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의 지금

박하선은 스스로 행복의 순간을 명료하게 간파해냈다. 그리고 지금 그 절정을 만끽하고 있다.

퍼프소매를 가미한 오프숄더 드레스는 EUDON CHOI

tvN <산후조리원>에서는 긴 웨이브 머리였는데, 실제로는 단발이네요. 멋있어요.
거의 7년 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어요.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맡은 ‘민사린’ 역할 때문인데, 시원하고 좋아요. 그런데 <산후조리원> 속 모습을 보니 다시 기르고 싶네요.
(웃음) <산후조리원>의 ‘조은정’ 역은 모성애가 철철 넘치면서 우아함과 기품을 잃지 않는 역할이에요. 쌍둥이 아들에 셋째까지 출산했지만 헤어, 메이크업, 액세서리까지 풀 착장을 고수하는 캐릭터죠. 사실 산후조리원에서는 풀 착장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잖아요. 아주 이상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예요.

모유수유가 얼마나 신성한 일인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모습이나 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모습이 조금 얄밉기도 하던데요.
맞아요. 자녀를 키운 분들이라면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오지랖을 겪어보셨을 거예요.(웃음) 커피 한 잔 마실 때조차 죄책감이 들죠.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세상 부족한 인간’이 된 것 같고요. 완벽한 모성애를 겸비한 듯한 조은정은 극 초반 평범한 엄마들의 자괴감을 자극하는 인물로 그려져서 화를 유발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인물조차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요. 그 허점이 살짝 드러나기 시작했고, 남은 회차 동안 더 공감대를 살 거예요.

조은정이 착용하는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직접 구매할 만큼 각별히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데뷔하고 나서 이렇게 꾸밀 수 있는 캐릭터는 거의 처음이에요.
“풀 메이크업과 진주 귀걸이를 한 ‘이영애’ 같은 산모”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저와 스태프들이 쾌재를 불렀죠. 협찬품을 총동원했는데도 부족해서 명품 스카프는 아예 사버렸어요. 살면서 그렇게 비싼 스카프와 헤어피스는 처음 사본 것 같아요.

 

20대 시절에는 힘들게 버텼다면,
지금은 일 자체가 에너지를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피크인 것 같아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오버사이즈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MM6 MAISON MARGIELA by ADEKUVER
자카드 디테일의 뷔스티에는 & OTHER STORIES

그럼 번 돈은 주로 어디에 썼나요?
집이요. 예전부터 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사를 자주 다녀서인지 가족들이 편안하고 단란하게 지낼 수 있는 집 한 채를 꼭 갖고 싶었거든요. 그 꿈을 이뤘을 때 진짜 뿌듯했죠. 집 구경도 많이 다니고 셀프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베란다에 페인트를 칠하고 패브릭을 뜯어서 벽에도 걸고.(웃음)

JTBC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에서 집과 인테리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낸 것이 우연이 아니군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15년 정도 됐어요.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던 차에 때마침 섭외가 들어온 거예요. 전국에 있는 각양각색의 집을 구경하고 다니는 게 재미있고 얻는 것도 많아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된 것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것도 좋고요.

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요즘 중정에 꽂혔어요. 소박한 처마와 작은 정원, 마당을 품은 집이 좋아요. 10대 시절에 한옥에 살았는데, 그때 좋았던 기억이 영향을 끼치나 봐요.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더 아파트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벽으로 딱 나뉘어 있는 구조를 벗어난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이때문에라도 더더욱 자연과 가까운 집에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네요.

딸이 올해로 네 살이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일상이 대부분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하죠. 어떤 때는 좀 괜찮은 엄마구나 싶다가도 또 실수하기도 하고요. 한때는 내가 부족한 엄마 같다는 자책도 많이 했어요. 공백기에 아이를 키우면서 읽은 육아 책만 열 권이 넘어요. 그렇게 제 나름의 결론을 얻었는데, ‘엄마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아이도, 엄마인 저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나요?
독립심을 키워주고 싶어요. 스스로를 탐색할 수 있어야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 행복한 순간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와 남편 모두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매 순간 모든 노력과 열정과 에너지를 전부 아이에게만 쏟기는 힘들어요. 우리는 그저 사랑과 안정감이라는 큰 울타리를 쳐주고, 그 안에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길 바랄 뿐이에요.

플리츠 롱스커트는 STAYPEOPLE 블랙 터틀넥과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인 남편 류수영 씨의 도움도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고민도 비슷하고 서로에게 의지가 돼요. 일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것도 좋고요. 둘 다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거나 미루지 말자는 주의예요. 지금이 배우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인 것 같거든요. 20대 시절에는 일이 힘들고 어려웠어요. 작품 하나 고를 때도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하면서 망설인 적도 많고요. 그런데 지금은 일이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좋아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곧 방영을 시작하는 카카오TV <며느라기>도 하고 싶어서 먼저 연락했다고요?
네! 원작인 웹툰 ‘며느라기’는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조리원 동기들이 추천해줘서 처음 봤어요. 제작 소식을 듣고 며칠 고민하다가 제작사 측에 조심스럽게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다행히도 아주 반겨주시더라고요. “대본도 안 나왔는데 괜찮겠냐?”고 하면서요. 조금 걱정은 됐지만,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어요. 원작 자체가 지닌 공감력과 흡인력을 믿었거든요. 제가 워낙 팬이기도 했고요.(웃음) 그래서 “원작을 존중하는 대본이라면 얼마든지 참여하고 싶다”고 했죠.

클래식한 싱글 버튼 데님 재킷과 여유로운 실루엣의 와이드 팬츠는 모두 VANESSABRUNO

웹툰 ‘며느라기’는 기혼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품이에요.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보다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독특한 민사린의 헤어스타일과 똑같이 하기 위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의상도 최대한 웹툰 느낌에 가깝게 준비하고요. 감독님과 상의해 손동작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연기했죠. 원작 팬분들이라면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20분짜리 쇼트 폼 드라마는 처음 작업하는 거라 어떻게 나올지 걱정을 조금 했는데, 웹툰의 핵심적 장면들을 잘 뽑아서 담은 대본을 보고 확신이 들었어요. 우리 드라마 재밌겠구나! 하고요.(웃음)

이제는 손바닥만 한 모바일 기기에서 20분짜리 드라마를 보는 시대예요. 배우로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요?
방영 시간도 짧고 화면에 담기는 것도 한정적이라 처음에는 제가 준비한 연기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한 장면 한 장면 집중도 있게 만들기 위해 배우나 스태프들이 훨씬 더 신경쓰다 보니 플랫폼이나 길이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면 드라마 한 편을 후딱 볼 수 있으니 편하고요. 답답하기보다는 몰입도가 오히려 높아진 느낌이에요. 카카오TV 드라마라고 했더니 동료 배우들도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고요. 어땠냐며 많이들 궁금해해요.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듯 결혼 전보다 훨씬 더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하루 스케줄을 네 개 정도 소화한 적이 있는데 소속사 대표님이 “요즘은 아이돌도 이렇게 일 안한다”며 놀라시더라고요.(웃음) 에너지로만 보면 저는 지금이 피크인 것 같아요. 아이도 엄마가 일하는 것에 대해 서서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고요. 온 가족이 제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돼요.

라디오 <박하선의 씨네타운>도 매일 진행하고 있죠? 감독이나 동료 배우들을 게스트로 만나는 건 특별한 경험이겠어요.
요즘은 근무 환경이 좋아져서 일주일에 4일 촬영하고 있어요. 라디오 생방송을 3~4일 정도 진행하고 나머지는 녹음하니까 스케줄도 무리가 없고요. 무엇보다 처음 만난 배우에게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비결이 뭐예요?”라고 돌직구로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하하. 저는 영화를 다루는 라디오의 DJ니까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거든요.(웃음) 또 제 목소리가 약간 중저음이잖아요. 그래서 신인 때부터 촬영장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 “톤 좀 높여주세요”였거든요. 그런데 라디오에서는 편하게 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특별한 연말 계획이 있나요?
라디오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계속 진행하고, 12부작인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도 회차가 좀 남아서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매주 토요일마다 한 편씩 공개되는 <며느라기>를 챙겨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요.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보낼 거예요. 대단한 계획은 아니지만 가족과 따뜻하고 편안하게 겨울을 보내는 것 자체가 선물이죠. 이 정도면 충분해요.

 

스티치 디테일의 레더 소재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DINT

Editor 김은향(인터뷰), 김하얀(화보)
Photographer 김외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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