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방

자신과 삶에 진심인 맥시멀리스트들의 버리지 못하는 ‘나의 생활’, 그 안의 룰.

 

나의 채도를 높이는 공간
정혜윤 / 프리랜스 마케터, 작가
@alohayoon

정혜윤의 공간은 음악과 식물로 가득하다. 굳이 시선을 돌려 찾지 않아도 눈길 가는 곳마다 그것들이 있을 정도다. 파란 피아노와 턴테이블, 정갈하게 쌓인 LP와 푸릇푸릇한 식물은 그녀가 요즘, 그리고 꾸준히 좋아하는 것들이다. “음악은 어릴 때부터 항상 곁에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 항상 음악이 흘렀고, 집에는 늘 음반이 있었고요. 지금 갖고 있는 LP의 3분의 1은 엄마한테 물려받았어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창 시절 내내 여러 갈래의 음악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매일 글을 쓰는 요즘도 음악은 항상 틀어놔요. 꼭꼭 숨은 제 감정을 끌어내는 데 도움을 주거든요.” LP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모은 것들이다. (물론, LP 수집은 현재진행형이다.) 학창 시절 열심히 사 모은 CD 역시 피아노 옆으로 빼곡히 쌓여 있다.

“저 파란 피아노도 사람들은 새로 샀는 줄 알아요. 색도 직접 칠했냐고 묻고요. 그런데 사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치던 피아노예요. 그 위에 놓여 있는 노란 꽃병도 고등학생 때 2만원인가 3만원 주고 샀고요. 찾아보면 그런 게 꽤 있어요. 제가 갖고 있는 물건들은 대체로 다 알록달록했어요. 어릴 때 쓰던 것들이 지금 이 집에서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즐거워요.”
요즘 그녀의 생활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바로 식물이다. 어릴 때부터 덕질에 소질이 있었다던 그녀는 식물 역시 파고들수록 끝이 없는 ‘덕질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그 재능을 식물에 쏟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름도 희귀한 ‘삼색달개비’를 들여왔다. 은은한 보랏빛을 품은 삼색달개비는 창가에서 햇살을 담뿍 맞고 있다.

“식물이 주는 에너지를 무시 못해요. 실제로도 음이온이나 피톤치드처럼 좋은 게 나온다고 하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식물에 물을 주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아요. 음악 틀어놓고 창 너머로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나, 피아노 칠 때 느끼는 행복한 감정과 같은 수준으로요. 생각해보니 그런 기분은 모두 온라인에서 벗어났을 때 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녀가 스스로 ‘융지트’라고 부르는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은 이제 1년이 조금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자신도, 공간도 모두 색깔이 선명해진 느낌이라고 말한다. “공간에도 기운이 있다고 하잖아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 공간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 공간, 어딜 봐도 ‘나’라는 사람이 잘 보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공간의 구분이 없는 원룸에 구역마다 역할을 부여했다. 식사하는 곳, 친구들과 노는 곳, 작업실, 음악을 듣고 쉬는 곳 등 역할을 나눈 뒤 어울리는 물건들을 배치하며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다시 알게 되기도 했다. 얼핏 뭐가 많아 보여도 모든 물건이 무언의 경계와 질서로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을 뿐, 결코 과함이 없다. 역할이 다른 물건들이 한 공간 안에서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건 모든 물건에 그녀의 취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유독 애착을 느끼는 아이템을 꼽자면 침대 옆에 놓인 칼 세이건과 데이비드 보위의 그림이다. 화가인 친구가 ‘영감을 주는 인물들’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작업을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려준 것이라 더욱 소중하다. 그녀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옷가지는 버려도, 애착 물건들은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단다. 그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은 곧 지나온 시간이자 기억이다. 오랜 시간 모아온 물건에는 그것을 손에 넣을 때의 감각과 감정이 서려 있다. 융지트를 촬영한 날의 사진들이 곧 정혜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에 취향을 담는 일
김소리 / 인테리어 소품 숍 운영
@inhouden_jr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전공 역시 인테리어 가구였지만, 유럽 현지에서 빈티지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시간을 간직한 물건의 이면에 담긴 ‘쓸모’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빈티지 문화를 한국에도 공유하고 싶었다. 김소리가 예쁜 물건을 취향대로 가져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인테리어 소품 숍 ‘인하우댄’을 시작한 이유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때 지내던 곳이 거의 현지인들만 사는 동네였어요. 게다가 운이 좋게도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가게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점차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건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물건의 쓸모에 대해서요. 나한테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쓸모없는 물건은 아니잖아요. 그 모든 물건이 모여 이렇게 새로운 문화가 된다는 게 참 부러웠어요.”

인하우댄은 네덜란드어로 ‘담다’는 뜻이다. 물질적인 것보다 감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 물건에 대한 그녀의 철학에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아 선택한 이름이다. 김소리의 작은 방에도 많은 물건이 놓여 있다.
“책과 사진, 캔들, 인센스가 많은데, 모두 요즘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이것들을 활용해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쌓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공간을 꾸미고 있어요. 모든 시간에 취향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작년에 너무 바쁘게 지내면서 번아웃이 크게 왔어요. 그런 힘든 일을 또 겪지 않으려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 생겼어요. 그래서 요즘 인센스 홀더를 가장 아껴요. 생각을 정리할 때 필수품이거든요.(웃음)”

이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바로 벽이다. 크고 작은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어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절로 인다. “모네와 «오만과 편견»은 요즘 제가 푹 빠져 있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모네와 관련한 책과 «오만과 편견» 원서를 모으고 있어요. 미국에서 출판되었든, 영국에서 출판되었든 오래되었다 싶은 책은 무작정 다 사고 있죠.(웃음)” 새로운 물건을 생활로 들일 땐 새로운 사연도 함께 따라온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건을 살 때의 기억이 담겨 더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중고 사이트가 있는데, 모두 직거래로 운영해요.

뭐 하나를 사러 나가면 물건을 파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하죠. 우리 엄마가 타던 자전거인데 이런저런 사연으로 지금은 내 딸이 타게 됐고, 어떤 사연으로 다시 팔게 됐다는 식으로요. 한 노부부에게 카메라를 사면서 그분들의 결혼 이야기부터 들은 적도 있어요.(웃음) 나는 이 물건을 이렇게 써왔고, 너는 앞으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기억과 그날의 기분이 물건에 온전히 담기는 것 같아요.”

그녀의 시간과 취향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처음 이사 와서 방을 꾸밀 때와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이다. 공간의 변화를 보면 당시에 내가 뭘 중점적으로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가장 중요했을 때와 열심히 일하는 게 가장 중요했을 때의 공간은 서로 다른 공간이다. 생각의 흐름에 따라 취향도 공간도 함께 바뀐다. 그 안에 있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소중하게 썼던 물건을 다른 사람도 소중히 쓰길 바라며 떠나보낸다고 한다.  “이 물건은 어디선가 또 다른 빛을 발할 거예요. 나는 또 새로운 취향과 시간으로 공간을 채워야 하니까요.”

 


 

변주의 즐거움
최은영 / 마케터
@loveyourtoday

최은영의 공간은 변화의 숙명을 타고났다. 집에서 최소한의 활동만 하며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집순이 타입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하는 타입도 있다. 그녀는 스스로 후자에 속한다고 했다.
“제가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에너지를 자신에게 소비하면서 궁극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만족스러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나의 기호를 찾는 거죠.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가 출근 전 셀피를 찍는 ‘오오티디존’은 최근 가장 큰 변화를 준 곳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흰색 서랍장도 결국 자신의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 같아 챌린지에 성공한 느낌이란다. 아주 색다른 분위기의 가구도 눈에 들어온다.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문갑이다. 이 공간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다. 시간을 간직한 물건이 으레 그렇듯, 할머니의 문갑 역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뭉근하게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가족의 시선과 시간을 간직한 물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장 거울 옆에 놓여 있는 ‘라이프’ 사진집은 외할아버지에게 받았고, 그 반대편에 걸린 작고 오래된 그림 액자는 부모님이 결혼 선물로 받은 것이다. “누군가의 역사가 깃든 가구나 소품이 확실히 더 의미 있게 다가와요. 그 오래된 물건들이 지금 이 집에서 다른 시간을 거쳐온 가구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오래된 물건 중에도 조명과 거울은 특별하다. 시대의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빈티지 물건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곤 한다고. 그녀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집 앞에 있는 꽃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원하는 꽃을 골라 내키는 대로 꽃병에 담고, 일주일을 함께한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면 같은 일을 반복한다. 꽃집 사장님은 아예 일주일 단위로 꽃병까지 빌려준단다.

“제가 매주 꽃을 사는 이유는 집 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이번 주엔 또 어떤 꽃이 들어왔을까? 새로운 꽃으로 어떤 조합을 해볼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커요. 마치 사진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필름카메라 같아요.” 자신을 ‘취미 부자’라고도 표현하는 그녀는 시시각각 변하는 취미 중에서 꽃꽂이만큼은 2년 이상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갖고 싶은 물건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는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집에 들이고 분위기를 바꾼다. 호텔처럼 깔끔하게 비워진 공간보다는 다양한 물건들로 그득 채워진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집은 그래야 더 정겹다고 믿는다.

“집에 물건이 많다는 건, 나라는 사람을 더 꺼내놓는 무언의 행위 같아요. ‘나 이런 사람이고 이것도 좋아해! 저것도 구경해봐!’ 하는 느낌이죠. 항상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알아가고도 싶어요. 그런 성격이 집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보기에도 저는 엄청난 맥시멀리스트예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맥시멀리스트는 자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요?” ‘다채로운 것들이 모여 그 자체로 조화로운 곳’을 꿈꾸는 공간은 그녀 자신의 태도와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Editor 김병주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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