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 김규리의 지금

“흔들리고 번지는 선에 내 마음이 다 드러나요.” 연기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배우 김규리의 지금.

지난 5월, 북촌의 갤러리 혜우원에서 첫 개인전 <길>을 열었죠.
많은 의미가 담긴 전시명 같아요. 그림을 그린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처음으로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전부 꺼내보았어요. 사실 개인전을 할 만큼 나만의 것을 찾았는지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어요. 하지만 마냥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그 때를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표현한 전시였고, 큰 용기를 얻었어요.

어떤 용기인가요?
일단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위안이었죠. 마음을 다스리고 차분하게 나와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운 것 같아요. 덕분에 이제야 조금씩 어떤 상황이 와도 내 방식과 속도대로 걸어갈 수 있겠구나 싶은 믿음과 안정이 들기 시작해요. 또 다른 의미로는 외부로부터 오는 소통과 공감의 힘이에요.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차마 말하기 어려운 상처도 많이 받았고 자연스럽게 주변 정리가 됐어요. 지금은 그때 일들이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거든요. 그럴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응원과 위로를 받은 거예요. 그림이 좋은 매개체가 됐고요. 제 그림을 보고 제 이야기나 감정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괜찮아요. 힘 내요” 하고 툭 던져주는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어요.

영화 <미인도>를 통해 처음 접한 한국화를 그 뒤로 꾸준히 그렸어요. 어떤 매력을 느꼈나요?
한국화는 먹과 한지, 물, 붓 이렇게 네 가지 재료로 표현하는 예술이에요. 단순한 듯하지만 그 안의 기법들이 굉장히 섬세해요. 타고난 기질이 민감하고 예민한 편인데, 붓에 먹을 묻히고 한지에 얹으면 아주 미세한 떨림까지도 고스란히 표현이 되거든요. 같은 먹물이라도 붓에 묻힐 때마다 색이 다르고 그걸 한지에 올리려면 우선 제 마음을 다잡아야 해요. 덧칠이나 수정도 쉽지 않아서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고, 엄격해야 하죠. 그런 작업 방식이 제 성향과도 잘 맞았고, 잡념들을 잊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어서 더 몰두하게 된 것 같아요.

배우는 마음속에서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지었다가 허물기를 반복하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비슷한가요?
어떤 상황, 어떤 마음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요. 한동안은 그림 말고는 도무지 다른 걸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절박한 심정으로 그렸어요. 어릴 때부터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그 당시는 제 마음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거나 글로도 차마 다 풀어 내기 힘든 때라 달리 방법이 없었죠. 살기 위해 그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림에 드러난 내 마음 상태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불안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소심하고 뭔가에 연연하는 모습들 전부요.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런 감정들을 잡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니까, 내 생각과 정서를 끊임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연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면 연기를 할 때의 마음도 전과 달라졌나요?
연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전에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붓기 위한 준비에 썼어요. 일상을 작품 하기 위한 사람처럼 살았달까. 꾸준히 몸을 만들고 발성을 위해 목소리를 공부하고,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배우고요. 물론 지금도 연기를 그만큼 좋아하고 잘하고 싶지만 전처럼 매달려 있지는 않으려고요. 다시 작품 제의가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 하는 마음을 한편에 두고서 연기를 하기로 했어요. 여전히 현장에서 얻는 에너지나 기쁨이 가장 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의연하게 나가고 싶어요. 그러다 좋은 기회에 다시 의연하게 돌아올 수도 있고요. 인생의 챕터들이 어디 내 마음대로 끝내지거나, 시작할 수 있던가요?(웃음)

그 의연한 마음들을 당분간은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아요. 요즘도 계속 작품 촬영 중이시죠?
네, 감사하게요(웃음). 얼마 전에 영화 <화평반점> 촬영을 마쳤고, 요즘은 jtbc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을 한창 촬영 중이에요. <화평반점>은 시대적 배경이 5·18 사건이에요. 그 시절 광주 뒷골목에서 중국집을 하던 가족이 주인공이에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 속에 던져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린 마더스 클럽>은 ‘녹색어머니회’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초등학교 커뮤니티의 모습과 학부모들의 관계망을 그린 드라마인데, 여배우들의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기대하셔도 좋아요.(웃음)

올해 초 종영한 tbs 라디오 <김규리의 퐁당퐁당>에서는 매끄러운 진행 실력을 뽐내기도 했죠. 그러고 보니 모델 출신에 배우, 디제이, 작가까지 재능이 참 많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웃음). 매일 아침 9시에 한 시간씩 꼬박 2년을 진행했는데, 끝날 때 너무 아쉬웠어요. 라디오는 정말 신기해요. 오로지 목소리로만 청취자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표정이 다 보이는 TV나 스크린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거든요. 그날의 제 기분이나 감정, 상태들이 목소리에 여실히 드러나요. 첫인사를 하면 바로 청취자들이 ‘오늘 귤디(디제이 김규리의 애칭) 기분이 좋은가 봐요. 무슨 일 있나요?’ 하고 문자를 보내요. 그러니 솔직할 수밖에요. 라디오 애청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애틋해요. 저한테 큰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이고 너무너무 감사하죠.

올해 12월은 한 해가 끝나가는 아쉬움보다는 다가올 새해에 대한 설렘이 더 크게 느껴지는 달이었음 좋겠네요.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연말은 촬영 하느라 바쁘게 보낼 것 같고, 내년 상반기 쯤에는 준비해둔 드라마와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요. 또 후년에는 해외 전시를 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어서 그림은 계속 그릴 것 같아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부지런히 움직여보려고요. 참, 내년 초에 전시도 계획하고 있어요. 여러 작가들이 함께 하는 특별전인데, 100호짜리 그림을 두 점이나 그려야 해요. 생각해보니 방금 계획이 하나 더 생겼어요. 일단, 붓을 들자!(웃음)

 

 

Editor Kim EunHyang
Photographer SONG S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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