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자유로운 감성을 도시에 재현한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도심이지만 마치 교외로 나온 듯 신선한 해방감을 기억할 것이다.
그 바탕에는 삼림지대와 대초원의 식물을 조화시켜 야생의 분위기를 자아낸, 철저히 계획된 정원이 있다. 바로 세계 정원 디자인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피트 아우돌프의 작품이다.


지금 세계 정원 디자인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 그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게 한 건 네덜란드에 자리한 자신의 집 아우돌프 후멜로 가든이다. 이후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와 배터리 파크,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루리 가든 그리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11의 안뜰, 갤러리 하우저앤워스의 서머싯 아트센터의 조경과 정원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독일 바일 암 라인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의 정원에 이르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피트 아우돌프의 독특한 철학은 세계 곳곳으로 스며들며 정원 디자인의 트렌드를 바꿔놓았다. 피트 아우돌프는 자연 본연의 무한하고 풍부한 감성을 포용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만든 정원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꽃만이 아니라 식물의 자연스러운 형태와 구조, 텍스처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그의 정원에는 편견이 없다. 풍성한 갈색 풀과 은은한 작은 꽃도 저마다 독특한 영감을 표현하는 주인공이 된다. 꽃이 만개하고 서서히 쇠하다 마침내 사라지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사계절 내내 다이내믹하게 변화하는 다년생식물은 그에 의해 재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뉴 퍼레니얼 무브먼트(New Perennial Movement)’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다. 그의 정원은 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전하는 화가 모네의 말년 작품들, 또는 한 음 한 음 놓칠 수 없게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연상시킨다. 그리너리 라이프의 표상이 된 피트 아우돌프와 줌 인터뷰로 만났다.

전원 풍경에 동화되어 계절별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 내 아우돌프 필드(Oudolf Field).

정원 디자이너의 아침은 어떤 모습인가요?
날씨가 정말 좋다면 정원으로 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로 오피스로 향합니다. 프로젝트 작업이 즐겁기 때문이죠. 또 오피스가 정원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실내에 있어도 정원에 있는 셈이에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궁금해요.
영국 위즐리에 있는 왕립원예협회의 정원 중 한 곳을 작업 중이에요. 새로운 플랜팅을 계획하느라 한창 바쁘답니다. 바쁘게 일하다가 잠시 쉬고 또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게 일상이지요.(웃음) 현재 프로젝트 열 개 정도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진행 상황은 제각각이에요. 초기 단계이거나 보류 중인 것도 있고요. 이달 말에는 곧 공식 오픈할 계획인 비트라 캠퍼스의 정원 일로 스위스 출장을 갑니다. 한국의 울산에서도 정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요.

최근 당신과 관련한 기사, 전시, 다큐멘터리 영화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Five Seasons: The Gardens of Piet Oudolf)>(2017)가 전해지면서 한국에서도 정원과 당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네, 한국인들의 정원에 대한 관심이 굉장하고, 제 스타일을 좋아하는 젊은 팬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웃음) 사실 50여 년간 정원 분야의 관계자들과만 일해온 저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그리 민감하지 못해요. 그러나 최근 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도시에서 자연 공간을 더 강조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면서 더 많은 젊은이가 정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반가운 일이지요.

다큐멘터리 영화 속의 당신에게서는 시인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만나보니 건축가의 느낌이 더 강하네요.
정원 디자이너는 다채로운 디자인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지요. 식물뿐 아니라 토양, 관개 그리고 정원이 자리한 곳의 기반시설에 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 전문 분야는 플랜팅(Planting)이지요.

커리어 초기부터 플랜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네덜란드에서 흔치 않은 희귀종들을 정원에 끌어들임으로써 독특한 영감을 창조했지요. 하지만 정원 디자이너가 천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방황의 시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죠. 한동안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는 저를 아내가 많이 지지해주었어요. 어느 날 가든 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본래 계약한 기간보다 더 머물러 달라고 하더군요. 원래 겨울철 한 달간 일하기로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조경을 공부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고, 정원 컨설팅과 조경, 정원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75년이었어요. 처음에는 정원 디자인으로 시작했는데,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을 잘 알기 위해 하나둘 구입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활동 영역이 점점 더 넓어졌습니다. 처음 정원을 만들 때부터 저는 정원에 심을 식물을 직접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네덜란드 전원 지역에 있는 지금의 후멜로(Hummelo)로 오게 된 겁니다. 1982년 즈음 농가가 딸린 땅을 사고 정원을 디자인하는 동시에 아내와 원예상을 시작했죠.

정원 디자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클라이언트를 만나 의견이나 계획을 들어본 뒤 정원을 만들 곳의 환경을 둘러보면서 실현 가능한지 파악합니다. 예산과 법적 규제 등도 점검하지요. 거기까지가 디자인의 출발점입니다. 그런 다음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여러 생각을 정리합니다. 정원을 디자인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인력 관리 등의 작업 계획을 비롯해 사람들을 어떻게 정원으로 접근하게 할지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요. 그다음에 플랜팅을 계획합니다. 드로잉과 식물 리스트를 만드는데, 이 단계가 굉장히 복잡해요. 왜냐하면 정원에 들일 모든 식물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각각의 식물이 계절 또는 해를 거듭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식물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정원 디자인의 핵심이에요.

플랜팅은 마치 수학 같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 또한 하나의 플랜팅 요소예요.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정원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 다르고 해를 거듭하면서 정원의 모습이 변해가기 때문에 완성된 정원의 미래까지 예상해야 해요. 첫해에 정원이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디테일한 요소들, 예를 들어 지금 심어놓은 식물이 떠나면 어떤 식물이 이어받을지, 또 그다음 식물의 짧은 주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같은 문제들을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처럼 정원의 구성 요소는 입체적이며, 시간은 그것을 촉발하는 역할을 담당해요.

당신은 식물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미지뿐 아니라 싹이 트고 시들 때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에 그린다죠? 뉴욕 하이라인 프로젝트의 리드 디자이너였던 제임스 코너는 당신을 ‘재료 각각의 특징을 잘 파악해 정확히 원하는 맛을 내는 마스터 셰프’라고 표현했어요. 그 밖에도 화가, 작곡가, 지휘자 등의 수식어가 붙는데, 그중 가장 선호하는 표현은 무엇인가요?
작곡가라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제 일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주어진 공간 안에 그 아름다움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고고하고 장식적인 정원만이 좋은 정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고 노력해왔어요. 저 역시 전통 영국식 정원을 좋아하지만, 그건 많은 면에서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저는 지난 30년간 정원이 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즉흥적 영감을 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콘셉트를 발전시키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죠. 그런 면에서 저는 몽상가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이제껏 해온 프로젝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무엇인가요?
하우저 앤 워스의 서머싯 프로젝트요. 비트라의 정원도 마음에 들지만 그건 이제 막 완성되었으니까요.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정원이 전원적이면서도 매우 예술적인 환경 속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 작품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정원을 보게 되고, 정원을 보러 온 방문객들이 예술을 접하지요. 예술과 정원이 만나는 그런 하이브리드적인 성격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매번 새로운 조합과 테크닉, 플랜팅 방식 등을 시도하며 정원 디자인을 진화시켜왔습니다. 최근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킨 것은 무엇인가요?
일 자체가 언제나 흥미로움의 연속이에요. 맡겨진 모든 프로젝트가 새로우니까요. 매번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잡지의 좋은 점은, 내가 영감받은 것들을 소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 나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한편 그걸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지요. 공공 정원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뉴욕 하이라인의 경우 매년 800만 명이 방문한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는 면에서 잡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작업 방식 역시 어떤 면에서는 글을 편집하는 것과 비슷해요. 쓴 글을 읽어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빼고 새로운 단어를 넣는 것과 마찬가지죠. 작업한 정원을 2년 뒤에 다시 찾아 살펴보면서 ‘아, 더 잘할 수도 있겠다’ 또는 ‘오, 그게 맞았구나’ 하면서 평가합니다. 언제나 재편집이 필요해요. 늘 세심하게 손을 봐야 합니다.

주어진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당신에게 영감을 얻어 작게나마 정원을 꾸미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팁을 준다면요?
식물을 사고 가꾸며 바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떠한 정원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그 작은 일부를 당신의 공간으로 옮겨오라고 권하고 싶어요. 단순한 식물의 조합이나 종류 같은 것들이요. 과한 욕심을 내지 말고 자신의 정원 규모에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연 속에 모든 답이 있다고 하지요. 자연에서 배운 지혜가 있다면요. 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꽃이 만개하는 여름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겠죠. 식물은 쇠하기 마련이며, 꽃이 없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또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자연은 늘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삶의 순환이지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원 디자이너로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인가요?
9월과 10월을 가장 좋아해요.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여름이 지나고 식물이 서서히 쇠할 때,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Writer 한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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