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6년차 가족의 자급자족 라이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 제주로 내려왔다. 새로운 곳에서 그들의 장점인 창의성과 끈기를 무기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고 싶었다. 오늘도 감귤 농사를 짓고 공간 세팅을 하며 스냅사진 작가로도 활동하는 배광원, 백송이 부부는 아들 건우와 함께 밀도 있는 행복을 음미 중이다.

제주에 내려온 이유가 궁금해요.
백송이(이하 백) 저는 결혼 전부터 의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고, 남편은 CF 모델과 배우 일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6년 전 우리가 일에 많이 지쳐 있을 때 제주에 사는 남편의 지인이 내려와서 새로운 일을 해보라고 권했죠.
배광원(이하 배) 여행으로만 와본 제주에서 과연 우리 식구가 둥지를 틀고 잘 살 수 있을지 알아봐야 했어요. 일단 저 혼자 카메라와 간단한 짐만 챙겨서 내려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용기 있는 선택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니면서 생활하며 일하고 가족이 살 동네와 집도 알아보았습니다. 혼자 1년 정도 생활하다 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 1월 3일에 아내와 아이도 입도했어요. 벌써 세 식구가 제주로 옮겨온 지 5년 차가 되었네요.

살고 있는 동네와 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여행 왔을 땐 몰랐는데 생활하며 제주를 둘러보니 동서남북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지금 살고 있는 해안동은 사진작가 일을 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죠. 해안동은 시내와 가깝지만 제주의 느낌도 많이 나고 조금만 올라가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네예요.

해안동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아이의 초등학교 때문이었어요. 잔디가 깔린 아담한 운동장에서 한라산과 바다가 보여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단독주택과 타운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아직 집안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공동주택을 선택했어요. 심지어 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공간이 침실이에요. 좋은 매트리스, 침구로 잠을 푹 자고 에너지를 얻는 편입니다.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귤밭 안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남편이 가족사진을 많이 찍는데 아이들에게 제주에서의 강렬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작년 귤밭 한편에 ‘트리하우스’를 만들었어요. 남편이 외국 서적을 보고 직접 만들었는데, 대학교 때 연극 무대를 만든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며 뿌듯해하더라고요. 언젠가 우리 집도 직접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주에 와서 직업이 바뀌었네요.
원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어요. 카메라 하나 들고 제주에 내려와 스냅사진 작가(@page1_jeju)가 되었죠. 제주로 여행 온 가족, 프러포즈하는 연인, 아기 등을 촬영하고 있는데 찍히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 모두가 설레는 일이에요. 제주다운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중에 고맙게도 지인분께서 타지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돌창고를 빌려주셨어요. 제주가 폐쇄적이라는 편견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죠. 돌창고에서 파티, 촬영 등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귤 농사도 짓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농사짓는 외삼촌이 멋있어 보여서 농부가 되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감귤 농사를 지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제주에서 만난 청년 농부를 롤모델 삼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배웠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공부하는 중입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새로운 농기계를 장만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농사도 장비발이 중요하거든요. 하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일했고, 출산 후 한 달 만에 회사로 복귀했어요. 이런 무게와 책임감을 모두 내려놓고자 제주로 왔는데, 결국 또 사업을 하고 있네요. 사진 찍는 남편을 도와 촬영 공간 세팅과 돌상 세팅을 시작했어요. 제주 하면 해녀가 떠오르는 만큼 아기에게 해녀복을 입혀 기념 촬영을 했는데, 남편이 운영하는 페이지원(@page1_jeju)의 시그너처 샷이 되었어요. 또 피크닉 렌털 숍 오뽐므제주(@o.pomme_jeju)도 운영하고 있어요. 여행객들이 저처럼 제주에 와서 노을지는 바다를 보고 숲을 거닐며 여유를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 파라솔과 체어, 테이블을 비롯해 휴대용 스피커, 드리퍼 세트까지 포함한 피크닉 세트를 구성했습니다. 남편이 수확한 귤을 함께 관리하고 판매도 하고 있고요.

제주에서의 일상은 어떤가요.
저는 제주살이 6년 차, 아내와 아이는 5년 차예요. 그간 벌인 일들이 쌓이고 쌓여 요즘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외국에 나가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이 제주로 여행을 오고 있어요. 우리 부부는 주로 관광객들이 찾는 일을 하기 때문에 더 바빠졌죠. 촬영과 보정, 귤밭 일을 돌아가면서 하느라 잠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아이 학교 보내고 매장에 출근했다가 스케줄을 쪼개서 친구들과 커피 한잔하고,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집으로 다시 출근을 합니다. 귤밭 관리와 판매도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틈틈이 저녁 먹고 노을 즐기러 바다로 산책을 갑니다. 때론 밤바다에서 끼니를 때우며 수영을 하거나 보말, 조개 등을 잡기도 하고요. 봄·여름·가을에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대신 겨울에 몰아서 푹 쉬어요

제주로 오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서울에 살 때는 밤낮은 물론 주말도 없이 일했어요. 지금도 바쁘게 일하지만 틈틈이 쉬멍놀멍이 가능해졌어요. 제주의 자연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서울에 살 때는 항상 엄마와 집안일 봐주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제주로 오고 나서는 힘든 일도 기쁜 일도 세 식구가 함께 해요. 그래서 처음 이주하고는 신혼이 된 기분이었어요. 결혼 10년 차지만 요리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레시피를 찾아봐야 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자꾸 땅에 모종을 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상추, 고추, 바질, 루콜라 등 이것저것 조금씩 심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해요.

삶의 터전으로서의 제주는 어떤가요?
쇼핑할 데가 정말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물욕이 줄었지만 소품을 사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눈으로 직접 보고 사야 하는 성격인 데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실패할 때가 많죠. 다행히 비행기표가 쌀 때 당일치기로 육지에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직접 만들거나 리폼을 하기도 하고요. 자급자족이 일상이다 보니 귤밭에 트리하우스까지 짓게 됐고요. 집 앞에 작은 마트 하나 없고 학교도 차로 데려다주고 문방구도 차 타고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제주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금세 바다에 닿고 오름을 오르고 숲을 거닐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또 막 수확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저는 물론이고 남편도 아이도 제주에 오길 참 잘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서울에 있는 가족이 너무 그립고, 요즘은 코로나19가 확산돼 더 못 보고 있어 안타깝죠. 그래도 주변에 가족 같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제 서울에 가면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드는데, 지난번에는 서울이 묘하게 홍콩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국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우리 세 식구 모두 도시에서 태어나 제주로 오기 전까지 도시에서 편하게 살았어요. 제주 이주는 너무 크고 생소한 도전이라 모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에게 부탁할 일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게다가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하루가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제대로 배우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마음까지 바쁘게 사는 게 아니라 순리대로 살면 된다는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보통 여행객들이 제주에 오면 이곳저곳 이동하느라 여유가 없잖아요. 저 역시 ‘언제 또 오겠어?’ 하는 마음에 최대한 많이 보고 가자 했는데, 이젠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저 하늘과 바다, 나무와 숲을 바라보며 여유를 느낄 줄 알죠. 노을 지는 바닷가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제주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가족의 취미 생활도 달라졌겠죠?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장소를 찾으면 카메라를 챙겨 출동합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바다로 숲으로 떠날 수 있는 일상 여행을 바랐기에 올해 초 카라반을 장만했습니다. 어디든 차를 세우면 여행지가 되는 셈이죠. 아들 건우의 겨울방학 때는 카라반을 몰고 제주 일주를 하거나 배에 카라반을 싣고 육지 여행을 떠날 계획도 짜고 있습니다.

예쁜 것을 보면 사진을 찍고 바다에 가고 오름에 오르는 것이 일상이자 취미이고, 캠핑도 좋아합니다. 지난해 결혼 10주년이었는데, 코로나19 탓에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었어요. 친구, 가족들과 캠핑을 가서 축하 파티를 했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해외여행보다 더 좋았을 정도예요. 캠핑카도 장만했으니 이제 행복한 추억이 더 많이 쌓이겠죠?


In the Market Bag

헬로네이쳐(www.hellonature.co.kr), 구월마켓(goowol.com) 공구를 즐겨 이용하고,
장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보고 있어요. 초록마을의 찹쌀누룽지는 필수 아이템이고,
달걀은 제주의 유정란이 정말 고소해서 즐겨 먹어요. 채소는 하나로마트로컬푸드 매대와 한살림에서 사는 편이에요. 장볼
때마다 와인도 한 병씩 구입하는데, 즐겨가는 ‘오프너마켓(@opnermarket_jeju)’은
와인부터 맥주, 음료, 치즈, 과자 등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요. 최근에 계속 눈독들이던 와인 ‘타피’가 일년만에 입고되어서 구입했답니다.

Contributing Editor 최세진
Photographer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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