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의 지금

“지금이 딱 좋아요.” 바삭하게 부서지는 초여름 햇빛을 기분 좋게 바라보던 김유미가 말했다.

가까운 곳에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 갈 때마다 정말 좋아요. 씨를 뿌려놓고 가끔 가서 잡초만 정리해주면 알아서 쑥쑥 자라요.
그걸 식탁에 한 상 차려놓으면 진짜 뿌듯해요. 아침 일찍 일부러 집에서 좀 먼 곳으로 커피를 사러 가는 길도 참 좋아해요.

 

동물을 좋아하나 봐요. 촬영 때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잘 따르네요.
개든 고양이든 가리지 않고 동물은 다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웠거든요. 하지만 지금 같이 지내는 동물은 없어요. 예전에 몇 번 아주 슬프게 헤어진 기억이 있어서 선뜻 들이지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도 늘 마음 한편에 동물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어요.

어릴 때를 추억하면 기억나는 것들이 또 있나요?
아버지가 군인이셨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을 강원도에서 보냈죠. 집 주변이 온통 산이고 마당도 딸려 있었어요. 초록색이 가득한 풍경들, 그곳에서 들리던 소리들이 문득 문득 떠올라요. 나뭇잎 뜯어다가 오빠들 앉혀놓고 이것저것 만들어주면서 소꿉놀이하는 것도 좋아했고요. 수다도 많이 떨었고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한참 떠든 기억 말고는.(웃음) 혼자서도 잘 놀았어요. 별로 겁이 없었나 봐요. 두 오빠들이 놀러 나가고, 엄마가 잠깐 장 보러 가서 비어 있는 집에서도 혼자 뒹굴뒹굴 잘 놀았어요.

그런 찰나의 순간에 진짜 내가 드러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을 때거든요.(웃음) 뭘 보거나 읽는 것도 별로예요. 그런 건 진짜 하고 싶을 때 아니면 필요할 때만. 남편이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아해요. 둘 다 얘기하는 걸 좋아해서 아이 재우고 한참 수다 떨다 잠들기도 해요.

남편과는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나요?
문득 생각나는 것들이나 감정들을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편이라 거창한 주제랄 것도 없어요.(웃음) 정우씨는 언제나 자기 얘기를 들려주고 상대의 얘기를 잘 들어줘요. 무엇보다 유머스럽죠. 처음 만났을 때 ‘아,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싶어 마음이 확 열리더라고요.

결혼하고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드라마 <안녕? 나야!>를 통해 복귀했어요. 오랜만에 촬영장에 가보니 어떻던가요?
결혼을 하고 그해에 바로 아이가 태어났는데, 신기하게도 출산과 동시에 삶의 1순위가 바뀌었어요. 저도 예상치 못한 변화였어요. 작품을 할 기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의미가 조금 남달랐어요. 작가가 예전에 제가 출연했던 드라마 <살맛납니다>의 보조 작가 출신인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입봉했거든요. 1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작가가 메인 작가로 데뷔한다고 하니까 엄청 기쁘더라고요! 그 작품에 제가 꼭 출연해줬으면 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출연하게 된 거예요.

연기자와 보조 작가가 친분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죠?
워낙 많은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모든 스태프와 친해지지는 못해요. 그런데 좋은 기회로 한 번 친해지면 그 인연을 꽤 오래 유지하는 편이에요. 배우는 저마다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요. 그게 연기 스킬일 수도 있고, 커리어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나 성취감일 수도 있죠. 저는 사람인 것 같아요. 마음이 아주 잘 맞는 동료 배우나 스태프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워요. 이번 작품에서는 (최)강희 언니를 만난 게 진짜 행운이죠. 언니를 보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배웠어요. 끊임없이 “넌 어때?” 하고 물어봐주는 언니 덕분에 위로도 많이 받았고요.

극 중의 ‘오지은’은 겉으로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그 열정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망가지기도 하고, 동창 ‘반하니’에 대한 열등감도 있어요. 그걸 밉지 않게 잘 표현한 것 같고요.
대본을 받고 나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이미지가 좀 차갑고 도회적인 편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허술한 면이 많아요.(웃음) 좀 대범한 성격이라 작은 일에 연연하지도 않고요. 웬만한 일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요. 아무래도 작가가 제 실제 모습을 잘 알다 보니 캐릭터의 특징이 더 잘 부각되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하면서 무척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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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반하니’와 결국 멋지게 화해하잖아요. 한 사람이 또 한 번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제가 예고를 나왔는데, 그때가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치열하게 보낸 시기거든요.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이 모여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곳이잖아요.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을 보면서 서로 의식하고 질투도 했을 거예요.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갔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상하게 그 시절 생각이 자꾸 나더라고요.(웃음) 내가 오지은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생각나고, 혹은 누군가가 나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죠. 이제는 그런 감정들을 해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현재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뭘 할 때 가장 즐겁나요?
여섯 살 된 딸과 대화 나눌 때요. 말을 너무 잘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저는 아이를 대할 때 엄마 화법보다는 성인의 화법을 쓰는 편이에요. 얘기할 때는 꼭 눈을 마주치도록 하고요. “오늘 어땠어?” “그래서 기분은?” “그건 어쩔 수 없지. 네가 받아들여야 해.” 뭐 이런 얘기들요.(웃음) 또 가까운 곳에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 갈 때마다 정말 좋아요. 씨를 뿌려놓고 가끔 가서 잡초만 정리해주면 알아서 쑥쑥 자라요. 그걸 식탁에 한 상 차려놓으면 진짜 뿌듯해요. 매일 빼놓지 않는 건 ‘걷기’죠. 아침 일찍 일부러 집에서 좀 먼 곳으로 커피를 사러 가는 길을 참 좋아해요.

 

 

 

Feature Editor EunHyang Kim
Fashion Editor Hayan Kim
Photographer SIN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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