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기의 태도와 진심

배우 이광기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자문하고 탐구해온 시간을 거쳐 좋아하는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이 됐다. 아트 디렉터라는
또 다른 커리어를 갖게 된 그는 정성껏 토대를 쌓아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면 배우 이광기의 요즘은 행복에 닿아 있을 것이다. 취미로 즐기던 아트 컬렉팅에서 나아가 아트 디렉터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몇 해 전 파주와 일산에 갤러리를 마련해 국내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여는가 하면, 지난해부터는 유튜브와 방송을 통해 예술품 경매가, 아트 쇼호스트로 대중에게 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갤러리의 문턱을 허물고 구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친숙하고 위트 있게 라이브 방송을 제작하는 덕에 경기문화재단과의 협업도 지속 중이다.

최근 그는 포토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를 펴냈다. 12년 전 아들을 떠나보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픈 경험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힘든 이들에게 슬픔을 극복해온 자기만의 방법을 나누고픈 마음에 출간을 결심했다. 파주에 자리한 그의 문화 공간 ‘스튜디오 끼’에서 절박한 시간을 지나 삶을 지켜나갈 수 있게 만든 힘에 대해 들어보았다.

자족하던 삶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에게 발품 팔아 깨달은 아트 컬렉팅 노하우와 다양한 작가를 알리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다.
꼭 예술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이들만 예술을 누리라는 법은 없다. 예술 시장과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에 내가 할 일이 있으리라 본다.

인터뷰 전날, 홈쇼핑에서 강익중 작가의 아트 에디션 판화를 판매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트 쇼호스트 역할이 내게 잘 맞고 재미있다. 나의 목표 중 하나가 ‘1가구 1그림 걸기’를 돕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친숙한 홈쇼핑을 통해 예술 작품을 판매하면서 목표에 한층 다가간 느낌이다.

본격적인 아트 컬렉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오랜 무명 시절을 지나 2000년에 출연한 드라마 <태조왕건>을 마치고 나서다. 스스로에게 보상해주는 마음으로 관심 있던 그림을 눈여겨본 것이 시작이다. 어느덧 20년째 예술에 빠져 있다. 가족들과 매주 갤러리로 나들이를 가고, 아트 페어를 다니고, 하나씩 작품을 구매하며 다양한 작가들과 인연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그저 집 안 곳곳에 걸린 그림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고 정서적인 치유를 얻는 수준이었다.

취미를 업으로 삼으려면 즐기는 것 이상의 계기가 필요할 듯하다.
2010년 아이티에 봉사 활동을 다녀온 경험이 변화를 몰고 왔다. 2009년 아들 석규를 신종플루로 떠나보내고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됐다. 자족하던 삶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이겨내고자 월드비전을 통해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중 ‘평소 좋아하던 그림을 통해 펀딩을 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50인의 작가를 모으고 서울옥션의 지원을 받아 자선 경매를 열었다. 이후 매년 열고 있고, 수익금으로 소외 지역에 학교를 짓는 성과로 이어졌다. 석규의 영어 이름을 따 2012년에는 아이틴 페티옹빌 지역에 ‘케빈 스쿨’을 열기도 했다.

최근 출간한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에도 그때의 과정이 담겼다.
아이를 잃고 난 뒤, 그리고 아이티를 해마다 다녀온 이후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다. 사회적으로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열망이 생겨난 것이다. 아픈 경험이라 기록을 매번 고사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남겨진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을 텐데’. 그 고통을 아니까 위로해주고 싶었다. 눈물이 눈물에 그치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비운 공간은 채워진다. 단 노력을 해야만 한다. 누가 도와주겠지 하고 기다리면 채워지지 않고, 내가 노력한만큼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는 경험을 담았다.

2018년 파주에 ‘스튜디오 끼’를 오픈한 뒤 한층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갤러리 겸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는 작업실, 미팅룸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하태임&문형태 작가 2인전을 시작으로 현재는 유충목 작가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 유리공예를 통해 물방울의 맑은 물성을 표현하는 작가다.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면 오후에 큐레이터와 함께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할 예정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카우스 등 어번 아트, 스트리트 아트 작가들을 소개하고, 젊은 세대가 왜 이들에게 열광하는지 짚어주고자 한다.

유튜브의 라이브 경매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원래는 방송국에 아트 경매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생소해서인지 수년간 거절당했다.(웃음) 코로나19 이후 직접 작가 인터뷰를 하고 작품을 소개할 결심을 하게 됐다. 격주로 두세 작가를 소개하고, 라이브 채팅을 통해 작품 금액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꾸준히 진행해 벌써 36회를 맞이했다. 수십 명이 접속하는데 첫 컬렉션을 시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매주 참여하는 마니아도 생겼다. 얼마 전에는 22세 컬렉터가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만원을 투자 관점에서 그림 구입에 썼다고 했는데, 그런 반응이 재미있고 마냥 신기하다. 또 ‘랜선유랑단’이라는 콘셉트의 라이브 방송으로 전국 곳곳의 작가들과 아트 경매장을 열 계획이다.

대중 미디어를 깊이 이해하는 아트 기획자는 드물다는 점이 강점 중 하나일 것 같다.
그간 갤러리에서 그림을 구입하는 건 VIP들의 영역이라 여겨왔지만, 이제는 또 다른 시장이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아트 포스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듯 앞으로 판화, 원화에 대한 관심도 확대될 것이다. 꼭 예술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이들만 예술을 누리라는 법은 없다. 국제 아트페어만 봐도 다양한 세대의 컬렉터가 가득하지 않나. 예술 시장과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에 내가 할 일이 있으리라 본다.

컬렉터로서 요즘 주목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가장 최근에 구입한 작품도 궁금하다. 제주도의 풍경을 담는 강준석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화적인 회화를 선보이는데,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이 MZ세대의 인기를 얻기 충분하다. 구입하려다 실패한 작가는 국내 그래픽 아티스트 그라플렉스의 판화다. 친분이 있던 작가라 판화 포스터의 구매를 요청했는데, 호주 사이트에서 정해진 시기에 구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더라. 2분 만에 품절돼 구입을 놓쳤다. 온라인 옥션 등을 이용해 작품을 컬렉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MZ세대의 정서와 니즈를 파악하고 감각하는 데에는 딸 연지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젠체하지 않고 좋고 싫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재미있다. 젊은 감각을 그대로 좇을 수는 없어도, 그들의 이야기를 유연하게 듣고 이해하는 것이 내 장점이다. 대학생이 된 딸 연지는 ‘아빠 난 내 스타일이 있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패션과 뷰티 브이로그 촬영을 즐기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데, 어릴 적부터 그림을 보러 다닌 영향인 것 같다.

아트 디렉터 이광기의 다음은 무엇인가?
요즘 삶이 즐겁다. 직업을 여러 개 갖는 N잡 시대에 20년 넘게 좋아해온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어서다. 더욱 진지하게 배우고 싶어 한류문화대학원에 등록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아트와 마케팅이 결부될 수밖에 없고, 내 공간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녹여내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졌다. 국내 작가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활발히 소개하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

 

Editor 안서경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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