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박창현 : 관계를 잇고 연대하는 집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주목하는 건축가. 그가 ‘동네’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도 집 속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유한 이야기를 통해 연대한다는 맥락에서 출발한다. 동네의 추억과 기억이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건축가는 주거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관계 맺기에 주목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과 같은 ‘공공재’를 사유재산 안에 들이면 이웃과 연결해주는 매개가 되지 않을까? 사유화된 건물 안에서도 공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건축가 박창현은 말한다. 이 방법을 통해 연대하고 공존하는 방식을 찾을 수 있어서다.

써드플레이스 B2는 반경 350m 안에 여섯 주택이 모여 있다. 원래 있던 동네와 집 사이에 점, 점, 점의 형태로 지어 들어가면서 집과 집끼리의 연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잇는다.

이야기에 앞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 중에 어떤 때를 가장 좋아하나요?
지금 제가 사는 집은 일하는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가족도 집과 집 밖의 일들을 분리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제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요일 아침이에요. 연대하는 시간, 그때를 제외하면 가족이 모여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은 거의 없어요. 일요일 아침에 저와 아내는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는 음악을 준비하는 일과를 오래 이어오고 있어요. 요즘 들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까 일요일 아침이 가장 소중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화목한 집이 연상되는데, 건축가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제 위주의 집은 아닌 것 같아요. 학부모라면 대부분 마찬가지일 텐데, 그 이유는 아이의 교육적인 부분이 가장 크겠죠? (웃음)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어요. 학군에서도 좀 자유로워질 것 같고.

좀 더 구체적으로 원하는 방식의 집이 궁금해지는데요?
사무실에서 한강만 건너면 바로 집이거든요. 위치상으로는 가깝지만 공간적으로는 완전히 다르죠. 이 두 공간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나중에는 거의 붙거나 합쳐지는 쪽으로 바뀔 것 같아요. 일의 방식이 예전과는 다르게 바뀌고 있으니 재택에 대한 부분도 분명 고려해봐야겠고요. 그러다 보면 일과 생활의 경계가 점점 없어지지 않을까요? 아직은 아니지만 바뀔 것 같기는 해요. 그렇게 되면 가족과도 더 가까워질 겁니다.

집이 바뀌고 있다는 건 ‘집의 역할’을 말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인가요?
최근 변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중에는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설계를 할 때, 특히 저층형 집합주택을 많이 다루거든요. 다세대, 다가구를 많이 설계해요. 다가구주택의 특징이라면 아파트에서는 보기 드문 1~2인 가구를 위한 사이즈를 들 수 있죠. 아파트는 더 많은 가족 구성원을 위한 집이에요. 예전에 가족 구성원이 여럿이었을 때는 아파트가 많은 수요를 차지했다면, 앞으로는 1~2인을 위한 집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지금도 1~2인 가구가 60%를 넘어서는 수준이니까요.

 

수요를 생각하면 집합주택은 앞으로 더 주목을 받겠네요. 단독주택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고요.
물론 단독주택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개인에게는 규모와 땅, 경제적인 부분이 부담스러울 수 있죠. 그래서 여러 명이 같이 살 수 있는 저층형 집합주택 같은 형태가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한 집에 여러 명이 아니라, 한 건물 안에 각각의 집이 모여 있는 다세대, 다가구의 형태죠. 이런 집이 앞으로는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세대, 다가구 형태의 집합주택은 동네마다 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제시할 만한 집은 과연 어떤 형태가 있을지 더 많이 고민하죠. 요즘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동네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 동네라도 집합주택은 있으니 ‘동네에 관한 이야기’가 선택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지역은 조금씩 변하거나 아예 이전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하죠. 그런데 동네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그게 나와 연결되는 접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느 동네, 어떤 풍경에 살지, 내 라이프스타일과 연결해보는 식이죠. 그런 과정 속에서 앞으로는 동네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네 저마다의 고유한 스토리가 집을 선택하는 바탕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집합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프라이버시가 덜 지켜질 수밖에 없죠.
단독주택이 아니라 여러 집이 같이 사는 집합주택이라고 하면, 적어도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잘 유지할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해요. 건축가는 설계 과정에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되고요. 아주 붙어버리면 프라이버시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부담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저는 오히려 관계를 나누지 않고 하나로 묶어준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심리적인 연대, 그러면 적어도 내가 급박한 위험에 처했을 때 언제든 나를 도와줄 수 있을 테죠. 요즘은 어떤 경로로든 쉽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그런 연대를 만들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을 설계 단계부터 포함시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집합주택 안에 공유 오피스 같은 공유 공간을 만들면 연대는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고, 나아가 공유 공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그 연대는 더 쉽고 유연하게 묶이겠죠.

그렇게 되면 아파트와 주택으로 구분하는 집이 아닌, 어떤 ‘역할로서의 집’이 되겠어요.
내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는 형태는 단독주택밖에 없었어요. 다세대는 아파트처럼 다 카피잖아요. 이 집과 저 집이 다른 집이지만 같은 거죠. 내 화장실 밑에 아랫집 화장실이 있고, 내 거실 밑에 아랫집 거실이 있는 형태. 이전에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이 차, 옷, 가방 같은 것들이었다면 이제는 집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집을 통해 라이프스타일과 관심사, 성격, 삶의 패턴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죠. 몇 년 새 가족 구성원이 4~5인에서 1~2인으로 줄어들면서 확실히 ‘내 집’에 관한 관점이 많이 바뀌고 있고 그만큼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고민도 함께 많아지고 있죠.

설계하신 ‘써드플레이스 홍은3’가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써드플레이스 홍은3의 공식 이름은 ‘써드플레이스 B2’인데요. 홍은동의 한 동네에 라운지가 있는 다세대 여섯 채를 기획했어요. 동네 땅을 띄엄띄엄 매입해서 각각 프로그램이 다른 건물을 짓고 있죠. 예를 들어 지난해 오픈한 ‘써드플레이스 홍은2’에는 입주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밥을 먹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요리를 위해 함께 텃밭도 가꾸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죠. 써드플레이스는 현재 총 여섯 가지 콘셉트로 짓고 있어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합주택,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 모여 사는 집합주택, 식물을 주제로 하는 집합주택 등 건물 전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인 거죠. 두 건물을 착공했고 나머지 세 채는 내년 2월에 착공해요.

전혀 다른 형태, 기능, 역할을 가진 이상적인 집의 등장이네요.
이전에는 획일적이고 표준적인 형태의 집, 그러니까 조금 강하게 이야기하면 몰개성의 집이 대부분이었죠. 어쩌면 익명성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가 더 단절되지 않았나 싶어요. 한 건물에 200~300세대가 사는 집과 다섯 세대가 사는 집을 생각해보면 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앞으로는 분명 바뀔 것 같아요. 이웃들과의 관계도 지금과는 많이 개선되겠죠. 서로 공유하고 표현하는 형태의 집이 많이 보일 거예요.

집은 앞으로 어떤 의미를 새로 갖게 될까요?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종합하는 대답이 될 것 같아요. 이제 집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집이 자신과 가까워지는 상황이 생길 거예요. 이를테면 내가 원하는 공간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남과 무엇이 다른지, 라이프스타일은 어떠한지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겠죠. 그렇게 나에게 맞는 집과 공간을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거죠. 집이 그런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이전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집을 카탈로그를 보고 선택하듯 골랐다면, 앞으로의 집은 나와 집을 함께 만들어 가는, 그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요?

Contributing Editor 신이서
Photograhper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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