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철학하는 고양이

나는 선택받은 집사, 너는 내게로 온 우주,
진중권의 고양이 중심주의 선언!
어느 날 고양이가 그에게로 갔다. 허공을 향한 눈동자는 철학자의 사색을 품고 홀로 당당한 몸짓은 결국 혼자여야 하는 존재의 운명을 재현한다. 까칠한 듯 가식 없는 사랑은 진짜의 냄새를 풍기고 완벽히 동화된 적 없는 아웃사이더의 숙명은 예술가들의 심미안을 훔친다. 어느 날 고양이는 그에게로 가서 무심히 전한다. 인간들이여, 가서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문학, 우리의 철학을 만나라. 그 안에 당신들이 나아갈 길, 존재의 비밀이 담겨 있으니.

미학자 진중권의 고양이 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제가 고양이 책을 냈다니까 어느 기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하던데, 고양이를 기르는 먹물들의 예상 가능한 행보 같아요. 우석훈 선생님은 DSLR을 사서 고양이 사진을 찍고 그걸로 화보도 만들었잖아요. 저는 고양이가 철학적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눈을 보면 뭔가 나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자연스레 궁금증도 생기더라고요. 저는 인문학자이다보니 고양이의 역사와 철학, 문학 이런 것들을 파고들게 됐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고양이의 인문학으로 책의 방향을 잡은 거군요.
우리나라 서점가의 고양이 책은 대개 “우리 고양이는 예뻐요” 식의 화보나 어떻게 키우는지에 관한 실용서들 위주예요. 외국도 고양이와 관련한 개별 논의들은 많지만 이를 포괄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드물고요. 중간이 비어 있는 셈이죠. 역사와 문학, 철학을 하나로 묶는 작업, 처음부터 거길 파고들었어요. 작년 3월부터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본격 집필은 8월부터 시작해서 11월쯤에 완성했어요.

책 제목에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연상되는데요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동물권리에 관한 강연을 보게 되었어요. 제목이 우리말로 ‘고로 내가 그것인 바 곧 동물’ 정도였는데, 여기에 데카르트의 느낌을 집어넣어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책 제목으로 정했어요. 부제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T.S 엘리어트의 동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살짝 패러디했어요. 뮤지컬 <캣츠>의 대본으로 사용된 책으로도 유명하죠.

고양이 루비의 집사죠? 루비와의 첫만남은 어땠나요
루비는 비 오는 날 집 근처에서 데려온 길냥이예요. 비에 젖어 추위에 떠는 걸 보고 안쓰러워서 잠시만 보호하고 있어야겠다 싶어 데리고 왔고 한 3일은 그냥 지냈어요. 그런데 얘가 계속 설사를 하는 거예요. 어쩔 줄 몰라 트위터에 사정을 올렸더니 난리가 났어요. RT가 1500개씩 달리더라고요. 그 뒤로 젖먹이는 법부터 물어가며 고양이를 돌봤는데, 이러다가 딴 집에 보내면 제가 욕먹을 거 같더라고요. 하하. 원룸 사는 형편이라 고민도 했지만 결국 끌어안게 됐어요. 돌아오는 5월이면 루비의 집사가 된 지도 4년이네요. 처음 만났을 때 병원에서 루비가 생후 3주 정도 됐다고 했으니까 루비도 이제 네 살이고요.

고양이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루비가 처음이었나요
그전에는 길냥이들 밥만 좀 줬어요. 예전에 3개월 정도 출판사 건물에 산 적이 있는데 단독주택이었어요. 매일 아침 찾아오는 녀석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근처 구멍가게에서 참치캔을 사다줬어요. 나 혼자 이름을 뒤샹이라 지었는데, 10시만 되면 나타나서 캔 한 통을 다 비우고 돌아가곤 했죠. 만지는 것도 허락 안 하는 녀석이었지만 한 번씩 제 다리에 몸을 쓱쓱 비비고는 했어요. 필리핀에서 어학원에 다닐 땐 마르셸이라고 배에 혹이 난 고양이가 있었어요. 악성 종양은 아닌데 수술비가 너무 비싸 엄두는 못 내고 매일 통조림을 줬어요. 뒤샹과는 달리 안기기도 잘 하고 방까지 따라오기도 하던 개냥이였는데 나중에 들으니 어학원에서 일하던 필리핀 사람에게 입양되어 잘 지낸다고 하더군요.

 

책에 등장한 페르시아 고양이 탄생설화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유일하게 페르시아 사람들만 고양이 창조신화를 갖고 있어요. 책에 소개한 것은 이란계 미국인이 자기 조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영어로 쓴 것인데 마법사가 모닥불의 연기와 불길, 하늘의 별을 모은 다음 숨을 불어 넣어 고양이를 만들죠. 잿빛 연기는 고양이의 털, 불길은 혀, 별은 눈이 됩니다. 이 고양이 창세기는 그 자체로 고양이의 매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참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고양이 학대 역사도 참으로 오래죠. 요즘도 간간이 뉴스에 등장하지만요
알려진 것과 달리 고양이 학대는 중세가 아닌 근대의 일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는 인식, 다르게 말해 동물의 권위가 격하되는 시대 분위기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중세적 틀이 결합한 결과죠. 고양이 학대가 사회적·조직적으로 행해지곤 했는데 18세기 들어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면서 동물학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서구에서도 고양이의 목을 잘라 공동묘지에 갖다 놓는 사탄숭배자들이 있었죠.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소시오패스로 볼 수 있어요. 사회에서 받은 억압 같은 것들을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동물들에게 투사해서 풀어내는 거죠.

요즘은 덜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개와는 달리 고양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들이 있었는데, 이유는 뭘까요
고양이는 개와 달리 삐딱하잖아요. 완벽하게 동화되지 않는 존재,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동물이기도 하고요. 여기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우리나라 역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서너 배는 될 거예요. 사람도 기질에 따라 이른바 캣 퍼슨(Cat Person), 도그 퍼슨(Dog Person)이 있잖아요. 옛날부터 사회에선 도그 퍼슨을 더 선호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만큼 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건 아니더라고요. 자료를 찾다보니 의외로 긍정적인 기술들이 많이 나와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영조는 고양이 가죽이 아픈 팔에 효험이 있을 거라는 말에 “일찍이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궁궐 담장 사이를 왕래하는 것을 보았는데 차마 그 가죽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 쓰지는 못하겠다”고 하죠.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동물보호론자예요.

고양이와 꽤 친숙한 나라라고 여겼던 일본에는 오히려 괴물 고양이 네코마타, 변신 고양이 바케네코 등 고양이에 관한 기담들이 많더군요
일본인들이 옛날부터 고양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고양이가 괴물이나 요물로 등장하는 기담이 성행했죠. 일본에 왜 그렇게 고양이 기담이 많을까 생각해봤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잦은 전쟁으로 인해 자고 일어나면 주인이 바뀌고 역사가 달라지고 정의가 뒤집히는 부조리한 상황에서는 보편적인 도덕률이 작동하지 않죠. 그런 불안감들이 고양이 기담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고양이의 이미지가 바뀐 것은 법이라는 안정적인 장치로 국가를 통치하기 시작한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서예요. 무사가 아닌 상인계급 조닌이 힘을 발휘하던 메이지 시대의 고양이는 자본의 화신 마네키네코로 대변되죠. 상점이나 식당, 술집마다 손님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귀여운 고양이 말이죠. 그런데 이 마네키네코가 또 꼬리가 잘린 ‘재패니스 밥 테일’이에요. 고양이 특유의 야생성·독립성· 타자성을 상실한, 한마디로 자존심이 거세된 존재인데 저는 이 부분이 국가에 한마디 저항도 못하는 오늘의 일본인을 닮은 것 같아요. 몇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촛불 시위를 하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죠.

요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가 점차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이젠 캣 퍼슨들이 평가받는 시대죠. 실제로 미국에서 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가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바람직한 인간상이 변했다는 거였어요. 과거에는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선호했다면 이제 삐딱하고 자기 독립성을 가진, 개성 강한 사람들이 주목받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거죠. 그 결과 반려동물 키우는 취향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본 거예요. 우리나라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독립성과 자립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어요.

고양이의 기질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죠. 시인들, 보헤미안들, 아웃사이더들이요
네. 19세기 말이 되면 고양이 이미지가 확 달라져요. 외롭고 고독한 반항자들, 사회 속에 살면서 절대 동화되지 않는 예술인들, 보헤미안들, 모더니스트들이 열렬한 고양이 예찬론자가 되죠. 재미있는 건 고양이랑 개를 같이 키우는 사람들은 도그 퍼슨이에요. 캣 퍼슨들은 개를 같이 키우지 못해요. 고양이는 하루 종일 있어도 저 혼자 놀거든요. 가끔 와서 아는 척하고 안기는 정도라 이게 편하고 여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개를 상대하기가 버겁죠. 100퍼센트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그런 면이 있어요. 대선주자들 중 문재인씨는 양산 집에서 고양이 찡찡이와 풍산개인 마루, 둘 다 키우는 도그 퍼슨이에요. 지금은 부인과 함께 집을 자주 비우다보니 딸집에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반면 안희정씨는 고양이만 키우는 캣 퍼슨이에요.

 

 

고양이의 기질 중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떤 점인가요
쿨한 거요.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겹쳐져 있어요. 두 개의 원이 겹쳐진 꼴이라 끝없이 참견하고 물으며 교집합을 만들려고 하죠.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라지만 지나친 면도 있고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짜증나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고양이와의 관계는 완전히 떨어진 것도 아니고 원 두 개가 딱 접점으로 붙어 있어요. 쿨하고 깔끔하죠. 남에게 신경을 안 쓰지만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고양이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라고 하잖아요. 원할 때 와서 몸을 쓱 비비고 간다든지 하는데 서투르긴 해도 강요나 억지가 없죠. 그런데 개는 좀 달라요. 언젠가 TV에서 봤는데 반려견 훈련사인 강형욱씨가 성질이 못된 개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설명하면서 그러더라고요. 그 개 주인이 개를 항상 안고 산대요. 뭘 하든 안고 다닌 거죠. 개는 거기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거부하지 못하고 견디면서 딴 데 푸는 거라고요. 고양이는 절대 그렇게 못해요. 싫으면 싫다고 확 나가버리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고양이적 기질이 있다면요
우리는 주위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타인에 대한 의존도도 지나쳐요. 자기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면 포기하거나 조정하면서 당당하게 주장을 펼치길 주저하죠. 집단주의도 강해서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이나 색깔들을 쳐내려고 해요. 건방지다, 싸가지 없다 이런 식으로 매도하죠.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는 싫고 좋은 걸 확실히 하는 당당한 인간과 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가장 좋을 때는 언젠가요
혼자가 아닌 느낌, 일종의 동료애를 느낄 때가 있어요. 새벽에 혼자 글을 쓰고 있을 때 고양이도 깨어 있다는 것을 느끼죠. 제가 안으면 절대 오래 있지 않지만 자기가 원할 땐 가슴께로 올라와 식빵자세로 꽤 오래 앉아 있어요. 그때 가르릉 소리를 내요. 고양이의 가르릉 소리는 우주를 움직이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라고 하잖아요. 그럴 때면 묘한 안정감이 드는데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걱정 마. 세계는 잘 돌아가고 있어. 네 일도 잘 풀릴 거야.”

그 위안을 독자들도 얻었으면 좋겠어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몇 가지 코드가 있는데 일단 애처럼 돌봐주는 수고를 의미하고, 두 번째 그 대가로 예쁘고 귀엽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걸로는 너무나 큰 것을 잃고 말아요. 고양이는 철학적 동물이고 고양이와 만나는 건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당당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고양이의 기질을 통해, 또 함께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고 깨달을 수 있어요. 애완묘가 아닌 반려묘죠. 고양이는 함께 살면서도 늘 존중해줘야 해요. 루비는 혼자 있고 싶을 땐 자기 화장실 뚜껑 밑으로 들어가버려요. 뚜껑 있는 걸 답답해해서 벗겨놨는데 언젠가부터 거기 들어가 숨어버리더라고요. 루비에게 그곳은 어린 시절 다락방 같은 곳이에요. 완전히 혼자이고 싶은 자신만의 비밀 공간이죠. 그래서 녀석이 거기로 들어가버리면 절대 열어보거나 하지 않아요. 타인을 존중하면서 나를 돌아볼 수도 있는 거죠. 저에게 루비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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