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이렇게 다양한 주거 형태가 존재한다

제주의 집은 아파트와 빌라, 매매와 전세의 개념을 넘어 사는 사람의 취향, 습관 태도처럼 많은 요소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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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의 오피스텔
“연애 시절부터 울산에서 카페를 운영한 우리 부부는 결혼과 함께 제주 서귀포로 이사해 카페를 열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제주에서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육지와 섬은 달랐다. 바다가 보이는 단독주택에 차린 신혼집은 여름이면 물속을 걷는 듯 습했고 반려묘 두 마리는 피부병을 앓았다. 더위는 견뎌도 습기에는 무너지는 남편의 시름이 집 안 가득했다. 여름엔 에어컨을 종일 켜도 70%의 습도 속에 살아야 했고 중고 거래로 구입한 제습기 두 대는 금세 고장이 났다. 비바람이 불 때면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연세로 집을 계약한 터라, 우리는 1년 만에 그 집을 떠나 올레시장 부근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진 않지만 시스템 에어컨이 방마다 딸린 집에서 보송한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에 만족한다.”

2
김선아의 신시가지 아파트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 대부분 애월, 한림처럼 고즈넉한 지역을 선택한다.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이주를 결심한 우리 부부도 초기엔 제주 시내에서 떨어진 지역을 고려했다. 시간 날 때마다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 딸린 단독주택을 보러 제주에 내려왔다. 여느 때처럼 집을 보러 온 주말, 갑작스레 아이가 고열을 앓았다. 응급실은 20-30km나 떨어져 있었고 조급한 마음으로 밤길을 운전해 병원에 갔다. 이후 우리는 제주 신시가지 1층 아파트를 선택했다. 밤늦게까지 열린 마트와 병원, 도시가스가 공급돼 저렴한 비용으로 집을 따뜻하게 데울 난방 설비가 아직까지 필요했다. 주말이면 15분 거리의 해수욕장에 달려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우리 가족도 한라산이나 바다가 가까운 마을로 이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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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현의 타운하우스
“제주로 2년간 교환근무를 신청해 남편과 아이 둘을 이끌고 제주에 입도했다. 우리 가족의 첫 집은 치킨 하나 배달되지 않는 지역의 전원주택이었다. 전교생 100명 남짓의 학교로 전학한 아이들은 빠르게 적응했는데, 남편과 나는 아니었다. 주말마다 산과 바다로 떠나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종종 서울의 지옥철 출근이 그리웠다. 2년간의 교환근무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제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던 우리는 타운하우스로 이사했다.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부들과 공동육아를 하듯 생활한다. 밤 9시가 넘어서도 아이들은 이집 저집을 오가며 논다. 라면, 과자, 고기는 늘 대용량으로 구비하고 부부들끼리 모여 맥주 타임을 즐긴다. 지난여름엔 옆집에서 간이 수영장을 구입해 아이들을 위한 야외 수영장을 열었다. 우리 집은 치킨 몇 마리를 주문해 간식을 준비했다. 이전에 살던 신혼부부는 이러한 개방된 커뮤니티를 못 견디고 이사를 결심했다던데 우리는 꽤나 행복하다.”

4
유승현의 한 동 아파트
“빛바랜 핑크색 외벽의 한 동 아파트를 처음 보았을 때 눈보라 속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았다. 현관으론 노인들이 드나들었다. 꽤 오랜 시간 방치된 빈집으로 제주항의 파란 바다가 들었다. 작은 테라스도 딸려 있다. 하지만 2구짜리 가스레인지와 개수대를 포함해
1m 남짓의 주방 하부장, 곰팡이가 슨 벽도 공존했다. 사실 사진만 보고 덜컥 결정한 집이었는데 그 무모함의 대가는 상당했다. 10만원의 수리비가 든다던 화장실 세면대 팝업은 마트에서 5000원짜리 부품을 구입해 직접 교체했고, 주방 하부장 높이와 너비를 계측해 보조 테이블을 만들었다. 물류비 때문에 턱없이 비싼 가구는 값싼 조립 가구로 대체했다. 침대부터 옷장, 화장대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 입도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집에 적응 중이다. 대낮이면 바다에서 돌아온 아래층 어부 할아버지가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초저녁엔 옥상에서 주민들끼리 닭백숙 파티를 연다. 오가며 어른들께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이 집은 오늘도 우리를 성장시킨다.”

5
현태은의 마당 딸린 구옥
“식물집사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내게 제주로의 이사는 맘껏 식물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을 찾는 첫 단계였다. 온화한 볕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한 평의 테라스라면 충분했다. 테라스가 있는 집을 찾아 부동산 어플부터 오일장, 교차로 같은 지역 신문까지 헤맸다. 테라스를 넘어 마당이 딸린 구옥을 찾았고 자동차 탁송 서비스를 이용해 차 안 가득 식물을 실어 이사했다. 부푼 기대와 달리 염분 섞인 해풍으로 인해 테라스 식물들은 생기를 잃은 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또 밤이면 바퀴벌레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화분 사이사이로 숨바꼭질을 했다. 바닷가 테라스와 도시 아파트 베란다는 애초의 다른 서식 환경이었다. 강원도와 방콕만큼의 차이랄까. 마을을 거닐 때마다 주위에 자라는 풀과 피어난 꽃을 본다. 우리 집이라는 우주에는 어떤 식물이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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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의 100년 된 옛집
“3년 전, 몸과 마음이 지쳐 모든 걸 멈추고 남편과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입도를 결정하고 2년간 매달 제주에 내려와 집을 알아보던 끝에 지금 집을 만났다. 한달살기를 하며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집은 지은 지 100년도 더 되었다. 새로 짓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했다. 육지와 달리 인건비도 높아, 큰 골조 공사를 제외하고는 3달간 우리 부부가 매일 작업했다. 우리 손으로 집 전체를 해체하고 작업한 터라 구조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작은 나사, 못질 하나에도 그 애정의 강도는 남다르다. 1년이 지난 지금, 추운 겨울 끝이 보이지 않는 일거리와 흙먼지에 싸여 남편과 마시던 술 한잔이 떠오른다. 장마 소식에 방수 작업을 하며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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