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의미

미드센추리 모던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고유한 수집의 기준을 다져온 가구 컬렉터 이종명을 양평의 새 쇼룸에서 만났다. 디자인 체어가 대화의 소재가 될 만큼 인기를 얻기까지 그는 늘 익숙지 않은 것을 찾아나섰다.


몇 년 사이 디자인 가구가 마니아층을 넘어 대중화되고, 날마다 새로운 빈티지 가구 숍의 SNS 계정이 등장하고 있다. 카페, 식당, 브랜드 스토어 등 상공간에 디자인 조명과 가구를 채우는 것이 정석인 시대. 사람들의 시선은 북유럽, 서유럽 가리지 않고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을 추구하고, 나아가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가 닿고 있다. 이런 흐름을 관통하는 이가 있다. 2008년 서촌에 MK2 카페를 연 이종명 대표다. 그는 2000년대부터 디자인 가구를 소개해온 가구 컬렉터다. 유학을 간 독일에서 10년간 가구를 수집해온 그는 귀국 후 MK2를 열어 직접 가구를 만지고 앉아보며,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연결해주는 일을 고수하는 이종명 대표는 지난가을 평창동, 청담동에 자리하던 MK2 쇼룸을 양평 서종면으로 옮겼다. 미술관 구하우스 바로 옆에 새롭게 지은 건물에서 자기만의 기준으로 가구를 공간에 들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2층 계단에 올라서면 독일뿐만 아니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국가의 디자인 체어를 한눈에 보는 시각적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담담한 노출 콘크리트 벽과 바닥, 중앙의 계단이 인상적이에요. 요즘 눈에 띄는 집을 모티프로 한 가구 쇼룸과 달리 전시장 같은 분위기네요.
오랜 시간 알아온 조병수 건축가에게 새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하니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단박에 알아차리더라고요. 앞으로 변화시킬 여지가 있는, 미완의 느낌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가구는 일부러 더 자유분방하게 배치했어요. 2층 계단에서 1층을 봤을 때 다양한 의자가 섞여 있는 것도 마치 ‘보물찾기’처럼 관심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찾아낼 수 있도록 의도한 부분이고요. 쇼룸에 보기 좋게 진열된 물건도 막상 우리 집에는 어떻게 놓을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세팅에 현혹되지 않고,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같은 미션이랄까요.

쇼룸을 이전하면서 컬렉션의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조형성이 뛰어난 디자인을 더 모으고 싶기도 하고, 조금 더 규모 있는 가구를 소개하고 싶기도 해요. 멀리서도 한눈에 가구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니까요. 벌써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디자인 가구에 빠져 있었지만, 다시 새로운 관점으로 가구를 찾을 수 있어서 흥미로워요.

어떤 가구가 주를 이루나요?
제 미감에 맞는 가구 위주로 구성했는데 나라도 다양하고, 거장의 작품뿐만 아니라 출처 미상의 제품도 있어요. 주로 바우하우스 영향을 받은 디자인이 많아요. ‘뺄셈의 미학’이라고 일컬어도 될 만큼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재료의 미를 살린 디자인이죠. 예를 들면, 북유럽 가구는 고급 수종의 목재를 주로 사용해 친숙한 느낌이 들죠. 이탈리아 가구는 화려하고, 어찌 보면 과시적이기도 하고요. 같은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라도 독일 가구는 철재, 플라스틱, 나무 등 다채로운 소재와 다양한 공정을 통해 균형과 비례미를 살려내면서도 실용적인 점이 매력이에요.

2020년 초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의 열기도 대단했죠. 방문했을 때 관람객이 매우 많아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10년 이상 협업을 통해 전시 구성에 맞는 어린이 가구, 주방 가구 등 생활 가구를 찾으며 저 또한 수집 데이터가 늘어났죠. 2008, 2014, 2016년에 금호미술관에서 진행한 바우하우스와 관련한 전시를 총망라하는 개념의 전시였는데,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과거에는 미술관에서 하는 가구 전시가 낯설었고 관람객도 주로 마니아들이었어요.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죠. 디자인 가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좋은 물건을 알아보고자 하는 호기심과 안목이 생겼어요.

특히 젊은 컬렉터가 늘어났죠.
서로 응원해주곤 해요. 제가 30여 년간 쌓아온 것을 요즘 친구들은 참 빨리 캐치하는 것 같아요. 특히 아카이빙에 감탄해요. 주로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모아온 가구를 한 점씩 보기 좋게 업데이트하는데, 간혹 처음 보는 가구도 있죠. 그러다 보니 얼마나 오래 했는지보다 취향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가 싶기도 해요.(웃음) 또 디자인 가구를 많이 다뤄본 인테리어 디자이너들도 자주 방문하고요. 오래된 것을 새로운 재료와 조화롭게 디스플레이하는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죠. 오직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과거와 달리 편안하게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요즘, 빈티지 가구가 좋은 대안이 되는 거죠.

유독 의자를 편애하는 이유가 있나요?
건물 열 채보다 의자 하나 만들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의자는 디자인이 복합적으로 응축되어 있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며, 실제 몸에 밀접하게 닿는 가구잖아요. 게다가 예술 작품 못지않은 조형성도 지니고 있고, 각기 다른 의자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공간 분위기도 달라지고요. 그런 매력을 알게 된 후 의자를 계속 모으기 시작했어요. 워낙 다양한 의자를 접하고 추천하다 보니 이제 ‘옷차림만 봐도 어느 의자를 선택하겠다’ 싶은 감이 오죠.

간혹 고심해 고른 디자인 오브제와 가구가 어우러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선 자신만의 선택 기준을 세워야 해요. 저는 ‘집에 무엇을 가지고 있나요?’ ‘버리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함께할 가구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요. 현재 소유한 가구의 친구를 데려온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공간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서로 어우러지는 가구를 선택할 수 있죠. 반면 하나하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가구들을 데리고 오면 편안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가구가 돋보이는 갤러리 같은 공간이 되겠죠.

결정장애를 느끼는 사람도 많아요. 취향을 찾는 데는 경험만이 답일까요?
계속 시도해보는 게 중요해요. 그렇기에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의자를 추천하고 싶어요. 내게 맞는 디자인을 시도해보기 좋고 의자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빈티지 가구에 대한 높은 관심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빈티지 가구로 빼곡하게 채운 공간을 가면 과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반면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을 찾는 일을 하는 저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해요. 가구 구입 기준이 몇 년 새 확연히 달라진 점 도 놀랍고요. 10년 전만 해도 가구를 구매하고 오래 기다려서 받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죠. 이젠 여유를 두고 주문하고 구매하는 문화에 익숙해졌고, 취향에 대해서도 좀 더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고양이 키우는 집사들이 서로 고양이 얘기를 하듯,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는 ‘너 무슨 의자 좋아해?’ 하는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잖아요.

이런 흐름이 한때 유행처럼 지나가버릴 수도, 꾸준히 지속될 수도 있겠죠.
시간이 지나면서 빈티지 가구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 생길지라도 원하는 사람은 계속 생기게 마련이죠. 우리는 유럽과 달리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쓰는 물건이 적기에 빈티지 제품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찾아내기도 하고요.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개항기부터 받아들인 디자인 가구의 양이 꽤 되기 때문에 빈티지 가구 시장이 일찍이 형성되었거든요. 우리나라도 이제 빈티지 가구의 매력을 경험한 사람이 늘어났기에 앞으로 인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봐요. 경험이 세분화되겠죠.

컬렉터 이종명의 다음은 무엇인가요?
바우하우스가 제 취향의 축에 가깝지만 계속 낮설고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새로운 물건을 보여주고 싶어서 컬렉터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집에 있는 것과 같은 물건을 구해달라’는 요청은 사실 재미가 덜해요. 익숙하지 않은 것,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 안목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죠. 20년이라는 시간이 취향에 대한 자신감과 폭을 크게 만들어 주었기도 하고요. 뜻이 맞는 사람들과 신선한 컨셉의 가구 전시를 기획해보고 싶기도 해요.

Editor 안서경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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