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이 말하는 삶의 진리

문숙이 말하는 삶의 진리는 명료하다. 비우고, 선택하고, 자신을 너그러이 바라보는 것.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아침에는 한껏 늑장 부리는 것을 즐기며 걷기를 좋아하는 문숙은 촬영장에서만큼은 영락없는 배우였다. 어떤 헤어 제품도 사용하지 않지만 결이 단정한 머리카락, 궁리하지 않아도 나오는 유려한 몸의 선, 카메라 앵글을 뚫고 나오는 오묘한 분위기까지. 사실 그보다 더 눈길이 가는 건 부드러운 힘이 느껴지는 그의 시선이다. 낯선 옷을 입은 거울 속 자기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불편한지 아닌지 계속 말 걸어주면서 보는 거예요. 몸이 편안해야 진짜 내 안의 아름다움이 나오거든.” 특별한 장치 없이도 여전히 놀라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와 마주 앉았다.

촬영장이란 곳이 늘 오늘처럼 순식간에 고요해지곤 하죠. 작품을 끝낸 배우들의 공허함도 비슷할 것 같아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가까이 작품을 찍다 보니 끝나고 나서도 그 감정이 쉽게 안 내려와요.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굉장히 깊게 몰입하기 때문에 거기서 빠져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죠. 나도 마찬가지고요. 촬영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일상의 나로 바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면 삶이 굉장히 힘들어요. 저는 중간에 40년 가까이 일을 쉬었기 때문에 배우나 연예인보다는 평범한 문숙이 훨씬 익숙하고 편해서 그나마 덜 힘든 것 같아요. 배우로 복귀한 지 이제 7년이 다 됐지만 아직 연예인이라는 호칭이 조금 어색하고 낯설 때가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주춤하는 것 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은 천생 배우구나 싶은데도 말이죠.
잘해야 빨리 끝나니까.(웃음) 어렵고 민망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하는 거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준비했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거잖아요. 부담감이 왜 없겠어요. 원래의 나와 주어진 상황 속 내 역할 사이에서 최대한 조율하면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웃음)

그레이 셔츠, 다크그레이 스트라이프 패턴 베스트와 팬츠는 모두 JAYBACK COUTURE, 진주 이어커프는 VINTAGE HOLLYWOOD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각종 루틴이 유행하기도 했죠. ‘문숙다움’을 잃지 않기 위한 생활 습관이 있나요?
저는 뭔가를 해서 안정을 찾지 않아요. 대신 뭘 하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하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뭔지 생각하고 그 일들을 가능한 한 내려놓는 거예요. 저는 운전을 안 하고 몸을 조이는 옷도 웬만해서는 입지 않아요. 몸에 뭘 바르는 것도 가급적 피하죠. 그런 것들을 안 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잖아요. 아침에도 일찍 안 일어나요. 최대한 느긋하게 일어나서 내 뇌와 몸을 서서히 깨워요. 휴대폰은 꺼두고 내 발이 바닥을 딛고 걷는 데 집중하죠. 이 자체가 저한테는 명상이고, 나와 만나는 시간이에요. 나한테 불편하고 내 몸에 안 맞는 걸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찾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욕망에 끌려다니게 되거든요.

많은 사람은 몸의 변화, 특히 숨길 수 없는 노화의 흔적을 발견하면 감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특히나 여배우들은 더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화면을 통해 내 늙음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는 건 누구라도 쉽지 않을 거예요. 저도 계속 배우를 했다면 그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 같아요. 외모가 됐든 연기가 됐든 매 순간 평가를 받는 것에서 오는 압박이 상당해요. 그런데 저는 그걸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했어요. 거창하게 운명이다, 모든 시선과 어려움을 극복하겠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받아들이기로 선택을 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다른 선택을 하면 돼요. 그건 잘못된 게 아니니까요.

‘어떤 선택’을 한 내가 있을 뿐이라는 거군요. 그럼요.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나요?
다들 부족하고 서투른 면들이 있죠. 나에게는 여러 면이 있어요. 타인이 바라보는 제각각 다른 내 모습, 그게 다 저예요. 반대로 누가 날 보고 이러쿵저러쿵한다고 해서 그게 내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난 이렇게도 했다가 저렇게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거예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요. 내 복귀 작품을 보면 진짜 웃겨요. 어쩜 그렇게 연기를 못하지?(웃음) 그런데 못하는 게 당연해요. 시스템도 다 바뀌고, 40년 동안 연기를 안 했는데 잘하는 게 이상한 거 아녜요? 그냥 난 어제의 나만큼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제 왜 그랬지? 내일은 어떻게 해야겠다’ 이러면서 힘주고 살 것 없이 지금 내 기분이나 상태, 몸의 얘기에 집중해야 하는 거예요.

고민과 불안을 덜어내는 건 마음의 문제 아닌가요? 왜 몸에 집중해야 할까요?
머리로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백 개를 아는 게 오히려 방해가 돼요. ‘이게 맞는데 왜 저렇게 하지?’ ‘저렇게 해야 하는데 왜 몸이 반응을 안 하지?’.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마음이 자꾸 뭘 시키면 힘들잖아요. 자전거 타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돼요. 페달 밟는 요령만 생기면 바퀴를 어떻게 구르고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겠다 생각지 않아도 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몸이 먼저 반응해서 고민과 불안을 잠재우는 거죠. 실수하고 뭔가 당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아 실수했구나’ ‘아 상황이 이렇게 됐구나’ 하면서 감정을 가라 앉히는 거예요. 몸이 알아서.

몸이 알아서 페달을 잘 밟게 해야 한다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멈추는 게 중요해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삶이 고통스러워져요. ‘옳고 그른 것에서 벗어나면 수행의 70%가 완성된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에게 모두 ‘습’이라는 게 있는데, 어떤 건 DNA로 내 몸에 박힌 것도 있어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의 습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거죠. 그걸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저 그걸 알아보고 흘려 보내는 거예요. 날씨를 예로 들면, ‘해가 떠서 좋다’ ‘비가 와서 싫다’가 아니라 ‘해가 떴구나, 비가 오는 구나, 그럼 비 좀 맞아야지 뭐’ 하는 거죠. 마음이 요동칠 때 몸이 먼저 알아보고 ‘아 그렇구나’ 하는 상태가 되면 몸이 알아서 페달을 밟는 거예요.

‘하루하루 문숙’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꾸준히 발간하는 책도 그렇고요. 사람들에게 꾸준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대, 30대 때는 저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매일 머리 아프게 고민했거든요. 마음의 평온을 찾은 건 마흔이 넘어서였어요. 지금 내가 아는 것들을 그때 나한테 누가 가르쳐줬으면 그 시절을 덜 힘들게 보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결국 젊은 문숙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한 셈에요.

얼마 전 <나혼자 산다>에서 전현무씨가 해독 수프로 문숙 레서피를 따라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어요. 건강한 요리 레시피 영상도 꽤 많이 회자되고요.
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통음식(whole food)을 즐겨 먹어요. 레서피도 굉장히 투박하고 단순하죠. 가공하고 조리하는 것도 안 좋아하니까요. “데치세요” “꺼내세요” “짜면 물 좀 더 넣으세요” 하는 게 다예요. 비법은 고사하고 실수도 자주 해요. 뭐 어떤가요. 저는 모자라는 재미에 살아요. 인간적이잖아요.(웃음)

우리는 각자 스스로에게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가 좀 뻔뻔해요. 부족한 나도 그냥 재미있고 좋아요.(웃음) 멋져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도 ‘힘준 거 다 보여, 애쓰네, 귀엽다’ 이러고 말아요. 다들 그런 마음 조금씩은 품고 살아도 괜찮잖아요.

난 이렇게도 했다가 저렇게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해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요.
제가 좀 뻔뻔해요. 부족한 나도 그냥 재미있고 좋아요. 다들 그런 마음 조금씩은 품고 살아도 괜찮잖아요.

 

 

Editor Kim EunHyang
Photographer KIM Oi 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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