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한계 앞에 선 지구를 위한 변론

강금실은 하늘, 나무, 강에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전 법무부 장관 그가 환경과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연의 권리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강금실은 2008년 정치권에서 법조계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생명대학원에 진학해 문명, 생태 공부를 시작해 2015년 지식 공동체 ‘지구와 사람’을 열었다. 최근 생태적 세계관과 지구법학에 관한 책 «지구를 위한 변론»을 썼다.

어린 나이에 판사가 되었죠. 국내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이었고요. 공직과 정치의 성공 가도를 뒤로한 채 생태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30, 40대에는 법원에서 일하면서 판단을 업으로 삼았는데, 공적 윤리가 매우 강한 직업이잖아요. 당시 우리 사회는 갈등이 컸죠. 독재 정권이 합법적으로 저항 세력을 억압하니까 특히 법의 문제에 대한 갈등이 깊었어요. 저항운동을 재판을 통해 처벌하잖아요.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이 법이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활동의 또 다른 명분을 주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공무집행방해, 폭력 같은 걸 적용해 시민들을 처벌했어요. 굉장히 복잡한 지점에서 법을 본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합법, 비합법을 구분할 때 한쪽은 계속 법에 저항하게 되고 한쪽은 법을 악용했어요. 실정법 위반의 문제도 있고요. 이럴 때 법의 기능은 무엇일까? 법치주의, 민주주의가 심하게 왜곡된 상황에서 ‘재판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요.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려웠기에 답을 찾고 싶었어요. 이후에 법무부, 민주당에 가면서 정치와 법의 문제를 연속적으로 고민했고요. 사람은 태어난 사회, 세상을 이해해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항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해답이 제 안에 없달까? 뭔가 소화를 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과 정치의 큰 축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군요.
맞아요.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나 검찰의 위상 정립에 대한 답은 낼 수 있었지만, 더 깊은 곳에서의 갈등, 투쟁에 대해서는 해명되지 않는 숙제를 품고 있었어요. 저는 그걸 풀고 싶었어요. 그래야 행복해질 것 같았고요. 제가 갈 방향과 현실 사이에 갭이 있었죠. 정치 상황은 늘 어지럽잖아요. 욕망과 이해관계에 얽혀 충돌하고 싸우기만 한다면 문명, 문화가 아니에요. 거기서 어떠한 룰을 만드는데, 룰은 계속 확장돼요. 그 룰이 처음에는 왕한테 집중되었다가 귀족에게로, 그리고 일반 시민에게까지 번져서 모두 공평한 상태가 됐죠.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그런 틀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인데, 극심한 싸움 속에서 룰이 안 보였죠. 그러다가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밑

단에 풀리지 않는 뿌리가 계속 있었고, 그걸 공부로 찾으려고 했고요.
결국 공부가 중요해요. 학문은 같은 고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의 집합이기 때문에 그것을 공부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역할 분담이죠. 계속 ‘왜 이런가?’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죠. 저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 그런 것들을 깊이 고민하고 싶어요. 지금 있는 곳에서 당장 주어진 것을 좇아가기도 바쁜 게 사실이지만 계속 좇기만 하면 해결이 안 돼요.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나?’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죠.

함께 좇을 방향이나 기조가 설정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그래도 «지구를 위한 변론»을 읽다 보니 미래 세대에 거는 기대가 엿보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을 해요. 적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가죠. 인류가 진화한 흔적이 우리 몸에도 남아 있고요. 그렇게 보았을 때 지금의 10대는 환경이나 기후 위기를 훨씬 무섭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주어진 게 너무 공포스럽죠. 저희 세대는 달라요. 제가 열 살 때 처음으로 라면이 나왔고요, 좌석버스가 등장했던 게 기억이 나요. 공장 산업이 처음으로 시작됐죠. 성장과 개발을 하면서 노동, 소외, 독재처럼 너무 많은 문제 속에 복잡하게 얽혀서 살았죠. 하지만 자연물질적 혜택만큼은 누리며 살았어요. 기후나 환경문제에 둔하죠. 젊은 세대는 답답할 거예요. 그들 눈에는 너무 위험한데 어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레타 툰베리 같은 10대 활동가가 등장하는 거예요. 자기 환경은 다르니까 더 절박하게 느끼죠.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20대한테는 생존과 결부된 문제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절감하지 못해요. 그 시절엔 어지간히 노력하면 아파트를 샀고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공감을 못하죠. 전 10대 이후 세대가 기후 문제에 가장 예민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아이들은 마스크 없이 숨을 쉬는 것조차 두려울 수 있겠죠.
지금도 환경문제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건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인 것처럼요. 환경문제를 이야기할 때 지금의 10대를 넘어 미래 세대(Future Generation)라는 용어가 등장해요. 환경을 파괴하면 다음 세대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에서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중요한 이유는 지금 이 땅에 없는 존재를 권리 주체로 인정한다는 거예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배려하는 법 제도가 필요하다는 거죠. 1990년대부터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인간과 자연의 법인격, 이 두 가지가 크게 부각됐어요.

책을 보니 자연의 법인격을 인정하는 걸 지구법학이라 하더군요.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자는 주장 아래에서 법인격(Legal Person)이란 말을 써요. 사람의 인격과 법적 인격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법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필요에 따라 보호법익을 적용하는 거죠. 17세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회사에 법인격을 부여했거든요. 자본주의의 팽창과 함께 경제 번영을 위해 회사의 법인격을 인정했는데, 당시에 회사가 어떻게 법인격을 가지느냐는 말이 나왔어요. 지금은 도리어 모든 일이 회사 중심으로 돌아가잖아요. 최근 환경문제가 대두되니까 자연의 법인격을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지난 10월 처음으로 동물의 법인격을 인정했어요. 콜롬비아 마그달레나강 유역에 거주하는 하마들한테 부여했죠. 악명 높았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개인 동물원에 들여왔던 하마 4마리가 야생에 남겨져 80마리로 불어났고, 정부가 생태계 교란 등을 이유로 개체수 조절 방안을 모색하면서 살처분을 막기 위한 소송이 제기됐어요. 원고는 하마였고 하마를 대리하는 변호인이 법원에 미국 야생동물 전문가 2인의 진술 정취를 요구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하마의 법인격이 인정됐어요. 전 세계 생태학에서 자연의 권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어요. 법학이라는 측면으로 근거적 이론을 발전시키는 거죠. ‘자연이 태어난 그대로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자는 거죠. 리조트, 골프장을 짓기 위해 땅을 개간하지 않을 권리 말이에요.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면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무엇인가요?
우선 소송을 할 수 있죠. 예컨대 자연의 법인격을 인정했을 때 권리를 침해받는다면 환경단체 등이 대리인 자격으로 보호 소송을 걸 수 있죠. 지구법학의 선례는 1972년 시에라 클럽 사건이에요.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산맥의 계곡에 스키장을 건설하려는 월트디즈니의 위법성을 다투는 사건이었죠.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이 원고가 될 당사자적격이 있느냐가 쟁점이었어요. 윌리엄 O. 더글라스 대법관이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법학과 교수 크리스토퍼 스톤의 ‘나무도 원고적격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의견서를 토대로 자연물이 원고적격을 가지며, 환경단체도 자연물의 법적 후견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어요. 이게 세계적인 판결이 됐죠. 최근엔 해외에서 자연물의 법인격을 인정하는 사례가 엄청 늘었어요. 2017년에는 뉴질랜드 의회가 원주민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북섬 황거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죠. 누군가가 강을 해치거나 더럽히면 사람에게 한 것과 똑같이 처벌받는다는 뜻이에요.

국내는 어떤가요?
국내에서는 자연의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아요. KTX 개설 공사로 천성산 도롱뇽 서식지인 화엄늪이 사라질 수 있다며 소송을 걸었던 도롱뇽 사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건 등이 있어요. 하지만 아직 인용된 케이스는 없어요. 아주 최근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어요. 주택단지 개발을 평가할 때 그곳에 사는 동물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 취소를 한 사례가 있었죠.

법은 가장 보수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모든 세대를 관통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자연을 법으로 다룬다는 게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다소 급진적이다’는 생각이 모두 듭니다.
법의 보수성과 보편성이죠.

법 대신 개인의 자율성, 실천에 맡기는 것이 우선 아닐까요?
이전에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에서 박사들이 모여 세미나를 했는데, 그때도 그런 질문이 많이 나왔어요. 확실한 건 정부와 경제의 문제지 개인의 실천이 최우선은 아니에요.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죠. 그럼에도 개인의 실천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이 문제를 실감하고 합의를 해야 할 때 압박이 생겨서 제도가 바뀌어요. 또 그래야 정부가 감축 조치, 정책을 할 때 수용이 가능해요. 대표적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전기요금이에요. 우리나라가 OECD 26개국 중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해요. 하지만 국민들 반발 때문에 올리지를 못해요. 국민들이 ‘아 이게 문제가 있구나, 전기요금을 올리고 전기 사용 감축을 실천해야겠구나’를 체감해야 동참할 수 있겠죠. 처음에 기후 위기나 환경문제를 제기한 것도 자각한 개인이었으니까요. 그런 차원에서는 개인의 의지, 실천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에요.

이제 어느정도 국민적 합의는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정부는 어느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전 세계가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보조를 잘 맞추고 있다는 생각해요. 하지만 어떻게 쫓아갈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요. 전체적인 로드맵을 짜고 에너지를 어떻게 전환하고 조절할지에 대한 큰 단위의 합의체가 없어요. 법은 만들어졌지만요.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라서 한번에 전환이 가능할까요? 대기업이 바꿔야만 가능한 문제이긴 해요. 기술혁신을 통해서 에너지를 바꾸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원자재를 사용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요.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보면서 프로그램을 짜고 예산을 배치하며 어떠한 기술에 주력할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해요. 거기까지는 준비가 안 됐어요. 내년부터 탄소중립을 위한 법안이 시행될 텐데, 목표량은 있는데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아요. 그래서 굉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예요. 이번 대선에 가장 크고 중요한 과제는 기후 위기 대처, 탄소중립인데 이슈가 안 되고 있죠.

일회용품 쓰레기처럼 일상의 문제는 개인이 자각했지만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한 통감은 덜하죠. 코로나19로 경기회복 이슈도 있고요.
2030년까지 탄소 감축 목표량 40%를 달성하려면 지금부터 5년이 아주 중요해요. 2025년까지 잘 감축될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미래를 낙관하나요?
예측이 안 되죠. 불확정성이 커진 시대예요. 기후 위기는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라서 대처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죠. 20세기만 해도 인간이 지구를 해치고 있다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왜냐면 인간의 문명 대비 지구가 너무 컸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지구는 인간의 집이 되어버렸어요. 그럼에도 제가 낙관을 하는 건, 우리가 문제를 예상하고 있어서예요.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문제에 직면하는 것과 알고 있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물론 알고 있는데 실천하지 않는 건 문명적으로 부끄러운 일이에요. 엊그제 저개발 아시아 국가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그 나라와 달리 제 삶은 인공물질에 둘러싸였어요. 우리가 접하는 자연도 결국 수돗물처럼 인공화된 것이니까요. 인공화로 감성도, 경험도, 체험도 모두 달라졌어요. 인공화된 지구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제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와 감각조차 다르진 않을까? 미학, 법학, 인문학, 아니 모든 학문이 바뀌겠죠. 다만 지금의 문제는 생존, 지속가능하냐는 거죠.

미술마저 미디어아트를 넘어 NFT 세상이 열렸죠. 
기술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자연과 기술, 옳다 혹은 그르다보다 공존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양성의 가치가 많이 지워져버렸죠. 그동안에 방향이 맞다, 틀렸다고 규정하는 대신 지금 위험한 부분, 균형을 찾아야 하는 부분들을 주장해야 했어요. 선택의 문제에서 결론을 내는 게 중요하지 어떤 게 옳고 그르다 심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가치를 주장하는 것, 문제를 자정하는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해요.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겠죠. 또 하나는 “인간이 뭐라고?”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봐요. 지구상의 많은 존재 중에 유일하게 기술을 발전시켜 지구를 정복했는데 우리 것에만 너무 빠져버렸어요. 무조건적으로 자연과 공존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격차가 너무 벌어졌거든요. 도시와 지방, 선진국과 후진국, 인간 내부조차 격차가 너무 심해요. 자연인처럼, 후진국처럼 살라고 강요하기는 어렵죠. 계속 발전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니까요. 인간의 추동력이니까 부정할 순 없지만 다른 차원의 목소리가 늘어나야 해요. 20세기만 해도 철학적으로 인간 존재가 훌륭한 정신적 존재, 미적 차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요즘은 기술 만능이 되어버렸어요. 그게 결국은 집중을 부르죠. 자산이 많고 집중된 곳이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선순환하기도 하지만 악순환도 발생해요. 결국은 다양성의 공존이 필요해요.

환경, 기후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다양해도 될까요? 종말론적인 환경주의는 무섭고 싫지만, 오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또 새로운 세대를 낳으며 살아가잖아요.
그럼요. 우리 사회는 다양성과 양극화 두 가지 딜레마를 안고 있어요. 저는 전자가 답이라고 봐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그 영향력이 비슷해지기를 바라죠. 그나마 툰베리가 영향력이 있잖아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영향력을 갖겠죠. 이제 우리 사회에 진보, 보수는 없다고 봐요. 보수만 있달까? 진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생태계를 보호하는 사람이에요. 경제성장을 지지하면 보수예요. 이미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20세기 패러다임을 머릿속으로 답습하고 있는 거죠. 대화의 기본 베이스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법이 보수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근본 가치 때문이에요. 확확 바뀔 수 없는 가치 말이에요. 근본 가치 안에서 열린 대화를 나누는 게 지식사회 아닐까요? 우리는 그게 너무 약하죠. 스스로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고 타인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선택했고, 그래서 지금 행복해요.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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