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가 많지만 리유저블 컵도 갖고 싶어

지구에 무해한 인간이고 싶어 하나둘씩 실천했던 소비가 그린워싱 마케팅의 타깃이 되고야 말았다.


개념인간으로 살다 보니 오히려 불필요한 소비가 늘었다는 고민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마트, 온라인 쇼핑몰, 인스타그램 속에서 친환경, 비건, 리사이클링 소재, 리유저블 같은 단어가 적힌 물건을 발견할 때면 자연스레 시선이 머물고 지갑을 연다. 같은 값이면 환경에 좋은 것이 나에게도 이롭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디자인도 한몫한다. 매해 급변하는 더위와 추위, 멈추지 않는 폭우와 폭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미세먼지 문제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환경문제에 더욱 예민해졌다. 그리고 그 예민함은 물건을 살 때 되도록 지구에 영향을 덜 주는 것을 고르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모여 소비자의 니즈가 되고 기업에는 ESG 경영이 필수가 되었다. 지난 10월 <한경비즈니스>가 19~3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같은 값이라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한다’는 이가 86.2%에 달하고,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는 사람 역시 49.6%나 되었다. 바야흐로 ‘그린’은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 소재이며 브랜드, 공기업,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녹색 목소리와 제품, 서비스는 놓칠 수 없는 미끼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환경적이거나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들도 존재한다. 덜 유해하다는 미명 아래 더 많은 종이 빨대와 리유즈드 컵, 에코 백을 쓰도록 종용한다. 이쯤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몇 개 생긴다. 버리는 즉시 바로 생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문구는 사실일까? 그린 마케팅의 호갱으로 오히려 불필요한 물건을 사고 있진 않은가? 그린워싱으로부터 내 판단력은 얼마나 깨어 있는가?

필환경 시대의 그린워싱 인식 수준
올해만 해도 여러 브랜드가 그린워싱 이슈로 뭇매를 맞았다. 지난 9월 스타벅스의 글로벌 50주년을 기념한 ‘리유저블 컵 데이’가 대표적이다. 이벤트 당일 문밖까지 손님들로 긴 줄이 늘어섰고 음료 제조 대기 시간은 3시간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이벤트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소비자에게 불쾌한 의문을 남겼다. 리유저블 컵 역시 결국은 플라스틱이니 더 많은 플라스틱 소비에 열광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친환경 이벤트인가?’라는 물음은 패션업계로도 이어진다. “바다에서 건져낸 플라스틱 쓰레기, 어망으로 섬유를 만든다”는 광고 이면에는 거리낌이나 죄책감 없이 의류를 구입해 소비 주기를 단축시키는 SPA 브랜드의 마케팅이 숨어 있다. 폐플라스틱 원사로 만든 플리스 소재의 옷은 움직일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자연에 끊임없이 해를 끼친다고 알려졌다. 또한 한 캡슐커피 브랜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8톤에 달하는 알루미늄 용기를 사용하면서 지속가능한 알루미늄 사이클을 만들고자 여러 재활용 정책을 진행 중이라 홍보했지만, 정작 실제 알루미늄 용기 재활용률은 29%에 불과했다. 그린워싱은 이처럼 친환경을 내세우지만 실은 친환경이 아닌 마케팅 활동을 의미한다. 위장 환경주의, 위장 친환경, 녹색 거짓말 등으로 불리며 최근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현재 그린워싱을 판단하는 기준은 글로벌 친환경 컨설팅 회사인 테라초이스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른다. 테라초이스는 그린워싱을 7가지로 규정했는데, 친환경적인 일부 속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전체적인 환경 여파를 숨기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친환경성을 주장,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렵고 광범위한 용어를 사용하는 등의 행위 등이다. 그린워싱은 금융계까지 확장된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기업들이 발행한 녹색채권, 녹색펀드도 문제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지속가능한 금융 상품들이 알고 보면 그린워싱으로 만연하다”는 기사를 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ESG펀드 20개 중 6개가 미국 최대 정유 회사인 엑손에 투자했고 2곳은 아람코, 1곳은 중국 석탄 채굴 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국정감사에서 녹색채권이 탄소중립과 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나 기업의 그린워싱으로 악용되고,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발전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비와 투자, 모든 영역을 막론하고 무늬뿐인 친환경 비즈니스가 만연한 현실이다.

그린워싱에 대한 모호한 기준
정부 차원에서 단순히 문구 하나, 활동 하나로 그린워싱을 판단하고 규제하기 어렵다. 그린워싱은 너무 많은 이해관계와 사실, 파급 효과가 얽혀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더현대서울에서 뉴질랜드 세제 브랜드 에코스토어가 리필 스테이션을 열면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뉴질랜드 공식 환경 인증 마크와 7년 연속 자국 내 지속가능한 브랜드 1위로 꼽힌 에코스토어의 제품을 용기 없이 구입할 수 있다는 이점과 함께 세제가 수입되기까지의 탄소발자국이라는 아이러니가 뒤따랐기 때문. 친환경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려울뿐더러 그린워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관리·감독할 기관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몇 가지 지침으로 친환경성, 지속가능성 여부를 결정짓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복잡하다. EU는 지난해 그린워싱을 막기 위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대한 기준을 업종에 따라 정의하고 판별하는 ‘택소노미(Taxonomy)’ 초안을 발표했다. 이 분류 체계는 2022년부터 사용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오는 12월 환경부에서 ‘K-택소노미’ 최종안을 발표해 금융권에 시범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1983년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가 한 호텔의 가짜 친환경 마케팅을 비판하며 처음 제시했다. 30년이 흐른 지금 무늬만 그럴듯한 친환경 마케팅 대신 진짜 환경을 생각하는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왜 우리는 그린 마케팅에 현혹될까?
‘K-택소노미’처럼 가이드라인 없이 우리는 친환경적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걸까? 소셜미디어, 방송, 출판 등 다양한 미디어가 끊임없이 환경오염 문제를 이야기하는데도 우리의 선택은 왜 번번이 이율배반적일까? 작은 곤충마저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 음파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인간은 왜 직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답은 인간과 자연의 연결고리가 끊겼기 때문이라는 신선한 접근도 눈길을 끈다. 책 «리얼리티 버블»에서 작가 지야 통은 “우리는 종종 눈앞에 빤히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부엌 조리대에 올려둔 열쇠를 찾아 사방팔방 뒤지고 다닌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중략) 현대인은 거품 속에서 자연을 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국에서 청소년 세 명 가운데 하나는 달걀이 닭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치즈를 식물에서 얻는다고 믿으며, 우유가 젖소에게서 온다는 것을 모른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음식이 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슈퍼마켓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물건의 자연 혹은 화학적 성분에 무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이상 우리는 채집해서 끼니를 때우지 않고 손수 물건을 만들지도 않는다. 또 땅을 딛고 흙의 생김을 발로 느끼는 대신 차로 학교와 사무실, 집을 오가며 시간을 아낀다. 아니, 이미 도로는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문제의 시작점인 지구,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거품이 있다. 지야 통은 “21세기에 우리는 온갖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지만, 우리가 식량을 얻는 곳, 쓰레기를 보내는 곳은 예외다. 지구상 가장 막강한 생명체가 자기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건 어찌된 영문”이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친환경 마크, 문구에 현혹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구와 나, 가족 모두가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건재한데, 우리는 모호한 거품 속에 산다. 그리고 친환경 마크, 문구는 거품 속에서 유일하게 또렷하게 떠오르는 메시지다. 그린워싱에 속아 무분별한 소비를 했다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대신 끊임없이 고민하고 관심을 쏟아야 한다. 실수하고 포기하고 좌절을 반복하더라도.

모일수록, 멈출수록 힘이 생긴다
결국 모든 것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친환경 마크, 카피에 현혹되지 말고 여력이 닿는 한 제품 성분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친환경 제품’이란 마크 하나에 샴푸에서 괜스레 은은한 허브 향이 나는 듯하지만 이는 인식에 따른 감각의 오류다. 샴푸가 인공 향을 가미한 공산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바쁘디바쁜 현대사회에서 모든 제품의 성분과 브랜드의 행보를 리서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땐 친환경 제품을 큐레이팅해 판매하는 플랫폼이나 제로 웨이스트, 비건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제품군마다 더욱 꼼꼼히 봐야 하는 성분이나 그린워싱 마케팅 이슈 등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뿐더러 플랫폼이나 커뮤니티, 즉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의견과 소비 경험을 나누는 ‘장소’에도 힘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 친환경성의 기준을 높일수록 정부, 기업 등의 그린워싱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집단지성이 그린워싱을 걸러내는 거름망이 되어줄 것이다. 관심과 진보는 친환경 소재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성분에 대한 설명은 더욱 친절해져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전제는 불필요한 소비의 멈춤이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꽂혀 고통에 발버둥치는 거북이 영상으로 인해 전 세계가 종이 빨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종이 빨대는 친환경적일까’라는 질문조차 생략된 채. 상대적으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종이를 얻기 위한 벌목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종이 빨대를 소각하면서 생겨나는 매연에 대해서도 깊이 고려하지 못했다.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바이오 플라스틱처럼 대체재도 등장하고 있지만 강도가 약해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소비자가 불편하다, 불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낼 때 정부와 기업은 변할 것이고 지구는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나의 수고를 알아채고 보답하듯이.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정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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