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도가의 이야기

‘막걸리계의 돔페리뇽’ ‘막걸리계의 아이돌’ 등 수식어가 꽤 화려하지만, 사실 복순도가는 3대째 묵묵히 술을 빚고 있는 유서 깊은 술도가다. 김민규 대표는 선대부터 이어져오는 방식을 지켜가는 동시에 다양한 세대를 포용하며 지금의 복순도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끝없이 펼쳐진 논과 ‘영남 알프스’라고 불릴 만큼 웅장한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등 1000m 높이의 7개 산군이 멀리 보이는 곳에 복순도가 양조장이 있다. 울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복순도가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니 기사님은 기다렸다는 듯 “거기 코로나19 전에는 일본 사람도 많이 왔어요. 술맛이 좋지”라며 말을 잇는다. “울산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술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요. 울산에 공장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밖을 봐요. 여기 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기사님의 동네 자랑은 계속됐다. 복순도가 방문으로 여행을 시작한다는 전주에서 온 가족부터 여행하는 동안 마실 거라면서 막걸리를 열 병이나 사 들고 가는 주당 커플까지. 복순도가는 어느덧 울산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복순도가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집안 대대로 전해져온 비법으로 만든 막걸리를 ‘복순도가’라는 브랜드로 세상에 출시한 것이 2010년입니다. 샴페인 같은 막걸리로 이름을 알리면서 지금에 이르렀고요. 집안의 전통 방식으로 빚어 마을 어르신들께 대접했던 가양주 형식의 막걸리를 지역 특색을 살리고 자체적으로 브랜드화했어요. 어머니의 성함인 ‘복순’과 도시 도(都), 집 가(家)를 써서 복순도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원래 술 빚는 집안을 일컫는 ‘도가’에서 ‘도’는 질그릇 도(陶)를 쓰는데, 저는 ‘도시 도’자를 썼어요.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뜻을 담고 싶었거든요.

로컬을 강조한 이유는요?
오래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에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그 가치를 들여다보고 재해석하고 싶었습니다. 양조장을 지을 때도 처음에는 어디에다가 어떻게 의뢰해야 할지 막막했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공사하는 현장을 보고, 직접 이야기하면서 추천도 받고, 그러면서 양조장 건물을 완성했고요. 그 과정을 통해 지역을 많이 알게 됐죠. 크면서 논은 지겹도록 봤지만 실제 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혀 몰랐던 거예요. 그러다 어르신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직접 보고 얘기를 들으면서 농부에게 대지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고 나니 주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농부에게논은 정서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어요. 한 해 농사를 끝내고 나면 추수 뒤에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논에 불을 지르는 ‘화농’을 하는데, 정부에서는 산불의 원인이 된다고 금지해요. 하지만 일부 어르신들은 일종의 의식처럼 화농을 하기도 해요. 복순도가 양조장에도 화농의 잔재가 남아 있죠.

복순도가와 화농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요?
양조장 건물이 검은색인 이유는 화농 후 남은 재를 칠했기 때문이에요. 재를 칠하고 한 달 정도 그대로 두었어요. 시간의 흐름도 담고 싶었죠. 막걸리는 쌀에서 오고, 쌀은 논에서 온다는 당연한 원리를 정서적으로 공간 곳곳에 표현한 셈이기도 해요.

 

줄곧 말해오던 발효 건축의 개념과도 같나요?
결국 같은 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발효의 의미를 굉장히 넓게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니 마음도 삭히봐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정확하게 의미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잘 영글 수 있도록 해보라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발효 건축도 그런 맥락입니다. 원래 있던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발효 건축에 대해 말하면 다른 나라 학생들이 ‘김치 냄새가 나는 건축이냐’며 비아냥거리던 기억이 나네요. 단순히 발효나 양조를 하기 좋은 건물을 만드는 것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한 발효 건축은 다릅니다. 지역성을 바탕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대지를 발효시키고, 사람을 발효하는 그런 넓은 의미예요. 지금 보이는 대지, 지역을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발효 건축입니다.

복순도가는 여행지인 동시에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기도 한 것 같아요. 발효 건축 효과일까요?
물론 양조장이라는 건물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공동체적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 외에도 주변의 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해요. 벌써 오래전부터 농촌은 남아도는 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죠. 복순도가의 술은 고맙게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고, 덕분에 우리가 점점 많은 쌀을 매입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발효 건축의 일례가 아닐까요? 사실 부패와 발효는 한 끗 차이입니다. 사람에게 유익하게 바뀌고 있는 이곳은 발효 건축의 좋은 예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고요.

복순도가는 전통 방식 그대로 재래 누룩을 사용한다. 양조장 근처에 가면 메주 향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멸균 처리를 할 수 없어 맛을 컨트롤 하기 매우 힘들지만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울산과 복순도가는 이제 떼어놓을 수 없는 유기체인 것 같습니다.
지역성, 지역 기반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요. 많은 사람이 울산을 공업 도시로만 인식하는 것이 안타깝죠. 복순도가 양조장이 자리한 이곳만 봐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합니다. 전체 면적에 비하면 공업단지는 아주 일부이고, 나머지는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는데 알려지지 않아 아쉬워요. 저희가 직접 제작해 양조장에 비치한 브로셔에는 조금 더 나은 울산 여행을 위한 안내가 실려 있습니다. 비단 울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이 전반적으로 좋은 환경을 어필하는 데 조금 부족한 듯싶어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찾아가는 양조장’을 시작한 것도 결국 이 같은 아쉬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복순도가는 전통주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어요. 핵안보정상회의에 공식 만찬주로 올라가고, 청와대에 들어가는 술로도 이름을 알렸죠.
복순도가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는 자부심도 느껴요. 복순도가는 최근까지도 ‘아트 부산’에 참여하는 등 주류 페어나 푸드 페어 외에도 국내외 아트 페어, 디자인 페어 같은 다양한 분야의 행사에 참여해왔습니다. 2021년에는 신세계에서 운영하는 콘셉트 스토어 케이스스터디와 손잡고 한정판 체리블라섬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죠. 전통주, 막걸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스며들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순도가를 모방하는 브랜드도 많이 나왔지만 결국 전통주 시장의 파이가 커진 것이라 생각해요. 전통주 시장 자체가 커져야 전통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함께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복순도가 양조장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결국 제품력이죠. 제품이 안 좋으면 마케팅을 해봐야 효과가 오래 못 갈 테니까요. 복순도가 생막걸리는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어요. 항아리도 전부 만든 지 50~70년 되었고요. 지금도 항아리를 만드는 곳은 많지만 옛날 제조 방식을 고수하는 곳은 없어서 아주 어렵게 구했죠. 유약을 바르지 않은 항아리는 씻어서 말린 뒤 볏짚을 넣고 태워서 소독해야 합니다. 공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업이죠. 할머니의 주조법과 직접 만든 누룩 역시 우리 술의 기본이 되어주고 있어요. 처음부터 프리미엄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만들다 보니 어느덧 프리미엄 막걸리가 되었습니다.

부산의 F1963, 서울 노들섬의 뮤직 라운지: 류는 단순한 시음 공간이 아닙니다.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되었나요?
부산의 F1963은 발효 문화를 레스토랑으로 처음 실현한 곳입니다. 2017년 6월, 고려제강 F1963 재생 건축의 일환으로 폐공장 안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오픈했어요. 도가에서 만든 장을 써서 정성과 맛을 담아낸 음식들을 복순도가 전통주와 곁들여 즐길 수 있죠. 곳곳에서 술을 빚는 데 사용하는 소품을 보는 재미가 있고, 주말에는 막걸리 체험 클래스도 진행해요. 노들섬 뮤직 라운지: 류는 음악과 전시가 어우러진 노들섬 속 일상 음악 공간입니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해 전시와 공연을 진행하면서 공간 마케팅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어요. F&B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복순도가의 정직한 폰트와 세척 후 말리고 있는 중인 항아리, 화농 후 나온 재를 건물 외관에 입혀 발효 건축의 상징성과 지역성을 더한 양조장 외관까지 복순도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고, 일관성 있다.

앞으로 복순도가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하고 싶은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발효 건축을 적용한 건축물을 다른 지역에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게 꼭 양조장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와이너리는 확장성이 매우 크죠. 와이너리 리조트도 있고, 타운 전체가 와이너리가 되는 경우도 있어요. 지역 전체를 살릴 수 있는 산업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발효 문화를 더욱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복순도가의 전통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추천해주세요.
어떤 술은 꼭 어떤 안주와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없애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막걸리는 김치와 치즈 같은 발효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막걸리가 한국 전통주이기 때문에 꼭 한식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게 다르니 다양한 음식에 도전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안주도 좋지만 자신만의 안주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Contributing Editor 류창희
Photographer 박순애

46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