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대균 : 우유하고 태연한 진행형의 집

풍년빌라부터 브로드밴드 하우스까지 공유에서 미래 주거의 해법을 찾는 건축가 김대균.
시대와 집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공공의 선과 소통을 생각하는 온기 있는 마음, 유연성과 관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까지 그에게 집이란 빈틈없이 구축해야 할 또 하나의 세계다.

세 가구가 따로 또 같이 사는 ‘풍년빌라’는 새로운 주거 공간의 형태라는 타이틀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공유라는 트렌드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공유가 아닌 ‘함께’를 내세우며 같이 살지만 따로 사는 주거 실험 프로젝트의 문을 연 것. 의미 있는 이 프로젝트의 방향키를 잡은 선장은 김대균 건축가다. 공유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년, 지금 그의 생각과 현실은 어디쯤 다다랐을까.

코리빙하우스 이야기부터 할 수밖에 없네요. 다양한 모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공유 주택 모델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단순히 공간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공유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절대 나눌 수 없는지 같은 거요. 그래서 감각과 행위, 물건, 위생, 동선 등으로 카테고리를 구분했죠. 예를 들어, 감각 중에 ‘시각을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누군가 자고 있는 모습을 봐도 상관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식기를 타인과 나눈다면 무엇까지 허용될까 같은 카테고리를 세분화해서 맥을 짚어보는 거죠.
감각과 생활의 구분점이 생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공유로 생기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게 코리빙하우스의 핵심이더라고요.

최근 진행한 공유 공간에서 흥미로웠던 프로젝트를 소개해준다면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해남 대흥사에 100년 여관이라 알려진 유선여관이 있어요. 한옥의 핵심 골조는 유지하면서 현대인에게 맞는 호텔로 탈바꿈하는 개·보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꼬박 1년이 걸려 지난 8월에 마무리하고 호텔을 오픈했어요. 지금은 통신 회사 KT와 숙박 브랜드 야놀자가 합작하는 공유 주택 프로젝트의 케이스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유선전화를 사용하던 1970~80년대에는 동네마다 통신에 필요한 작은 기계를 놓는 공간들이 필요했대요. 그래서 KT가 동네마다 집을 한 채 매입해 다세대 빌라나 주택으로 꾸려 기계를 놓는 공간을 제외하고 임대를 했던 거예요. 그런 건물이 서울에 70채 정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브로드밴드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그 건물들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공유 주택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2019년에 진행한 풍년빌라가 공유 공간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죠. 새로운 주거 형태라고 불리는 풍년빌라의 설계는 어떻게 맡게 됐나요?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인 ‘어쩌다 가게’를 만든 임태병 건축가의 부탁을 받게 됐어요. 어쩌다 가게를 만들며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은데 본인이 직접 설계에 참여하면 객관화하기가 힘들다고요. 4층짜리 풍년빌라에는 세 가구가 살아요. 임태병 건축가의 가족, 방송작가 부부와 반려견, 그리고 일러스트 작가와 반려묘 이렇게요. 3층에 사는 일러스트 작가는 혼자 살 때 밤이 되면 무서워 잠을 잘 못 잤는데, 풍년빌라로 들어오면서 자는 게 무섭지가 않아졌대요. 이 집에서 비로소 안전함을 느끼게 된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함께의 포근함이고요.

서울만 해도 공유 주택이 꽤 많아졌는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봐도 될까요?
사실 진정한 공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죠. 재화에 대한 욕망은 늘어나는데 충족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잖아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문화가 형성되고, 그걸 좋은 방향으로 끌고 나가면 진정성이 생기죠. 공유는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규칙을 세워야 해요. 공동의 규칙을 정해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룰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허용하는 조금 크고 넓은 범위의 규칙을 만드는 거예요.

풍년빌라에는 어떤 규칙이 있나요?
풍년빌라의 세 가구는 이미 서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욱더 철저하게 분리를 했어요.
몇 가지 규칙도 세웠죠. 1층 임태병 건축가 가족의 거실은 사람이 있을 때만 모두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사람이 없을 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의 규칙이에요. 그리고 건물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과 반려묘는 모든 공간에 출입이 가능해요. 반려동물들은 공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으니 모두의 가족이 되었죠. 이처럼 유연하고도 대략적인 규칙은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선을 지키며 상대를 배려할 수 있게 해요. 또 분명히 분리되었지만 느슨한 연결고리들이 함께 사는 불편을 지워줘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주거 형태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잖아요. 소장님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주거 형태는 무엇인가요?
그 시대에 맞는 문화와 환경에 따라 집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상적인 형태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예전에는 관혼상제, 즉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결혼하고, 또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잖아요. 그보다도 더 옛날에는 의원이나 대장장이도 모두 집에서 일을 했고요. 지금은 집에서 하던 행위를 분리하다 보니 잠만 자는 공간이 되었죠. 재미있는 점은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이라는 특이한 시대가 오면서 집의 형태가 앞서 말한 옛날의 형태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집의 기능과 역할, 의미가 많이 바뀌었어요. 앞으로의 주거 형태는 어떻게 바뀔까요?
집을 사무실로도, 개인 작업실로도 쓰다 보니 다양한 기능을 갖출 수밖에 없어요. 사실 팬데믹 시대 이전에도 우버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사무 공간을 가정집의 거실처럼 만들어놓았어요.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일을 하면 경직된 사고가 유연해지면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주거 공간이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도록 바뀌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죠. 수십 년 동안 발전해온 아파트 생활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변신해야 하는 집의 유연성이 얼마나 단련되느냐가 우리가 앞으로 고려해야 할 주거 형태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유연한 집이 곧 미래의 집이라는 말이네요.
철학적으로 접근해보자면 ‘유연’에는 또 다른 뜻이 있어요. ‘한가하다’는 뜻의 유와 ‘자연’에서의 연을 연결하면 ‘유유하면서 태연한 집’이 돼요. 앞서 말한 미래의 여러 가지 기능도 결국 유유하고 태연한 부분들을 담을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를테면, 다양한 방식으로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게 되니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제각각이고, 주방·거실·침실·화장실 등으로 확실했던 집의 구조가 점점 혼재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요. 그걸 가속화한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인 부분도 있고, 디지털 시대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융합된 디지로그의 시대로 급변한 데에도 원인이 있죠.
건축이 비어 있는 공간에 적절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면, 집을 구체화한다는 뜻의 가구는 생활을 만들죠. 그래서 근대 건축가들은 집과 가구를 같이 만들었어요. 집이 유연할 수 있으려면 주도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거실에는 소파와 TV를 놓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하면 이해가 조금 쉬워질까요. 공간에 딱 맞춘 붙박이 가구를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가구를 배치하는 것부터가 유연한 집의 시작이에요. 또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볼까 하는 고민은 소통으로 이어지죠. 함께 사는 가족이 있다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집의 실체를 만들어가는 시간과 과정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집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환경이 바뀌었을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구의 중요성, 이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들,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그 기저에 있는 배려와 태도 같은 인문학적 요소들의 합이 미래의 집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현실적으로 바쁜 현대인들은 주거 공간에 신경 쓸 틈이 없기도 합니다.
집이나 마당을 가꾸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집을 신경 쓰는 것이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시간을 할애할 텐데, 획일화된 아파트 생활이 주를 이루다 보니 그럴 일이 없는 거죠. 마당이 없어도 집을 안락하게 만드는 방법은 많아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집을 극장처럼 꾸며놓는다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친구를 한두 명씩 데려오다 보면 그 공간은 소위 ‘영화 맛집’이 되는 거예요. 친구들이 들락날락하다 보면 집에는 활력이 돌고 본인에게는 관계가 생겨 인생이 달라질지도 몰라요. 이처럼 집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집은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고, 그 소통은 분명 삶을 나아지게 하죠. 집을 구체화해서 마음과 공간을 유연하게 만드는 감각을 키워나가는 연습은 관계를 만들고 이해가 생기게 해요.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면 동정도 생기죠. 그럼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같은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고요.

건축가로서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좋은 집을 만들려면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잠을 자다 일어났는데 침대 옆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한 가닥이 마음에 와 닿았다면
그 감성을 고스란히 방 안에 녹이는 그런 세심함 말이에요.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취향인지를 잘 모른다는 거예요. 집에 머무르며 좋았던 순간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건축가는 대화를 하면서 의뢰인의 고민과 취향, 생각을 파악하고 반영하는 몫을 해내죠. 또 한 가지 건축가는 공공성을 기반으로 집을 지어야 해요. 이웃집이 어떤 피해를 입든지 본인 집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짓고 난 다음 이웃과 문제가 생기면, 그건 과연 좋은 집일까요? 주차 문제, 층간소음 등 배려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건축가를 비롯해 집을 만드는 모두가 균형 있게 맞춰나가는 것이 결국 좋은 사회로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공공성은 개인성과 분리될 수 없어요. 타인이 없으면 나도 없는 거죠.

Contributing Editor 박진명
Photographer 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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