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맥락으로 바라본 부산의 가치

건축의 배경에는 언제나 도시가 있다. 도시의 맥락을 이해할 때 건축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건축가 이기철이 바라보는 부산은 로컬리티와 콘텍스트의 무수한 접점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도시다.

예술이라는 거대한 범주를 둘러싼 인간의 활동과 사유가 전례 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무수한 카테고리 중 ‘건축’과 ‘공간’은 현재 우리 삶을 규정짓는 가장 핵심 키워드다. 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사회적 요구가 생겨나는 지금, 부산의 도시 지형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건축가 이기철에게 부산은 골목과 언덕 사이사이 건축적 소재가 넘쳐나는 흥미로운 놀이터다.

올해 초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혁명은 도시적으로>에 참여하셨죠. 건축가 11인이 팬데믹 이후 도시 건축에 대해 풀어낸 작품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건축가들이 즐겨 쓰는 말이 콘텍스트, 즉 맥락이에요. 건축은 부피가 큰 구조물이지만 콘텍스트의 변화에 무엇보다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합니다. 건축의 콘텍스트는 지역의 역사와 형성 배경, 지형, 거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이슈까지 다양하죠.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의 제목은 ‘코로나 그리드’예요. 건축은 인간의 인체 치수와 행위의 크기를 공간화한 것에서 출발하는데, 코로나19 이후 2m는 우리 생활에서 새롭게 대두된 거리의 단위죠. 여기에서 착안해 2m 간격을 둔 가상의 직교 체계를 만들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앉기, 기대기, 오르기 등의 행위를 유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어요. 이처럼 건축은 사회적, 지역적 특성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담아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부산 건축물의 특징적 요소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언덕 위의 작은 골목 사이로 계단이 정말 많아요. 정교하게 잘 정돈한 계단이 아니라 투박하게, 필요에 의해 그때그때 지어진 것들이죠. 언덕과 높은 경사를 풀어내는 대표적인 방식이 ‘계단’이에요. 최근 부산 영도 지역에 공공 시설물을 디자인한 것이 있는데, 여기에도 계단을 활용했어요. 폭을 확장한 계단을 오르다 보면 중간중간에 광장이 나타나는 식이죠. 계단 옆으로는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물들을 배치하고요. 경사지라는 지형적 특징과 지역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공공 시설물의 성격을 고려한 거예요.

부산 시민들에게는 한때 외면받던 감천마을이 ‘한국의 산토리니’로 주목받고, 또 최근에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상업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어요.
바다와 산지라는 지형적 배경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를 거치며 부산 건축은 독특한 형태를 구성해왔어요. 때문에 ‘재생’이라는 키워드는 최근 몇 년간 부산의 중요한 화두였죠. 다양한 시도와 젊은 감각이 더해지면서 재미있는 공간들이 생겨나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 같아요. 수도권을 중심으로 디자인적으로 완성도 높은 건축물이 많이 지어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에 반해 너무 똑같은 건물들만 우후죽순 늘어난 건 안타까운 일이죠. 마감재나 형태, 스타일이 비슷비슷한 건물들요. 그러다 보니 반대급부처럼 다르고 색다른 것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게 ‘감천마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성장의 표준을 보여주는 건물 대신 다양성을 나타내는 건물과 지역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거죠. 부산은 이런 다양성이 있는 도시이고, 이를 잘 보존하면서 로컬리티를 살리는 건축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이 건축가들의 숙제인 것 같아요.

로컬리티를 살린 미래적 형태의 건물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부산 구도심에 있는 오래된 건물들은 무척 흥미롭게 생겼어요. 1층은 아치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고, 2층은 넓고 반듯한 창을 낸 공간이, 그 위에는 마감재나 구조가 전혀 다른 주거 공간이 툭 하고 올려져 있는 식이죠. 아치는 일제강점기의 관공서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예요. 그러다 전후에 필요에 의해 한층 한층 그냥 쌓아 올린 건물들이에요. 세련되고 정돈된 것보다는 필요에 의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지역민들의 성격과도 조금 닮아 있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재미있어요.(웃음) 망미동은 비교적 평지에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데, 70~80년대 주택 디자인의 흐름이 곳곳에서 보여요. 분홍, 파랑 같은 과감한 색들도 눈에 띄고요. 이처럼 과거 주거 문화의 특징이나 요소들은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줍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건축재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는 ‘공간의 전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극장에 가면 어두운 통로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큰 무대나 환한 스크린을 마주하는 것처럼, 비슷한 공간이 반복되다가 드라마틱하게 전혀 다른 공간이 등장하는 동선 배열을 좋아하죠.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예측 가능한 공간보다는 이처럼 흐름에 변주를 주는 것에 끌리더라고요. 주거와 상업시설, 공공시설 등 여러 분야의 작업을 하고 있는데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요소예요. 여기에 앞서 말한 로컬리티를 더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건축적 측면에서, 부산 여행의 새로운 루트를 추천해준다면?
최근 새로 지어진 복합문화공간들을 둘러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겠지만, 저는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을 구경해보기를 권해요. 대청동의 한국은행 건물은 1960년대 지어졌는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최근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요. 건물 안 계단이나 돌부침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디자인되어 있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기상청 건물도 아치 형태가 독특하게 들어가 있어서 흥미롭고요. 부산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백제병원은 지금 서점과 카페로 리노베이션됐는데, 외관과 내부의 기본 구조는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향유하는 기분이 들죠. 이런 곳들을 둘러보면 좀 더 특별한 여행이 될 거예요.

부산은 한국전쟁 피난민들로 인해 갑자기 인구가 불어난 지역이다. 산지의 빈곳에 불규칙적으로 집을 짓고, 그 사이로 수많은 골목들이 생겼다. 70년이 지난 지금 그 흔적들은 부산의 도시 구조를 이루는 큰 특징이 되었다. 이기철 소장이 설계하고 지은 부산 송도의 송도주택(AAWH)은 이런 불규칙한 주거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불규칙한 골목 구조를 집이라는 공간 내부로 축약시켰다. 층별로 주 동선을 설정한 뒤, 이 동선 사이를 가로지르는 내외부의 계단 8개와 온실을 관통하는 튜브 브리지가 중심에 있다. 관통, 교차되는 동선 사이로 새로운 공간이 형성되는 모양은 복잡하게 얽힌 부산 구도심의 골목길을 떠올리게 한다.

 

Editor 김은향
Photographer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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