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시 보기

근대 서울의 자취가 남은 자리에 새로운 가치가 더해진 이야기를 전한다. 이곳에서 공간을 꾸리는 이들은 도시의 순환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펼쳐나간다.


집, 펍 그리고 차차 티클럽
‘차차 티클럽’이 자리한 창신동 일대는 1930년대 후반 나라에서 이끈 도심형 한옥복원사업을 통해 조성됐다. 전통 한옥이라기보다는 시대상에 맞게 개량된 형태다. 누군가의 안락한 집으로, 많은 사람이 왔다 떠나는 여관으로 쓰이다 2000년대에 들어 펍으로 재탄생한 뒤 현재는 티클럽이 자리를 잡았다. “온라인 채널을 기반으로 운영해오다 팝업 매장을 열면서 이곳과 인연이 닿았어요. 복잡한 서울 도심 속에서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숨은 공간이나 다름없죠. 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요. 이 점이 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많은 사람이 소란스러운 마음에서 멀어져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차를 마시곤 하잖아요.” 어느 정도 익숙하다 싶은 한옥에도 새로운 면모는 있기 마련. 가장 안쪽에는 다른 자리와 분리된 다락이 있어 높고 아늑한 곳에 앉아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뒷문으로 나가면 철거 현장이 멈춘 채 남아 있는 ‘시대여관’이 등장한다. 1940년대에 지어진 여관 터로 대안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기간에 티클럽을 방문해 두 공간 모두 빠짐없이 둘러봐도 좋겠다.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46가길 13 문의 070-7755-4758

CHECK POINT!
➊ 전선을 감는 애자, 아궁이 등 당시 생활의 흔적이 묻어나는 물건들.
➋ 시대여관으로 향하는 입구에 아궁이가 놓인 주방 공간.
➌ 시대여관은 전시가 없을 때도 차차 티클럽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개방된다.


계동의 시그너처 벽돌집, 이잌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 <홈데렐라>를 챙겨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카페 겸 비스트로 ‘이’은 오래된 공간의 가치를 되살린다는 기획의 <홈데렐라>에 80년 세월이 불러온 붕괴 위험 직전의 붉은 벽돌집으로 방영되었다. 1940년대에 지어져 2017년까지 최소아과의원이 자리해 있던 건물은 오랫동안 북촌 주민들뿐만 아니라 북촌을 오가는 외부인들에게도 계동의 시그너처나 다름없었다. 그런 최소아과의원이 문을 닫은 뒤 남은 붉은 벽돌집에 옷 가게가 들어왔다가 올해 초 장진우 대표의 주도 아래 대대적 공사를 거쳐 다시 한번 활짝 문을 열 수 있었다.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특히 지붕 아래 마룻대에 있는 1963년 입주상량을 기념하는 글은 꼭 간직하고 싶었죠. 오시는 분들이 이 공간에 호기심을 갖고 유추해볼 수 있도록요.” 와인 리스트의 90%가 내추럴 와인인 이곳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그때그때 색다른 메뉴를 펼쳐놓는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이이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계동의 붉은 벽돌집으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4길 28 문의 070-8865-2255

CHECK POINT!
➊ 건물 입구에 아직도 남아 있는 최소아과 명패.
➋ 외관의 붉은 벽돌을 일부 드러낸 2층 내부.
➌ ‘축주후 1963년 8월 10일 오후 7시 입주상량’이 적힌 마룻대.


첫 국민주택, 무아치
스스로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리빙숍 ‘무아치(無我恥)’. 지난 8월 이화동 성곽길 옆에 문을 연 무아치의 운영자는 쇳대박물관의 최홍규 관장과 그의 아들 최진범 대표다. 서울시 이화마을 공공 프로젝트를 계기로 7년째 이화마을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두 사람은 누구보다 동네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일본식 적산가옥의 형태를 띠지만 이곳은 195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연립형 타운하우스로 지어졌어요. 적산가옥 형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대의 지식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최진범 대표는 공간이 우리나라의 미드센추리 디자인, 더 나아가서 근대 문화유산이라 말한다. 해방 이후 이승만 사저를 중심으로 지은 고급 주택 단지는 1980~90년대로 들어서며 달동네로 전락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덕분에 지금까지 근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무아치 하우스는 중정을 사이에 두고 이발소였던 건물과 주거용이던 복층 구조의 건물을 하나로 이어 완성했다. 무너질 위험이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기존 것을 크게 교체하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거주 목적으로 사용할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려고 했어요. 적산가옥의 특징은 기와지붕, 천장과 간격이 좁은 복층 구조, 다다미방 등에서 찾아볼 수 있죠.” 시즌별로 공간을 달리해 운영할 예정인 무아치는 첫 번째 시즌에서 그동안 수집해온 동양의 고가구, 오브제와 함께 빈티지 가구 숍 ‘컬렉트’의 서양 미드센추리 가구를 선보인다. 이 공간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앞으로 어떻게 채워질지 기대해볼 만하다.
주소 서울 종로구 낙산성곽서1길 7-1 문의 @muachi_seoul

CHECK POINT!
➊ 기와지붕, 천장과 간격이 좁은 복층 구조, 다다미방 등에서 나타나는 적산가옥의 형태.
➋ 조선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장식장과 반닫이장.
➌ 40여 년 가까이 수집한 소장품으로 가득한 쇳대박물관도 꼭 관람할 것.


90년 된 적산가옥, 계단집
‘서울 도시재생 사회적 협동조합’의 거점 시설 중 하나인 회현동의 스페셜티 카페 ‘계단집’은 골목길에서 건물을 향해 오르는 돌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입구의 돌계단과 석축, 타일 등이 모두 지어질 당시 그대로인데, 계단집이라는 이름도 이 돌계단에서 따왔다. “건물은 1930년에 완성된 적산가옥으로 원래는 가정집으로 쓰였어요. 서울시에서 공간을 매입해 최대한 기존 모습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꾸렸죠. 오래전부터 지녀온 모습은 2층에서 가장 많이 확인할 수 있어요.” 이종필 이사장의 말대로 2층으로 올라서니 목조 골격과 전선을 감던 애자가 그대로 드러난 박공 천장, 다다미방 등 낯설기는 해도 그 시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 펼쳐진다. 일하는 사람들 또한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카페 운영을 결정한 뒤 협동조합에서는 회현동 주민들을 모집해 바리스타로 교육시키고 계단집에 채용했다. 주민 바리스타 류경아 씨는 말한다. “아파트에 살다 이곳으로 이사 왔는데 오랫동안 거주해온 동네 주민들과 어우러질 기회가 필요했죠. 동네 주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과도 교류할 수 있어 즐거워요.” 계단집이 도시의 새로운 순환을 고민하는 카페 그 이상의 공간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주소 서울 중구 회현동1가 150-1 문의 070-4419-7776

CHECK POINT!
➊ 오래된 나무 기둥을 그대로 두고 한편에는 돌벽을 드러낸 1층.
➋ 2층 마룻바닥은 옛날 학교 교실 바닥으로 쓰이던 나무판자를 가져와 만들었다.
➌ 회현동에는 계단집 외에 또 다른 거점 시설 ‘회현사랑채’와 ‘검벽돌집’이 자리해 있다.

Editor 손지수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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