과 화장대를 채운 친환경 제품들
샴푸 하나에도 놀랄 만큼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간다. 먹거리만큼은 아니지만 몸에 안 좋은 화학물질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친환경 목욕 제품을 쓰는 건 환경에도, 내 몸에도 두루 도움이 된다. 동구밭의 ‘플라스틱 프리 올바른 샴푸바’는 유해 화학물질이 일절 포함되지 않았고 사용 후 탈모가 눈에 띄게 줄어서 애용하는 제품이다. toun28의 샴푸바도 마찬가지. 같은 브랜드의 화장품은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에 들어 있고 보습 효과도 뛰어나다. 산수비누, 웬즈데이블루 같은 무해 성분 비누와 대나무 칫솔도 애용한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먹거리들
재료, 생산 과정,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길, 구입한 가격의 합리성 등을 모두 고려한 ‘탄소발자국 헤아리기’는 식재료 구입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내 몸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식재료는 좀 더 엄격하게 구입하는 편인데, 내가 사는 곳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재료를 사기 위해 지역 농협과 생협을 이용하거나 가급적 농부와 직거래하고 제철 재료를 소비한다. 자급자족을 위한 소규모 농사 실험을 하는 ‘무구꾸러미’도 즐겨 찾는 곳 중 하나. 채식을 하고 나서는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템페’를 즐겨 먹는다.

집 안을 채운 재생 가능 친환경용품들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도 잘 찾아보면 친환경적으로 제작된 제품이 많다. 서재에 있는 펜던트 조명과 아일랜드 바에 있는 의자는 친환경 산림 인증(FSC)을 받은 나무와 재활용 소재로 만든 제품이다. 나무를 인공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통으로 잘라 가구를 만드는 곳에 의뢰해 소파, 수납형 벤치, 서재 책상 등을 직접 제작했다. 5년째 쓰고 있는 만두카 요가 매트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PVC 매트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평생 쓸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생산 과정에서 독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인체에 무해하다는 인증까지 받았다.

플라스틱 제로를 꿈꾸는 주방과 세탁실
소프넛은 ‘비누(Soap)+열매(Nut)’라는 뜻으로 히말라야 지역에서 자생하는 솝베리 열매다. 화학물질에서 자유로운 완벽한 천연 세제로, 물과 만나면 과피에 함유된 사포닌류 천연 계면활성 성분이 풍부하게 녹아 나와 세정력이 강한 것은 물론 섬유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세탁물 10㎏당 소프넛 8~12알을 세탁물과 함께 넣어 돌리면 되고, 5~8번 정도 재사용도 가능해 경제적이다. 다 쓴 소프넛은 화분에 퇴비로 주면 끝. 물에 불려 주방 세제로 써도 그만이다. 플라스틱 수세미도 천연 수세미로 교체했다.

Editor 김은향 Photographer 정태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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