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목공소의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할아버지 공방을 놀이터쯤으로 여기던 꼬마는 커서 바닷가 마을에 목공소를 차렸다. 어떠한 연고도 없이 서핑으로 시작한 제2의 인생은 우연이었을까, 기회였을까.


웨이브우드
이동근

국내에서 서핑이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에 따른 서핑 문화 역시 성숙하게 발전해나가는 중이다. 서핑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갈래의 아이템 중 비주류에 속하는 나무 서프보드는 아직 기초 단계를 밟는 중이기에 서프보드를 제작하는 사람들 또한 소수에 불과하다. 이동근 대표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과 나무를 모두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보드를 만드는 전문가조차 귀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가 의존할 것은 해외 자료 뿐이었다. 마치 수많은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서퍼처럼 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이동근 대표만의 기술은 마침내 보드 위에서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 두 다리와 같다.

처음에는 양양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들었어요.
서울을 떠나 처음 자리 잡은 곳이 양양이었죠. 컨테이너 두 동을 붙여 작업실로 이용했어요. 규모가 작다 보니 작업에도 한계가 있고 계속 늘어나는 짐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혼자만 사용한다면 충분한 공간이었는데 수강생도 늘고 기계도 많아지면서 강릉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죠.

많은 도시 중 강릉으로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렵사리 대도시에서 벗어나 겨우 양양으로 왔는데 도시인 강릉으로 다시 나가야 한다니 걱정이 많긴 했어요. 그런데 사실 강릉은 잘 알려진 관광지나 시내만 복잡하지 바닷가나 동네는 아직 한적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지금 이곳 초당동도 핫해지는 것 같더니 뭘 지으려고 땅을 파면 자꾸 유물이 나와서 개발이 어렵다고 해요. 이렇게 저렇게 옛날 모습을 유지하게 돼서 개인적으로는 좋더라고요.

강원도에 오기 전에도 나무 다루는 일을 했나요?
서울에서는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전시나 국제회의, 컨퍼런스 등을 주최하는 일을 했어요. 주말도 없이 일만 했죠. 그러다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 싫은 주말에 혼자 다른 동네에 가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양양까지 오게 됐고요. 그때 서핑을 처음 접하게 되어 주말이면 양양에 와서 서핑도 하고 일도 하는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가 문득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거예요. 일이 삶의 전부였는데 꼭 잡아쥐면 금세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느낌이었어요. 행사장에서 무언가를 짓고 부수는 일이 어느 순간 무의미해지더라고요. 바닷가로 이주하는 서퍼들은 대개 서핑 숍으로 시작하죠.

나무 보드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서핑 숍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숍을 운영할 만큼 서핑을 잘하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바다에 널려 있는 보드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거예요. 서핑을 더 잘하기 위해선 보드의 성질을 파악해야겠다 싶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목수라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낯설지 않았어요. 그래서 보드를 만드는 분들을 찾아가 배우고 따라 하기도 하며 나무 보드 제작을 시작하게 됐죠.

나무 서프보드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요?
처음 서핑 교육을 할 때 이런 말들을 해요. 자연을 올바르게 즐겨야 한다고. 그런데 정작 흔히 타는 서프보드는 스티로폼으로 제작해 자연 분해가 되지 않아요. 파도를 타다가 보드가 파손되는 일이 왕왕 있는데 거친 파도를 헤치고 부서진 보드를 잡지 못하면 바로 해양 쓰레기가 되고요. 반면 나무는 자연 소재다 보니 자연적으로 분해가 되고 여러모로 서핑이라는 스포츠 정신에 배반되지 않더군요. 사실 서핑의 시초는 버려진 나무판자나 빨래판을 타고 노는 거였어요.

올해 5월, 더 큰 공간을 찾아 강릉으로 이사 온 이동근 대표는 나무 서프보드뿐 아니라 일상을 동반하는 가구를 선보일 계획이다.

일반 보드와 나무로 만든 보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용도와 기능에 따라 달라요. 에폭시로 만든 보드는 퍼포먼스를 내기 좋아요. 그렇다고 나무 서프보드가 기능성이 떨어지진 않아요. 오히려 내부가 비어 있는 구조라 부력도 높고요. 그런데 에폭시 보드에 비해 무겁고 가격이 비싸긴 하죠. 아무래도 만드는 공정과 기간, 전문성이 더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나무 서프보드에 대한 수요는 어떠한가요?
2019년에 처음 공방을 열었을 때는 수요가 거의 없었어요. 저처럼 나무 보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던 분들이 찾아오긴 했는데 그 수가 매우 적었죠. 올해부터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수강생이 늘어났더라고요. 저는 주문 제작보다는 직접 와서 만들어보라고 권하곤 해요. 보드를 내 손으로 만들다 보면 서핑과 파도에 대한 이해가 생겨요. 보드를 만드는 일도 서핑 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파도가 없는 날엔 서핑을 할 수 없으니까 보드를 만지작거리며 서핑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가는 거죠.

나무 서프보드를 만드는 기술을 어떻게 습득했나요?
당시 나무로 서프보드를 만드는 분이 별로 없었어요. 제주도와 경상남도 경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죠. 그렇게 기술을 익히기에는 사실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외국 셰이퍼(Shaper)들의 서프 보드 이미지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적용하는 작업을 주로 했어요.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이 서프보드를 만들어왔지만 한편으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방법들이 더 소중한 가치를 만들잖아요. 세상에 없는 서프보드를 만든다는 성취감도 엄청나고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일단 나무를 잘 다루려면 물성을 잘 파악해야 해요. 나무도 다 똑같은 게 아니라 만들려는 모양에 따라 결을 쓰는 방법도, 결구하는 방식도 다르거든요.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죠. 이렇게 나무의 성질을 거르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쓰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요.

귀촌을 망설이고 있는 분들, 혹은 결심한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면적으로 좋은 모습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개 이런 곳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의 성향은 다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성향과 취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좋은 점이 더 많을 거예요.

원 지역에 유입되는 청년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봤어요. 강릉은 청년들이 이주해서 살기 좋은 동네인가요?
자연환경은 정말 좋지만, 부족한 일자리는 현실적인 문제죠. 관광 도시다 보니 성수기, 비성수기에 따라 일하는 기간도 한정돼 있고요. 그래서 강원 지역은 지자체에서 창업자나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요. 저 역시 그 수혜자이기도 하고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들을 만나 함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웨이브우드가 조금 더 자리를 잡으면 저와 뜻이 맞는 사람들에게 시설과 환경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그렇게 저도 도움을 받아 강릉에 잘 정착할 수 있었고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강릉에 목공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예전에는 보드 만드는 비중이 더 컸다면 이제는 가구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요.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고 사람들이 집에만 있다 보니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가구나 생활용품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죠. 자연스럽게 서프보드가 아니더라도 가구를 만들기 위해 오는 수강생들도 많아졌어요. 강릉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충분하겠지만 가구를 함께 만들면서 전체적으로 삶의 질이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질 좋은 가구를 내 손을 직접 만드는 것에서 삶의 행복이 시작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아트 퍼니처 작품 전시회를 열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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