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옥을 고쳐서 살아요

‘집은 또 다른 나’라고 믿는 이들의 이유 있는 구옥살이.

지금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함정현, 김지혜

구옥의 ‘바이브’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중문에서부터 진하게 풍겨왔다. 방범을 위해 새로 설치한 현관문과 달리 나무와 유리블록으로 장식한 중문은 출처가 불분명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저 문을 본 순간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이에요.”함정현·김지혜 부부는 2년여 전 이 오래된 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정확한 집의 연식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30대인 부부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확실해 보였다. 누구보다 신축에 눈이 갈 신혼부부가 매물도, 인기도 적은 구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파트나 빌라는 붕어빵처럼 다 똑같아서 싫었고, 집이라는 느낌이 별로 안 들었어요. 옛 주택의 멋스러움을 간직한 구옥에 대한 로망이 있었죠. 빈티지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만족하면서 살 집이 필요했어요. 맞아요, 사실 아파트에 들어갈 돈도 없었어요.(웃음)”

빈티지 취향 덕분인지, 오래된 집에 사는 젊은 사람들의 집기는 원래 그곳에 있던 양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집 인테리어는 나무로 된 벽과 천장이 다 했다’고 할 정도로 양옥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과 질감은 집 안 곳곳의 가구에도 묻어났다. 같은 느낌의 가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겠다 싶었는데, 역시 모두 맞춤이란다. “처음엔 기성품을 사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맞춤 가구가 더 비싸니까요. 그런데 집이랑 딱히 어울리는 것도 없고, 마음에 드는 가구도 없어서 그냥 맞추기로 했죠.” 마침 목공 일을 하는 남편 친구가 있어 제작을 맡겼다. 식탁, 책꽂이, 거실장, 스툴, 침대 프레임까지 직접 치수를 재고 용도에 맞게 디자인도 했다. 정성껏 꾸민 집은 온라인에서도 호응을 얻어 뮤직비디오나 사진 촬영을 위한 공간으로 대여해주기도 한다.

오래된 집은 이웃 생활의 즐거움도 알게 했다. 바로 아래 2층에는 부모님 연배의 부부가 오래전부터 살고 있어, 오며 가며 생활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텃밭에서 함께 채소도 키우고, 전을 부쳐서 나눠 먹기도 한다. 작은 마당이 있는 아랫집은 볕 좋은 날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3층엔 신혼부부, 2층엔 중년 부부가 사는 집. 오래된 집은 이웃 생활의 즐거움도 알게 했다.

“아랫집 앞에 빨래를 널어두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빨래가 없어질 때도 있어요. 사모님이 밤이슬 맞는다고 걷어서 개어놓으시거든요. 꼭 우리 어릴 때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겨운 맛이 있어 좋아요.”
그렇다고 구옥에 낭만만 있을 순 없다. 집은 생활이고, 생활은 현실이다. 겨울엔 웃풍이 심하고, 신축과 달리 개별난방이 되지 않아 난방비가 한 달에 30만원씩 나올 때도 있다. 여름에는 (당연히) 덥고,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 옆으로 풀이 우겨져 벌레도 많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가 사는 신축 아파트를 가보고 깜짝 놀랐어요.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할 수 있더라고요.(웃음) 편의 시설도 잘돼 있고, 솔직히 그런 집에 다녀오면 심란하기도 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파트에 살긴 싫어요. 왜 그런진 모르지만, 이런 집이 좋은 걸 어떡해요.(웃음)”

누군가에게 집은 입지와 가격, 미래 가치가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 집은 ‘취향’ 그 자체다. 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어야 한다. 부부의 포커스는 자산 가치가 아닌 행복에 맞춰져 있다. “이 집은 우리 취향의 집약체예요. 다음 집이 어떤 집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집은 또 그때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을 거예요. 어쨌든 집은 살아야 하는 곳이니까, 가장 좋아하는 것들과 좋아하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유연함과 위트가 흐르는 집
박재완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산 기억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였다.
이후로는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형태의 집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20년 된 구옥 빌라를 만났다.
박재완은 국내 대기업에서 인테리어 내장재를 담당하는 서피스 디자이너(Surface Designer)로 20년간 일했다. 작년에 회사를 나온 이후 프리랜서와 패션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늘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 목말라 있었다던 그는 이사를 기회로(?) 자신의 스타일이 온전히 묻어나는 집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아파트의 판상형 구조에 오랜 시간 익숙해져 있던 터라, 인테리어 전문가인 그에게도 익숙지 않은 구조의 낡은 구옥 빌라는 불확실한 결과의 부담을 안고 있는 도전이었다.

“친구의 사탕발림에서 시작된 일이자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웃음) 사실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낯선 구조 때문에 선택을 망설였거든요. 그때 같이 집을 보러 온 친구가 ‘너무 뻔한 구조는 재미없지 않아? 잘 고치면 네 라이프스타일과도 딱일 것 같은데’라면서 도전 욕구를 자극했죠. 이 작업이 내 삶에 좋은 활력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나만의 집에서 새롭게 꾸릴 삶을 위한 나름의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숲세권의 정남향 집일 것, 층고가 높고 거실 공간이 넓을 것,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르지 않을 것, 가급적 친환경 자재로 스타일링 할 것’이 그가 설정한 기준이었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것과 친환경 자재를 쓰는 것은 전문가로서 현업에 있을 때 느낀 아쉬움을 만회하는 차원이었고, 숲세권과 넓은 거실 공간은 그야말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정확히 부합하는 집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파트에 오래 살았지만, 예전부터 좀 더 사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주거 공간을 꿈꿨어요.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이 아닌,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서울의 숲세권 동네를 네 군데 정도 꼽아 가장 적합한 집을 찾는 작업을 했죠. 저는 밖에 나다니는 성격이 아니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리고 집에서는 거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요. 그래서 ‘굉장히’ 넓은 거실을 원했어요.”
이 집의 거실은 그의 말대로 ‘굉장히’ 넓다. 미닫이문이 달려 있던 안방과 벽을 철거하고 테라스 영역까지 거실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안방에 있던 큰 창은 아랫부분 콘크리트를 철거하고 기둥은 라운딩 처리해 이 집만의 독특한 테이블 뷰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수면 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생활이 거실에서 이뤄지는 싱글 라이프이기에, 공간의 명확한 구분 없이 자유롭게 배치된 카페 같은 거실로 꾸미고 싶었다. 이 집의 다른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마스터룸과 게스트룸, 주방과 욕실 모두 자신의 생활 패턴과 취향에 따라 설계했다. 모던, 내추럴, 클래식과 같은 인테리어 스타일의 사조가 아닌, 본인의 취향이 어떤 뉘앙스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집만큼 사용자의 취향과 개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 있을까요? 이번 기회에 나를 닮은 집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내 라이프스타일이 온전히 담겨 있는 공간으로요. 집들이에 온 지인이 집에 대해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고, 곳곳에 위트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는 얘길 해준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보면 집이라는 건, 나와 함께 성장하는 대상이 아닐까 싶어요.”

 

 

Editor 김병주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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