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유랑단 진해성, 한강, 신승태 인생 화보

신승태, 한강, 진해성. 노래 하나로 전국 팔도를 섭렵한 트로트 유랑단들의 무대 밖 모먼트.

 

레드 체크 패턴 재킷, 데님 셔츠와 데님 팬츠 모두 SAINT ARMOUR, 네이비 스웨이드 로퍼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보리 재킷, 레드 스트라이프 셔츠와 화이트 팬츠 모두 SAINT ARMOUR, 네이비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버건디 재킷, 블루 셔츠와 화이트 팬츠 모두 SAINT ARMOUR, 화이트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트로트에 살고 트로트에 죽는 별, 진해성

남들은 돌고 돌아 트로트에 정착했지만 진해성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트로트 생각뿐이었다.

옐로 페이즐리 패턴 스카프 ETRO, 화이트&네이비 스트라이프 패턴 니트 OFFICINE GENERALE,
화이트 데님 팬츠 ZARA, 카키 스웨이드 버클 슬리퍼 BIRKENSTOCK.

방송에서 말이 적어서 과묵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형들에게 능청스럽게 장난 거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막내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내 말투를 싫어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고쳐보려고도 했지만 도저히 안 되더라. 서울 말씨를 쓰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오글거려서.(웃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말수를 줄이게 됐다.

예명인 ‘진해성’은 ‘진해의 별’이라는 의미인데, KBS <트롯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면서 ‘전국구 별’로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웃음) 패자부활전까지 거쳐 결승 무대에 올라간 터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막판 까지도 4위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잘 버텼다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 시청자 투표 점수에서 4400점 만점에 4400점이 딱 뜨는 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동시에 서러운 마음도 들더라. 무명 시절이 떠올라서 감정이 복잡했다.

아들을 위해 예명까지 지어주신 아버님이 특히 기뻐하셨을 것 같다.
우승 상금으로 받은 1억 원을 전부 부모님께 드렸다. 은행에 가서 송금을 하는데 직원이 “이 돈 어디에 보내시는 거예요?” 하더라. 액수가 크니까 혹시 보이스 피싱이 아닌지 걱정되었던 거다. “아버지 드릴 건데예” 했더니 용도가 뭔지 다시 묻더라. 그래서 “아버지 용돈예” 하는데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웃음) 진짜 오랜만에 스스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물두 살에 데뷔하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고 있다.
다른 장르도 불러봤지만 나하고는 안 맞더라.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트로트는 자꾸 부르고 싶고 질리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트로트만 불러도 좋겠다 싶을 만큼. 그래서 트로트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군대에 갔다. 말년 휴가 때 제대 후 어떻게 데뷔할지 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그 전엔 반대가 심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인정해 주시더라.(웃음)

5년 전 케이블 가요 프로그램에서 부른 데뷔곡 ‘내 사랑 받아줘’ 영상 조회수가 20만 회를 훌쩍 넘었더라.
오래전 팬들과 찍은 사진들도 올라오고. ‘내 사랑 받아줘’는 데뷔곡이라 많은 분들이 찾아 봐주시는 것 같다. 그런데 진짜 진해성의 색깔을 찾은 곡은 ‘사랑 반 눈물 반’이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분들이 즐겨 부르시는 곡이기도 하다. 가수는 자기의 노래가 있어야 한다. 이름만 알려지면 결국 잊히기 때문이다. 노래를 먼저 알리기 위해 많은 기회를 포기했다. <트롯 전국체전>은 그래서 의미가 더욱 크다.

유명인이 되는 건 나를 향한 호의뿐 아니라 악의까지 무한대로 확장되는 일이다. 스스로 감당할 준비가 된 것 같나?
세상엔 흑과 백, 그리고 그 중간에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해야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식물이 햇볕만 계속 쬐면 말라 죽지 않나. 비와 바람도 맞아야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힘든 순간마다 날 일으켜 세운 건 결국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먼 훗날 진짜 멋있는 가수가 되어 있는 나를 떠올리면서, 믿음으로 버티는 것. 그 시간들이 쌓여 왔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10년 뒤 진해성은 어떤 가수가 되어 있을까?
진짜 무게감 있는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다. 나훈아 선생님, 이미자 선생님, 조용필 선생님처럼 이름 석자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그런 가수 말이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는 모르겠다.(웃음)

스케줄이 없을 때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혼자 산 지 6년 정도 됐는데 스케줄이 없는 날은 주로 운동을 한다. 산이나 한강에도 자주 간다. 난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쉴 때 일을 한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하는데, 멍하니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거나 글을 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마트폰에 메모하고, 나중에 노래 가사로도 쓰고.(웃음)

최근에 쓴 글을 읽어줄 수 있나?
쨍쨍한 태양빛 아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본다. 산비둘기 먹이 찾아 구구거릴 때 난 내 인생 찾아 아자아자. 떠가는 구름이 나를 쳐다본다. 떠가는 바람도 나를 밀고. 두려워하지 말자. 생각이 많으면 용기가 사라진다. 세월아 네가 아무리 그래 봐라 내가 끌려 다닐지. 인생아 네가 나를 따라와라, 그게 인생이지. 우리는 또 이렇게 살아간다. 우리는 또 이렇게.

 


 

인생을 유랑하듯, 신승태

퓨전 국악 밴드 ‘씽씽’의 보컬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신승태가 이번에는 트로트를 접수했다.

그린 오픈 칼라 셔츠 COS, 블랙 스트랩 샌들 REKKEN,
블랙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해 11월 앨범 <사랑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그와 동시에 <트롯 전국체전>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앨범은 원래 오래전부터 준비하던 것이다. 트로트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고 해보고 싶던 장르였는데 <미스터트롯>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당시는 ‘나도 해볼까?’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너무 준비 없이 나가서 금세 떨어졌지만.(웃음) 그때 경연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트로트를 더 좋아하게 됐다. <미스터트롯>이 끝나고 지금 소속사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게 됐고 <트롯 전국체전> 출전 기회까지 얻게되었다.

판정단 평가까지는 1위를 달리다가 시청자 투표 점수에 밀려 최종 4위에 안착했다. 아쉬움은 없었나?
전혀. 나한테 남는 건 등수가 아니라 무대다. 무대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트롯 전국체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난 앨범을 내고 트로트 가수로 활동했을 거다. 감사한 건 좋은 동생, 형, 동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같은 장르를 좋아하고 고민하는 동료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조금 외로웠을 거다. 아니면 내가 어떻게 <트롯 매직유랑단> 같은 예능에 출연하고 <불후의 명곡> <열린음악회> 같은 무대에 서보겠나. 생각만 해도 꿈같은 일이다.

국악을 전공하고 퓨전 국악 밴드 ‘씽씽’의 보컬로도 활약했다.
독특한 콘셉트로 민요 메들리, 난봉가, 사설난봉가 등을 부르던 씽씽 밴드가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 라이브 무대에 선 건 당시에도 큰 화제였다.

내게도 특별한 추억이다. ‘국악과 트로트를 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어느 순간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일 뿐 장르의 구분은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 정통 국악계에서 보면 난 내놓은 자식이다.(웃음) 스스로를 ‘국악인’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일부 분위기에 난 잘 적응하지 못한 편이다. 지금은 트로트에 빠져 있고 아직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어떤 고민들인가?
주로 무대 공연을 많이 해서 노래할 때 표정을 많이, 크게 쓰는 편이다. 그런데 그걸 TV로 보니까 너무 부담스럽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주눅 들고 위축되면 그게 또 다 드러나고…. 경연 중간에 이 둘 사이의 접점을 찾지 못해서 너무 고생을 했다.

<트롯 전국체전> 이후 고향 속초의 홍보대사가 되었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바다를 낀 한적한 속초에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그런데 내가 속초를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다니! 인생은 너무 재미있는 것 같다.(웃음)

방송 전후 일상은 얼마나 달라졌나?
포털 사이트에 우리 소식이 뉴스처럼 매일 올라오는 것도 신기하고 얼마 전에는 ‘출근길 룩’ 사진도 찍혔다. 결승까지 올라 여러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분명 행복하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조금은 자유를 잃었다.(웃음) 사람들이 막 알아보고 유명해져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다. 예전에는 꼭 서고 싶은 무대가 있으면 내 돈을 들여서라도 하고, 하기 싫은 무대는 돈을 많이 줘도 거절했다. 그런데 지금은 소속사도 있고 마냥 내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스케줄 다닐 때 누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것도 사실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이렇게 조금 답답해진 것 말고는 대체로 즐겁다. 오늘처럼 <주부생활> 표지 촬영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하하.

<트롯 전국체전> 이후 4월에 판소리 공연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 판소리와 트로트를 병행할 계획인가?
일단 내 베이스는 판소리를 만드는 팀이다. 판소리 <레미제라블-토막소리 시리즈> 공연은 트로트 앨범을 내기 전부터 약속돼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 트로트 가수로서 빨리 자리를 잡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둘 다 하면 되지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이 리그에 들어와 보니 욕심이 생긴다. 해성이처럼 오랫동안 트로트를 공부하지도 못했고, 한강 형처럼 나만의 확실한 무기도 아직은 부족해서 더 노력해야 한다.

나만의 힐링 방법이 있다면?
먹는 걸 진짜 좋아해서 맛집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트롯 전국체전>했던 친구들도 자주 만난다. 요즘은 재하나 최향을 자주 만난다. 준결승까지 올랐던 (박)예슬이는 재즈를 하던 친구인데, 마침 작업실이 우리 집 바로 근처라 자주 놀러 간다. 먹고, 수다 떨고, 노래 부르고. 그게 최고의 힐링이다.


 

진짜 금의환향한 한강

작년 봄 “더 멋지고 더 유명한 가수가 되면 보자”며 다짐 같은 인사를 남긴 한강은 1년 뒤, 진짜 금의환향한 표정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다크 그레이 셔츠와 팬츠, 톤 다운 핑크 니트 베스트 모두 COS, 화이트 스니커즈 LACOSTE.

<미스터트롯> 탈락 직후 인터뷰를 한 게 작년 2월이더라. 딱 1년 만에 표지 모델로 다시 만났다. 정말 반갑다.
하하.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맞을 줄은 몰랐다. <주부생활> 영업사원으로 ‘열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표지 모델이라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2주에 한 번씩 진행하는 <트롯 매직유랑단> 촬영 말고는 해성이, 승태와 따로 보기도 쉽지 않은데, 좋은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니까 색다른 재미가 있다.

무대 밖에서 셋은 어떤 캐릭터인가?
오늘 해성이를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만큼 평소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일찍 활동을 시작한 데다 선생님이나 어르신들을 주로 만나서인지 은근히 애어른 같은 친구다. 평소 말수도 적어서 형들이 “해성아, 편하게 네 얘기도 좀 해도 돼”라고 할 정도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잔망미가 폭발했다.(웃음) 승태는 할머니가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뭘 하든 “아이고 잘한다” 하면서 흐뭇하게 바라봐주고 여유가 넘치는 스타일이다. 고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동생이다.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면서 두루두루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게 마냥 좋고. 녹화를 오래 하다 보면 아무래도 텐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분위기를 업시키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트롯 전국체전> 이후 출연진과 함께 <트롯 매직유랑단>에도 함께 출연 중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보니 어땠나?
다들 예능 초보라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기 일쑤다.(웃음) 말 한마디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거나 괜히 오버하기도 한다. 다행히 편집을 매끄럽게 잘해주셔서 티가 많이 안 날 뿐이다. 김신영 누나가 어설픈 우리를 잘 이끌어주고, 문세윤 형도 많이 조언해주신다.

‘트로트 1급수’ ‘감성규’라는 별명이 붙었다. 선을 넘지 않는 느끼함은 한강만의 트레이드마크인 듯하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는가?
‘깔끔한 보이스’라는 평가를 들었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 나훈아 선생님의 무대 매너를 닮고 싶었다. 능숙하고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듯한 느낌이 너무 멋있지 않나. 동작은 너무 크게 하지 않고, 동작 마지막에 살짝 멈추는 것이 나름의 포인트다.(웃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무대에 섰을 때 부끄럽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트롯 매직유랑단>에서 (설)하윤이와 보여준 ‘카사노바’ 무대가 완성도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듀엣 무대를 할 때 반응이 좋아서 제작진에서 이런저런 제안을 많이 주신다. <불후의 명곡>은 워낙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섭외를 받고 진짜 감격스러웠다. 노래 끝판왕들이 나가는 무대인 데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무대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뮤직뱅크> 무대에도 섰다.
신곡 ‘술 한 잔’을 부르는 모습에서 능숙한 트로트 가수의 여유가 묻어 나더라. 나에게는 선물 같은 무대였다. <트롯 전국체전>은 승부를 갈라야 하는 경연이니 중압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뮤직뱅크>는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출연자 중에 나 빼고 다 아이돌이었는데, 그런 경험도 재미있었다.(웃음) 무대에 서면 설수록, 방송을 하면 할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조금씩 여유도 생긴다.

규칙적으로 하는 운동이 있나?
최근에 헬스를 다시 시작했다.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것도 즐긴다. 활력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는 것처럼, 체력을 끌어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케줄이 없는 날에 심장이 쿵쾅쿵쾅 뛸 때까지 운동을 하고 나면 뿌듯하고 걱정들이 조금 잦아든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나름의 안도감이랄까. 운동을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집에서 넷플릭스를 본다. 최근에 본 작품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예전에는 눈물이 많이 없었는데, 이제는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부터 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감성이 풍부해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노래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다. 가수로서 나만의 무기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시기 같다. 트로트 특유의 꺾기에서 오는 찰진 맛, 밀당하듯 감정을 줬다 뺏는 기교, 소리의 세기 같은 것도 많이 연구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트로트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것이다. 노래도 잘하고, 예능도 더 해보고, 기회가 된다면 연기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 번 연말에 하는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해보고 싶다. 시상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B컷 대방출

 

 

 

Editor EunHyang Kim
Photographer CHA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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