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식물로 집 안을 채운다고 과연 자연과 가까워질까?

제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이끌기는 쉽지 않다.
남산 자락에 자리한 문화 공간 피크닉(Piknic)은 서울의 넘쳐나는 복합문화공간들 사이에서 늘 그런 역할을 담당해왔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예리하게 포착해온 전시 기획자 김범상 대표가 이번에 길어 올린 주제어는 바로 ‘정원’이다.

예술의 큰 힘은 ‘인식’에서 온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왔던 것에 반문을 던지고, 미처 깨닫지 못한 현실과 감정을 일깨워주고, 정의 내리지 못해 둥둥 떠다니던 감각과 감흥을 언어 또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통해 잡아놓는 것. 감도 높은 큐레이터와 전시 기획자의 안목은 그래서 더더욱 소중하다.
그중 한 사람이 ‘글린트’의 김범상 대표다.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ECM의 역사와 음악을 소개하는 전시 <ECM,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2013)에서는 전시장 전관을 약 1500여 장에 달하는 ECM의 음반으로 채워 우리의 청각을 깨웠고, 집에 대한 여러 시각을 다채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전시 <즐거운 나의 집>(2014)은 ‘집’을 개인의 역사와 정서가 깃든 내밀한 공간으로 인지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러한 입체적 전시는 영화감독을 꿈꾸며 문학, 음악, 전시, 영상, 공연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경계 없이 섭렵한 김범상 대표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서 가능했다.
인상적인 두 번의 전시로 단박에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중심에 선 ‘글린트’는 5년 뒤 서울 회현동에 문화 공간 ‘피크닉’을 열며 아예 터를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3년. 피크닉은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동시대적 키워드를 절묘하게 담아낸 전시로 여전히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지난해 진행한 <명상 Mindfullness>에 이어 올해 <정원 가꾸기 Gardening>까지 코로나19라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피크닉의 전시를 통해 큰 위안과 해소를 얻었다.

이번 전시도 역시 시의적절한 주제어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획자로서는 참 귀한 재능인데, 비결이 있나요?
좋게 평가해주시니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 전략적으로 전시를 준비하지는 않아요.(웃음) 지난해 진행한 <명상>은 코로나19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전부터 준비한 전시예요.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기’ ‘자기 자신을 관찰하기’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한창 전시를 준비하던 중에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가 터진 거죠. 그다음 전시는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크든 작든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또는 공간들이 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 주목했어요. 때마침 피크닉의 조경에도 변화를 줄까 하던 참이었고요. 정원을 통해 좀 더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원래 정원이나 식물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식물에 대한 관심은 쭉 있었어요. 물을 주고 햇볕을 쬐면서 직접 식물을 키우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아무래도 전시 기획자이다 보니 공간에 식물이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유심히 보게 되는데, 식물을 가둬놓고 인스톨레이션(설치미술) 하는 기획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있었고요. 그리고 원래 정원 구경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담양 소쇄원이나 안동 만유정 같은 곳이요. 얼마 전에도 예천 초간정에 다녀왔어요. 오래된 정원의 큰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복잡한 생각이 정리돼요.

이번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한 ‘정원’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아파트’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주거 환경을 고려할 때 정원을 가꾸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정원의 대체제처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반려식물, 플랜테리어 같은 개념이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집 안에 식물, 자연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해요. 화분을 들이고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놓고 위안을 삼는 거예요. 그런데 예쁘고 근사한 식물로 집 안을 채운다고 해서 과연 자연과 가까워지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진짜 자연과 가까운 아주 전문적인 형태의 자연주의 정원부터 여러 창작자들의 예술 작품을 통해 구현된 정원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식물이나 정원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원’이 도시의 자연성 회복에 가장 유효하고 중요한 장소라는 점이에요. 전시 기간을 4월부터 10월까지 길게 잡은 이유도 전시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끼게끔 하고 싶어서예요. 봄에 보는 전시와 여름에 보는 전시, 가을에 보는 전시는 느낌이 다를 테니까요.

<정원 만들기 Gardening>는 ‘정원’을 관통하는 여러가지 키워드를 통해 식물을 가꾸는 삶에 대해 톺아본다. 예민하고 까다롭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땅의 진정한 의미, 우리가 기억해야 할 8명의 정원가, 정원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 나만의 정원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위한 소중한 깨달음까지. 이 모든 전시를 찬찬히 살펴보고, 피크닉의 옥상에 오르면 조경가 정영선이 차린 친근한 화단이 기다리고 있다.

피트 아우돌프, 정영선, 김봉찬 등 국내외를 대표하는 조경가들을 한자리에 모으기까지의 수고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전시 준비 과정도 궁금합니다.
피트 아우돌프는 요즘 조경계에서 이른바 ‘우주 대스타’잖아요. 워낙 팬이 많은 데다 때마침 그가 쓴 식재 관련 책 ≪자연정원을 위한 꿈의 식물≫이 국내에 번역되면서 관심이 더욱 높아졌죠. ‘더치 웨이브(Dutch Wave)’라고 불리는 초화 식재 기법을 유행시킨 조경가이기도 한데, 그의 식재 기법만 연구하는 모임이 따로 있을 정도로 팬덤이 커요. 현재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프로젝트도 그가 담당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한국에 좀 더 호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을 적극 어필했어요.(웃음) 다섯 계절을 관통하며 아우돌프의 주요 정원을 여행하는 영화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도 별도 조성된 상영관에서 단독 상영되고 있으니 관람객에게는 자연주의 정원을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정영선 선생님은 한국 조경가 1세대로,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이 워낙 많아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었죠. 직원들과 선생님 작업실에 찾아가서 이것저것 자료도 막 들춰보고 했더니 ‘니들 뭐 하노?’ 하시면서 결국 참여해주셨어요. 한국의 피트 아우돌프로 불리는 베케의 김봉찬 대표님도 직접 찾아뵙고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정원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가 저희 전시와 잘 맞아떨어져서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죠.

‘정원을 통해 헌신과 돌봄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확인’한다고 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소설 «오만과 편견»을 보면 남자 주인공인 다아시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던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정원을 보고 자신이 크게 오해했다는 점을 깨닫는 장면이 나와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가꿨다면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라고 말이죠. 정원에 관심을 갖고 깊게 공부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정원을 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식물을 대하는 자세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마음이 때로는 동물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고, 실제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향할 수도 있겠죠. 그런 선한 마음들이 당연히 각자의 작업물에도 드러나고요. 우리는 그렇게 선한 마음에 기댄 작업물을 보면 마음이 열리죠.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노동’이에요. 식물을 가꾸는 일은 헌신과 돌봄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내 몸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기획자가 숨겨놓은 의도가 관람객에게 잘 전달될 때는 참 뿌듯할 것 같아요.
이번 전시를 선보이고 가장 뿌듯했던 건 실제로 조경을 하시는 분들이 ‘고맙다’고 인사해주셨을 때예요. 우리는 근사한 예술품을 보듯 정원의 잘 정돈된 모습만 보지만 사실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거든요. 조경만 해도 건축을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데 거기에는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얽혀 있어요. 법적으로 정해진 조경의 위치나 규모에
맞춰야 하고, 그걸 어렵게 맞추더라도 건축주의 입맛에 따라 많이 휘둘리죠. 준공을 한두 달 남겨놓고 ‘조경해주세요’ ‘식물은 이런 걸로 해주세요’ 하고 일방적으로 의뢰하는 거예요. 조경가, 정원가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소모적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이런 분들이나 작은 꽃 가게를 운영하는 분, 화분 파는 분들이
‘좋은 전시 기획해줘서 고맙다’고 하실 때 크게 감동했어요.

‘모두가 자신만의 한 평 정원을 만드는 꿈을 꾸도록 독려하고 싶다’고 하셨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물리적인 공간이 있어야만 정원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선 정원을 많이 보러 다니는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좋은 정원을 많이 보고 눈썰미를 키우고 자신만의 정원 로망을 키우세요. 그게 시작인 것 같아요.

 

 

 

Editor 김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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