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을 통해 완성된 미니멀리스트 양순아의 주방

없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큰 삶.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슬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양순아의 주방은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어떤 식재료를 어떻게 보관하고 마지막까지 잘 먹을지가 중요하다. 화려하지 않은 요리 위주로 구성한 식단은 제철 음식을 남김없이 활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
식재료를 상온에 두어도 무리가 없는 봄, 가을, 겨울에는 냉장고 대신 거실 한쪽의 서랍장이나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몇 해 전 비움의 미학을 지향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었다. 당시 유튜브를 통해 ‘미니멀리스트양’이라는 닉네임으로 4인 가족을 책임지는 주부의 미니멀 라이프를 꼼꼼하게 기록해나간 양순아(@minimalist_yang). 그는 여전히 삶의 규모에 맞게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동시에 에코 라이프와 슬로 라이프로 확장시킨 라이프스타일을 유연하게 따르며 살림 공간을 꾸려나가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시작은 옷장이었어요.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옷장을 열 때마다 옷이 가득 차 있는데도 정작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옷장을 통째로 정리해야 하지 않냐고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어요. 그날로 마음을 먹고 옷장을 비운 뒤 자주 입고 좋아하는 옷만 걸어놨더니 한결 홀가분해지더라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입는 옷과 입지 않는 옷이 섞여 있으면 심리적으로 전부 입지 않는 옷으로 여겨진다고 해요. 자꾸만 열어보고 싶은 정돈된 옷장을 보며 다른 공간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됐어요.

주방에서는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하셨나요?
주방은 물건이 늘어나기 쉬운 공간이더라고요. 오랫동안 보관만 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과 모양만 다른 가위, 집게나 비슷한 용량의 냄비처럼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부터 정리했어요. 조리 도구로 대체할 수 있는 가전제품도 처분했고요. 저희 주방에는 전기밥솥이 없어요. 아침에 지은 밥을 넣어둔 채 저녁까지 보온 기능을 켜두면 밥맛이 떨어질뿐더러 온종일 전력을 낭비하는 게 마음에 걸렸죠. 내솥 역시 손상되기 쉬운 코팅 소재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무쇠솥으로 바꿨어요.

주방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이전에는 남들이 갖고 있는 물건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가전제품이든 그릇이든 필요하지 않아도 유행이다 싶으면 사곤 했죠. 불필요한 걸 덜어내다 보니 생활 자체가 간소해지고, 특히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관리해야 할 물건이 그만큼 줄었으니까요. 필요한 조리 도구의 개수를 정해놓고 그 이상 늘리지 않는 대신 가지고 있는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식이에요. 동시에 식단의 미니멀리즘과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방법까지도 고민하게 되고요.

생활이 간소해진 동시에 번거로운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분리배출은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습득해나가야 하죠. 법이 계속 바뀌기도 하고요. 또 번거로운 건 가전제품을 줄이다 보니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음식물 처리기 대신 실내 퇴비함을 두었는데, 과일과 채소의 껍질이나 냄새가 덜한 음식물을 잘게 썰어 넣어두어요. 그외의 것들은 마당에 있는 퇴비함에 모아두고요. 번거롭다면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그래도 아날로그적 삶이 제게는 맞는 것 같아요.

불필요하기는 해도 위시 리스트에서 쉽게 지워버릴 수 없었던 주방 가전제품이 있다면요?
발뮤다의 토스터기요. 디자인도 예쁠 뿐더러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평을 보곤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한 가지 생긴 습관은 물건을 사기 전에 어디에 두면 좋을지를 미리 생각해보는 거예요. 마땅히 둘 데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포기가 쉬워져요.

주방 도구는 주로 어떤 기준으로 구매를 결정하나요?
오래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실용적인지를 고려해요. 디자인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금방 질리거나 사용이 불편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다 관리하기가 쉬운지도 함께요.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코팅 팬 대신 반영구적인 스테인리스 팬을 사용하면 환경에도 이롭고 경제적이기까지 하죠.

미니멀 라이프의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이지 절대적인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에요. 어느 순간 짐이 조금 늘 수도 있다는 유연한 태도, 즉 나에게 맞는 방식이 중요하죠. 4인 가족, 6인 가족, 대가족도 얼마든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할 수 있어요. 6인 가족의 밥그릇이 여섯 개라고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듯이요.

 

“주방은 많은 것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에요.
차가운 것과 따듯한 것들, 사계절 음식이 오가고, 온 가족이 모이니까요. 주방은 집의 중심이나 다름없어요.”

현관으로 들어서자 만나는 1층은 주방과 거실이 연결돼 있는 구조로 가족들과 마주 보며 생활할 수 있는 중심 공간이다.
거실을 확장한 곳에는 다이닝 테이블을 두어 식사 시간 외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테이블 아래에는 서랍 두 개를 달아 수납력을 높였다.

 

내 삶의 규모에 맞춰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불필요한 걸 뺄 뿐이지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방 생활에선 요리도 큰 비중을 차지하죠. 요즘은 시중에서 정말 다양한 소스류를 만나볼 수 있어요. 사실 소스는 생각보다 활용할 일이 적어 냉장고에 오랜 시간 방치되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화려하지 않은 요리예요. 가족 모두 한식을 좋아해서 식단 자체를 제철 음식 위주로 간소하게 짜요. 그러다 보니 구입한 식자재를 잘 보관하는 방법과 마지막까지 알차게 먹는 방법까지 생각이 이어지더라고요. 저희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제철 음식을 활용하면 가능해요. 한여름에는 상온에서 금방 시들지만 봄·가을·겨울에는 상온에 보관해도 되는 식자재가 생각보다 많아요. 냉장고에 넣으면 오히려 안 좋은 식자재도 있죠. 그런 것들을 잘 보이는 곳에 두면 그곳이 하나의 음식 창고나 마찬가지예요.

미니멀 라이프에서 에코 라이프와 슬로 라이프까지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무척 자연스러웠을 것 같네요.
평소에 가장 많이 버리는 쓰레기가 비닐이나 플라스틱이에요. 집이 단정해지는 건 좋지만 어쨌든 밖에 내다버리는 게 조금씩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쓰레기를 덜 만들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예전에는 비닐 장갑이나 지퍼백 같은 제품을 생각 없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일절 구입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대체하나요?
자연에서 분해되는 식품용 고무장갑을 사용하거나, 맨손으로 설거지나 요리를 해요. 지퍼백은 정말 따로 살 필요가 없죠. 마트에서 파는 냉동식품 등을 포장해놓은 비닐 팩을 깨끗이 씻어서 재활용해요. 정말 튼튼하고 밀폐력도 뛰어나거든요. 재활용은 몰라서 못 하는 것뿐 한번 알게 되면 방법이 보여요.

공간을 구성할 때 특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을까요?
주방과 거실이 이어져 있고, 한편에는 큰 다이닝 테이블이 놓여 있는 구조가 독특해요. 가족들과 마주 보며 생활할 수 있는 대면형 공간이자 넉넉한 수납공간, 효율적인 동선을 갖춘 주방을 원했어요. 주방과 거실이 연결된 구조로 거실과 마주할 수 있도록 대면형 아일랜드 식탁을 두었고, 다이닝 테이블이 놓인 공간을 거실의 확장 개념이라고 생각해 가족 공간처럼 꾸몄죠.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요리도 곧잘 하고 자주 식사 준비를 도와요. 식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취미를 즐기기도 하고요.

주방이라는 공간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주방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만나고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이에요. 많은 것들과 소통하는 곳이기도 하죠. 차가운 것과 따듯한 것들, 사계절 음식이 오가고, 가족들이 전부 모이니까요. 집안일을 제외한 업무도 대부분 이곳에서 하죠. 집에서만큼은 주방은 특별하게 마련된 공간이라기보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중심이나 다름없어요. 제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많이 반영돼 있기도 하고요.

 

 

Editor 손지수
Photographer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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