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추억이 쌓이는 빌라플럼의 집과 산책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는 사람의 집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두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플럼’ 손현경 씨의 집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주방은 그녀가 하루 중 가장 오래, 자주 머무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가족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쌓아간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병상의 아내를 위해 생일 선물로 로크브륀 카프 마르탱 해안가에 작은 별장을 지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지중해 연안의 이 작은 통나무집에 머물렀다. 압도적인 결과물들로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견고하게 쌓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진심으로 마음을 기댄 건 불과 4평 남짓한 통나무집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물음을 던진다. 이 얘기에 작가 손현경 또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에게 안식을 주는 공간, 내가 진짜 원하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 고민 끝에 당도한 곳이 바로 혜화동의 ‘빌라 플럼’이다. «집과 산책»의 저자 손현경은 ‘플럼(@whale_plum)’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솜씨 좋은 글과 사진을 통해 자신의 집과 일상, 삶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해 온 인플루언서다. 주변의 것들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걷는 ‘산책’은 집과 동네를 경계 없이 누리는 그녀의 삶의 방식을 절묘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다. 아파트와 혜화동 연립주택, 다시 아파트로 거처를 끊임없이 옮겼지만 현경 씨 가족에게 집은 항상 기억을 대물림하고 순간순간의 추억이 쌓이는 곳이다.

손현경 씨 가족은 커다란 식탁을 가운데 두고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음식을 차리고 나누어 먹는 건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는 일이고 현경 씨네 가족에게 주방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공간이다.

아파트의 편리함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혜화동 연립주택에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던 이유가 뭔가요?
표면적 이유는 둘째 아이 초등학교 배정 문제였어요. 대학로 근처 초등학교로 배정되면서 ‘때는 이때다!’ 싶었죠. 전에 살고 있는 집에서도 충분히 통학이 가능했는데, 오래전부터 ‘혜화동’은 제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네였어요. 모세혈관같이 복잡하게 얽힌 골목에서 우연히 나지막한 이층 연립주택 단지를 보게 됐어요. 원래 낡은 벽돌 건물을 좋아했던 터라 홀린 듯이 들어갔던 게 인연이 되었죠. 마치 유물처럼 지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집 주변에서는 새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어요.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래도 될까?’ ‘후회하지 않을까?’ 숱한 고민 끝에 이사를 결심했어요. 마음을 끄는 소리에 결국 이끌려가게 된 거죠. 그 집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 줄 알았는데 남편 직장 문제로 지금은 다시 아파트로 이사 와서 많이 아쉬워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만의 집’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부모님이 농장을 하셨는데 그 부지가 꽤 컸어요. 농장 안에 탁 트인 마당과 자그마한 다락방이 딸린 단독주택이 있었고요. 돌이켜보면 그 집을 제가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집은 실제보다 미화되는 경향이 있잖아요.(웃음)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부터 삐그덕거리는 계단까지 다 생생하게 기억나고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유년 시절 이후에 줄곧 살던 아파트 생활도 나름 행복했지만, 주택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참 좋더라고요. ‘증권사, 광고 회사, 영어 학원 등 여러 직장을 거쳐 지금은 15년째 집으로 출근하며 살림을 돌보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했어요.

집으로 출근하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삼시 세끼 식사를 차리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등 흔히 ‘살림’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일들을 정신없이 해치우죠. 저에게 집은 직장 같은 곳이라 오히려 외출하지 않는 날 더 바빠요.(웃음)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주방이에요. 그중 상당 시간은 요리를 하고요. 많게는 하루 세 번 상을 차려야 하니까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제가 청소만큼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고요. 하하. 직장 생활도 비슷하잖아요. 비일상적이고 특별한 이벤트는 아주 가끔이고, 그 외에는 대부분 작지만 반복적인 작업의 연속이죠. 우리 삶은 사실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공간을 구성할 때도 역시나 가장 오래 머무르는 주방에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아요.
집은 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기준은 ‘가족’이었어요. 식구들이 공유하는 공간, 쓰임이 많은 공간인 주방과 욕실에 가장 신경을 썼고요. 연립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현저히 좁아서 공사할 때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혜화동 집의 경우 주방과 거실이 오픈형으로 연결돼 있어서 하나의 공간처럼 연출하되, 주방 안 작업 동선은 편리하게 구성하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동시에 제가 원하는 느낌의 주방도 연출하고 싶었죠. 반복되는 집안일을 할 때도 최대한 즐거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요. 눈이 닿는 곳에 좋아하는 소품과 식물, 모빌을 두는 식이에요. 시선이 닿는 곳곳에 아름다운 물건들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시간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익숙한 공간에서 매일 산책하는 듯한 설렘을 느끼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제자리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깨끗이 청소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물건들을 곳곳에 두어 ‘진짜 나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모두의 추억이 공존하는 주방은 두고두고 가족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아파트에 비해 비정형적이고 좁은 연립주택 인테리어를 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나요?
용도가 딱 정해져 있는 작은 개별 가구들은 작은 집에서 쓸모가 없더라고요. 식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절실했죠. 붙어 있는 거실에는 TV를 없애고 벽에 책장을 짜 넣었어요. 테이블보다 살짝 높은 가벽을 세워 조리 공간과 다이닝 공간을 분리한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어지러운 주방 집기를 가리는 데 유용했죠. 욕실 입구 바깥에 작은 세면대를 설치했는데 욕실이 한 개 뿐인 작은 집에는 강추해요.

나만의 주방에서만 볼 수 있는 살림 팁이 있다면요?
‘지저분한 곳은 가리자!’가 제 신조예요. 이를테면 정수기 측면에 메모장이 붙어 있을 때가 많은데 그것조차 눈에 거슬리면 마음에 드는 키친 클로스를 슬쩍 덮어주는 식이죠. 자주 사용하는 그릇을 매번 꺼내기가 번거로워서 상부장 아래에 선반을 달아 편의성을 높였고요. 찬장 손잡이가 튀어나오는 게 싫어서 아예 구멍을 뚫거나, 반찬 물이 드는 것이 싫어서 싱크대 상판을 내구성 좋은 스테인리스로 마무리 한 것도 마음에 들어요. 주방 창에 모빌과 식물, 꽃을 놓아두면 잠깐 설거지하는 동안에도 기분이 좋아지고요.

가족에게 주방 또는 다이닝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집을 깨끗이 정리한 뒤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들이에요. 아이들이 있을 때는 같이 노래를 듣거나 재미있는 영상을 보기도 하고요. 남편이랑 차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해요. 대부분은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지만 일상성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루가 쌓여서 추억이 되고, 결국 삶이 되니까요. 잘 산다는 건 평범한 하루하루를 잘 보낸다는 의미이고, 그 안에는 ‘잘 먹는 것’도 포함하겠죠. 그래서 더더욱 주방이 소중하고요. 어릴 때 엄마가 해주는 오이지나 가지무침이 참 싫었는데,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에요. 이 음식들을 먹으면서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부단히 밥상을 차려주었구나, 생각해요. 음식을 차리고 나누어 먹는 건 단순히 그때그때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으로 시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고, 일상적인 주방은 그래서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집은 너무 익숙해서 조금은 지루하고 따분한 공간이 될 수 있죠. 집에서도 매일 산책하는 기분이라는 현경 씨만의 노하우가 더 궁금해집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정리와 청소예요.(웃음) 저한테 최고의 인테리어는 럭셔리한 가구와 비싼 가전제품의 깔맞춤이 아니라 소중하고 꼭 필요한 물건들로 채운 잘 정돈된 공간이거든요.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면 제대로 집을 음미할 수 없어요.

Editor 김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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