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미다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옮겨놓은 듯 수무의 가드닝 세계는 생장한다.


열대우림을 연상시키는 관엽식물과 행잉 플랜트, 정갈한 젠 스타일의 일본식 정원, 인도어 가드닝은 그 나름의 유행을 탄다. 지난해 각종 상업 공간과 공예 트렌드 페어 등에서 주목받은 식물 디스플레이를 꼽자면 가드닝 스튜디오 ‘수무’의 작업이다. 돌과 이끼, 다육식물을 포함한 몇 가지 수종과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 식물 연출을 이어가고 있는 장은석 대표를 만나 식물을 곁에 두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열린 공예트렌드페어의 주제관 전시 연출이 인상 깊었어요.
‘휴가예감’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돌과 이끼를 활용한 작업에서 자연미가 돋보였어요. 최대한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디테일을 다듬고 고민해요. 흔히 이끼와 돌로 언덕을 꾸밀 때 완만한 곡선 형태를 만들곤 하는데, 실제 자연은 그렇지 않잖아요. 다양한 미세 지형들이 모여서 능선을 이루죠. 저는 이를 반영하고자 노력해요. 작업차 지방에 갈 때 산을 보면서도 지형에 대해 생각하고 사진을 찍어두기도 하면서요. 이끼는 습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실내 작업에서는 조화인 ‘프리저브드 이끼’를 사용해요.

조화로도 자연스러운 식물 연출이 가능한 점이 신기해요.
가드너 중에서도 조화 사용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전 쓰임새를 살려 허비하지 않고 잘 연출해 사람들에게 ‘내 공간에 식물을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결코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에 식물을 들여 죽이는 것이 더 안 좋죠.

식물을 죽여본 적 있는 플랜트 킬러로서 뜨끔한 말이네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에요. 공간에 들이는 식물을 제안하는 전문가들이 더욱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저 모양이 예쁘다고, 인기 있는 수종이라고 자라기 어려운 환경에 추천한 뒤 식물이 죽으면 ‘잘못 키우셨네요’ 하고 고객 탓을 하기는 쉽잖아요. 예를 들어 요즘엔 수형의 선이 돋보이는 식물들이 인기인데, 자엽 아카시아나 삼각잎 아카시아 등은 물 주는 걸 한 번만 놓쳐도 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요. 저는 디자인에 제약이 있더라도 그 공간의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제안해요. 지금은 플랜테리어가 붐이더라도 식물을 죽이는 경험을 거듭하면 나중엔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해요.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한 만큼 빨리 추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것이 입문자 클래스 외에도 전문가 클래스를 지속하는 이유기도 해요.

최근 작업에서 두드러진 스타일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나요?
어릴 적부터 달팽이, 잠자리 같은 곤충들을 잡으며 놀았고, 계곡 등에서 이끼를 자주 접했어요. 그래서 제겐 나무, 이끼 등이 익숙한 요소죠. 올해 1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중국 상하이 아모레퍼시픽 프리메라 1호점 전체를 작업한 적이 있어요. 브랜드 자체가 습지 보존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이끼 작업을 이어오던 저와 연이 닿았죠. 즐겁게 작업해서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는데, 다시 공간을 찾아 돌보지 못하는 점이 아쉬워요.

유리 돔 안에 이끼나 난, 양치식물을 기를 수 있는 테라리움도 클래스에서 배울 수 있다고요. 작은 공간 안에 식물을 들이기 좋은 방법 같아요.
테라리움은 욕심을 비워야 하는 작업이에요. 이끼가 자랄 것을 고려해 여백을 남겨야 하죠. 위로 자라는 속도에 비해 옆으로 자라는 속도는 더딘 편이어서 꽤 오랜 시간 두고 볼 수 있죠. 가드닝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눈썹 가위처럼 생긴 이끼용 트림 가위로 잎을 정리해주기도 해요. 습도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통 방식의 테라리움은 구멍이 난 밀폐형 구조가 아니라 뚜껑을 여닫을 수 있는 구조예요.

요즘 인기 있는 식물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만 해도 누가 봐도 이그조틱한 잎이 달린 열대식물과 풍성한 연출이 인기였죠. 요즘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간결한 작업을 추구하는데, 자연 요소를 실내에 반영할 때도 이런 흐름에 맞춰 적용하기 때문이에요. 돌이나 이끼, 돌로만 연출하는 경우도 많고 가지마루, 올리브나무, 긴잎 아카시아 등 선이 흐르는 수형과 잎의 모양새가 동양적인 식물들이 주목받고 있죠. 반면 화훼 농장에서 키워오던 열대식물들의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다시 열대식물 붐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겨울은 실내 가드닝도 어려운 시기죠. 실내에서 식물을 잘 기르는 조언을 해준다면요.
수종에 따라 관리법이 다르지만 일조량과 습도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겨울엔 낮 시간에 해가 깊숙이 들어오지만 그만큼 일조 시간이 짧아요. 햇빛을 받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스탠드, 플로어 조명으로라도 빛을 비춰주면 좋아요. 또 실내가 건조해서 스프레이로 자주 물을 뿌려줘야 해요. 식물을 기른다기보다는 데미지를 줄이고 버텨내는 기간으로 생각하세요.

수무의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 공예트렌드페어 때 주제관 식물 연출 이외에도 조형 작가 곽철안, 조명 브랜드 리드아트 등과 함께 음악, 그래픽, 조형물과 식물이 어우러진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가드너가 되기 전 공연 기획 일을 하기도 했고 음악 잡지도 만들어본 까닭에 복합 장르 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다양한 아티스들과 함께 식물을 매개로 다양한 융합 예술 작업을 지속하고 싶어요. 상업 공간 작업도 물론 재미있지만, 수무만이 할 수 있는 비주얼 작업을 선보이고 싶어요.


수무의 대표 작업들

➊ ➋ ‘식물학자의 작업실’을 콘셉트로 중국 상하이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연구해 조경 작업을 완성한 상하이 프리메라 플래그십 스토어. ➌ ➍ 2020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선보인 주제관 식물 연출과 전시 ‘매화점장단’.

Editor 안서경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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