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영화 <재심>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배우 정우가 연기한 동명의 실제 인물인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전문 변호사다. 세 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에서 낡은 구두를 신고 일하고 있는 그는 영화 속 정우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재심>의 시작              

SBS 기자가 저에게 10년도 넘은 약촌오거리 사건의 재심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지상파 방송에 나가면 유명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 선뜻 승낙했죠. 그런데 사건을 맡아 진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제가 조금씩 달라졌어요. 이번에 영화를 보니 오래 전의 감정이 샘솟더군요. 사건 당시엔 속물적인 마음으로 접근한 것에 대해 최군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못했는데, 영화를 본 후에야 비로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장의사를 운영하셨거든요. 사람 죽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린 마음에 그렇게 기뻤어요. 물건을 파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 직업도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아주 다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점에선 같죠. 남의 불행에 대해 그간 얼마나 공감하고 배려하고 살았는지 곱씹어보게 됐어요.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된 이유

완도 노화도 출신인 제 어린 시절 환경은 굉장히 가난했어요. 중학교에 수석 입학할 정도로 명석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졸업도 포기한 채 경기도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죠. 그러다 내 처지를 바꿀 수 있는 길은 사법고시 패스뿐이라는 생각에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고, 독학으로 사시를 패스하고는 인생 2막이 시작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어요.

하지만 학연도 지연도 없는 저는 결국 국선변호사가 되었고, 남들이 피하는 사건을 맡아야 능력을 인정받고 유명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재심사건을 맡았습니다. 그 이후 ‘어쩌다보니’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된 것이죠. 변론을 맡은 사람들 대부분 처지가 어려운지라 사비를 쓰기 일쑤였고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어요. 이런 제 처지가 공개되면서 지난 8월에는 스토리펀딩으로 무려 5억여원의 성금이 모이기도 했어요. 정말 감사하죠.

변호사 박준영을 뒤바꾼 사건

탈북자 간첩 사건을 맡으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북한에 가족까지 두고 온 어려운 사람이 간첩으로 몰리는 이중고를 겪는 광경을 보면서 나도 싸워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제 삶을 내려놓은 후부터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 시작했어요. 1억이 금세 빠지더군요. 하지만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드니까, 돈은 한낱 부속품처럼 여겨졌어요. 사실 동기들 중에 잘사는 이들도 많지만 전혀 부럽지 않아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도 않더라고요. 전 제 삶이 만족스러워요.

재심 전문 변호사로서의 삶

약촌오거리 사건 이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부터 수원 노숙소녀 살해사건 등 굵직한 재심 사건을 연달아 맡았어요. 많은 사건을 변론하다보니 말 못할 고충도 뒤따랐죠. 오래 전의 자료를 수집하러 지방 출장을 수시로 다녔고, 혹시 모를 위협이 두려워 가족 얼굴이나 집주소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건 억울한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죠. 법적인 변호뿐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케어까지 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이 법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재심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다 죄인 취급해도 하늘만 알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죠. 한 사람의 삶뿐 아니라 주변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게 재심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아내, 그리고 가족

연수원 시절 인생역전을 꿈꾸며 선도 많이 봤어요. 마담뚜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도 빗발쳤죠. 하지만 친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새어머니에 이복동생까지 있는 가난한 시골 총각인 내 처지를 이해해주는 여성은 찾기 힘들었어요. 연수원을 졸업할 무렵,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어머니 직장 동료의 딸을 소개 받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에요.

아내 역시 돌 사진이 없을 정도로 어렵게 자랐어요. 생일날 미역국 끓일 때 고기 대신 닭발을 얻어다 끓여 먹었다더군요. 우리 부부는 애당초 어렵게 시작했으니, 지금 이렇게 잘 버틸 수 있어요. 잘살다 어려워지면 견디기 힘들겠지만, 처음부터 어렵게 살았으니 버틸 만한 거죠. 솔직히 아내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죠.

현 대한민국 풍토에서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비결

결국 세상은 함께 사는 거죠. 돈과 사회적 지위를 우선하면서는 절대 함께 살 수 없어요. 전 자존감을 굉장히 중시하거든요. 자신의 존재가치를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사’자가 되기를 바란다지만,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요즘 보면 잘나가던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잖아요. 이런 삶보다는 자존감을 지키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닌가 싶어요. 기성세대가 밖에서는 정의를 외치면서 내 자식에겐 판검사 되라고 강요한다면 그것만큼 모순이 없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하고, 불의를 보면 침묵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법조인이 많이 늘었어요. 법률 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순작용도 있지만, 법 외적인 수단을 통해 해결 가능한 일들까지 변호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분쟁화하는 부작용도 생겼죠. 소송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어요. 누굴 만나든 항상 주의하고, 말 한 마디도 녹음을 하니 인간관계를 경계해야 하잖아요. 저는 법조인들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해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나, 맡지 않아도 되는 사건을 맡는 것은 아닌지요.

박준영 변호사가 꿈꾸는 세상

요즘은 부산과 충주, 포천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4건의 재심을 준비하고 있어요.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고 그들이 사회에서 다시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찾아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형사사건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얼굴을 마주하기조차 힘들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제가 풀어드릴 수 있다면 그보다 큰 기쁨이 없을 것 같네요. 모든 사람이 웃을 순 없겠지만 억울하게 눈물 흘리며 고통 받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세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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