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없던 도슨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도슨트는 전문직이 아닌, 자원봉사자나 전시 스태프의 영역이라 치부되었다. 정우철은 그런 도슨트를 티켓 파워까지 좌우하는 자리로 만들었다.

“전시 해설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더라고요.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런 인사는 어색해요. 저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거든요. 영상 편집을 하는 직장인으로 일하다가 퇴사를 했어요. 방황도 길었고요. 이제야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우울증약도 복용할 만큼 힘들었거든요. 되돌아보면 신분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학생, 군인, 직장인처럼 규정된 아이덴티티가 있었거든요. 정신을 차리고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별별일을 다 했어요. 경복궁에서 행사 알바도 하고 드라마 단역도 했고요. 폐기물을 처리하는 막노동도 했죠. 집에서 제 생계를 책임져줄 여력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전시 스태프로 일하면서 도슨트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정해진 시간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을 몰고 다니면서 작품을 해설해주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웃기게도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생각했어요. 참 건방진 판단이지만, 그들이 너무 대충 했거든요. A4 용지에 스크립트를 뽑아와서 읽었어요. 그렇게 다음 전시 스태프로 면접을 봤는데, 운이 좋게도 제 앞의 도슨트 면접자가 펑크를 냈어요. 담당자분이 “혹시 도슨트도 겸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래도 남들 앞에 갑작스레 서기는 쉽지 않잖아요?”
저는 MBTI도 INFP예요. 엄청 내향적인 사람이죠. 도슨트가 멋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름대로 혼자 미술 공부를 했어요. 무척 떨렸는데 전시 기획사에서 짧게 해도, 까먹어도 괜찮다며 다독여주셨어요. 첫 관객인 모녀에게 딱 18분 동안 해설했어요. 그래도 너무 재밌게 들어주시더라고요. 그 희열이 컸어요. 제가 도슨트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도슨트 페이가 없었어요. 스태프의 추가 업무였을 뿐이죠. 지금도 기억해요. 하루 세 번 도슨트 일을 하고 주 6일 근무를 해도 통장에 찍히는 돈이 105만원이었어요. 열정페이였죠. 근데 본능적으로 ‘지금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개인 SNS 계정을 만들고 해설 일기를 썼어요. 또 해시태그 검색으로 전시에 방문한 분들의 피드에 들어가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겼죠. 도슨트 선배, 롤모델이 없으니까 되는 대로 열심히 했어요.

“전시가 끝난 뒤에 그만큼 열정을 다했다면, 전시 해설에는 더 열심이었겠어요.”
당시 제가 다른 전시 해설을 듣다 기분이 상해서 나온 적이 있어요. 도슨트가 가르치는 듯한 태도로 불친절하게 해설했거든요. 심지어 앞에 어르신이 계시는데도요. 그때 결심했어요. 무조건 쉽게, 재밌게 하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용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아요. 지식 자랑하는 일은 아니니까. 또 해설을 앞두고 공부할 때 전문적인 책을 읽고 그다음에 초등학생 미술책을 봐요. 이게 엄청나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는 ‘관람객과 화가의 소개팅 주선자다’라고 늘 말하고 시작해요. 물론 저의 이런 해설을 싫어하는 분도 많죠. 그래도 화가의 이야기로 최대한 쉽게 구성하려고 해요. 베르나르 뷔페 전시를 해설할 당시에는 매 타임 우는 분들이 있었어요. 화가의 삶이 녹록지 않았거든요. 그의 살아온 이야기, 작품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거죠. 그럴 때마다 그림의 힘을 느껴요.

“지금까지 수많은 전시를 해설했죠. 가장 인상 깊은 전시를 꼽자면요.”
베르나르 뷔페 전시예요. 에바 알머슨 전시를 해설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는 작가라 30만 명이 왔어요. 그때 저는 반대로 ‘아무리 봐도 이 전시는 해설이 필요 없다’고 느꼈어요. 작품의 전율이 그대로 해석되는 전시들이 있어요. 하지만 베르나르 뷔페는 그런 작가가 아니죠. 저는 그 전시에 제 사활을 걸었어요. 기획사에서 준 자료로는 부족해서 작가의 뮤지엄이 있는 일본에 갔죠. 그곳에서 일본어로 된 책을 바리바리 사 들고 와서 휴대폰 사진 번역기로 대충 내용을 이해하고, 중요한 부분은 사비로 번역을 맡겼어요. 농담이 아니고 그 대본을 완성하고 나니까 돈이 다 떨어지더라고요. 제 모든 걸 걸었던 셈이죠. 첫날은 10명 그리고 그다음 날은 40여 명으로 늘어나는 관람객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나중에는 전시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어요. 저만 이동할 수 있게 길을 터주시고 사람들은 소리만 듣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야말로 갓생을 살았네요.”
맞아요. 사실 중간에 포기했을 법도 한데, 퇴사 후 바닥을 한번 치고 나니까 애당초 돈을 많이 벌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몰입했어요. 거창한 목표가 없이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자’는 생각뿐이거든요. 지난 10월부터 최근까지 일이 너무 많아서 매일 새벽 3시 넘어 잤어요. 주위에서 책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하니까 전시 해설을 줄일 거라고 예상하세요. 저는 그럴 생각이 없어요. 이게 제 뿌리고 그 나머지는 그 뿌리에서 파생되는 것들이니까요.

Contributing Editor 유승현, 김희성
Photographer 박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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