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전혜진

빈틈 많고, 자연스럽고, 변화무쌍한 삶을 꿈꾸는 전혜진이 올해 서른을 맞았다. 누구의 아내도 아닌 혜진의 리얼 라이프.

태양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와 고이 내려앉은 주근깨, 청바지에 넉넉한 티셔츠, 밀리터리 재킷…. 외모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전혜진이 어떤 라이프를 지향하는지 짐작이 된다.
“어렸을 때 육상도 했고, 야외 활동도 워낙 좋아해서 주근깨가 생겼어요. 시술 받는다 해도 또 생길 걸 알기 때문에 버티고 있어요. 주근깨가 기미로 보이는 날 시술 받으려고요. 화장도 거의 안 하고 맨얼굴로 다니는 게 편해요. 이게 나니까.” 바다 태양을 많이 보면 주근깨가 잘 생긴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취미는 서핑. 2년 전 남편 이천희의 권유로 시작은 했지만 별 재미를 못 느끼다가 요즘 들어 서핑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완전 매료됐어요. 능숙하게 파도를 타진 못해도 정말 재미있고 좋아요. 오늘처럼 맑은 날도 좋지만 흐린 날엔 또 다른 느낌이 들어요. 한낱 인간이란 작은 존재가 광대한 자연을 맞이할 때의 경외감이랄까. 바다 위에선 벅차도록 행복해요. 햇빛이 수면에 닿아 반짝이는 광경을 보면 절로 힐링이 되고요.” 요즘 매주 양양으로 서핑하러 간다는 그녀는 그간의 공백기를 건강한 취미로 해소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화보 촬영을 위한 헤어메이크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멀찍이 떨어진 소파에서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가 자신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한 스텝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소파 위에 놓인 세 개의 가방 중 빨간색 구찌 마몬트 백을 열려고 했다. “바로 옆 가방이에요.” 전혜진의 말에 주변에 있던 스텝들 모두 빵 터졌다. 큼지막한 프라이탁 크로스백 주인이 그녀였던 것. “평소에도 운동화에 청바지, 티셔츠를 입어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니까 편한 게 최고죠. 제 성격도 그다지 여성스럽지 않고 말괄량이 혹은 선머슴에 가깝거든요.”

 

성격도 그렇지만 쿨한 애티튜드를 선호하는 것 아닐까요
맞아요. 사실 걸리시보단 쿨한 게 좋아요. 남녀 구분하는 걸 싫어하고요. 저 또한 인간 전혜진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대하면 부담스러워지더라고요. 오롯이 한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어요. 해외에선 프라이탁 가방 하나 메고 자전거 타고 배낭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보기 좋더라고요. 저 또한 그런 라이프를 동경하죠.

자전거, 서핑, 캠핑 외에 또 다른 취미도 있어요

집에서 그림도 그려요. 사진도 찍어봤고요. 작품 쉴 때 에너지를 쏟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취미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만나다보니,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머무는 느낌은 없어요.
뭐든 오픈 마인드네요 그런 것 같아요. 여행을 가면 낯선 곳이라 기분이 좋고 설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흥미로워요. 대학 다닐 때는 지하철에서 사람들 관찰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호기심이 가장 잘 발동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일상이 늘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대한 호기심보단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서핑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거든요. 전 일단 해봐요. 적당히 빈틈 있고, 자연스럽고, 변화무쌍한 라이프스타일을 꿈꾸거든요.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지만, 함께 사는 부부는 좀 맞아야 하잖아요 남편도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더 좋아해요. 청바지에 티셔츠 입은 게 제일 예쁘대요. 물론 집에선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없이 늘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요. 가끔 그런 제 모습을 도촬해서 보여주는데, 저도 깜짝 놀라요.

뷰티케어는 어떻게 하나요
심하게 탔다 싶을 때 알로에 듬뿍 바르는 정도? 가끔 팩 하는 게 다예요. 피부과에도 다니지 않아요. 집이 경기도 광주라 멀리 병원 다니기도 힘들거든요.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운동하는 편이죠.

광주에 산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 인기던데
저희 집은 산 중턱에 있어요. 목동이라는 외진 곳이죠. 주변에 집도 몇 채밖에 없어요. 가끔 술 마시고 들어갈 땐 대리기사님이 이런 곳에도 집이 있냐면서 엄청 당황하세요.
밤엔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요. 원래는 가로수길에서 살았는데, 이사한 지 이제 3년째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 행복한 삶을 추구해요. 항상 무엇이 행복할지 생각하고, 어떤 게 행복했는지 돌아봐요.
그래서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회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내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후회하면 이기적이잖아요.

 

변화무쌍한 가로수길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한적한 곳으로 이사한 이유가 뭔가요
아파트 생활만 해서인지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었어요. 동물도 좋아하고요. 서핑 안 가는 날엔 집에서 할 일이 엄청 많아요. 마당에서 키우는 대형견이 두 마리, 집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거든요. 마음먹고 집 치우기 시작하면 하루가 금세 가요.

장은 어디서 봐요
태전동이라고 차로 10분 가면 동네 마트가 나와요. 식료품이 굉장히 저렴해서 애용하죠. 밑반찬을 준비해두지 않고 그때그때 바로 해먹는 편이거든요. 저녁은 닭볶음탕, 점심은 국수에 김치 등등 한 가지만 딱 해서 멋없이 대충 차려 내요. 편하게 살아요. 귀찮을 땐 밖에서도 사먹고요.

이런 동네가 있단 건 어떻게 알게 됐나요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죠. 부동산에서 한번 가보겠느냐고 해서 우연히 따라갔어요. 드라이브 가는 느낌으로 산을 올라가는데 거짓말처럼 집 몇 채가 있더라고요. 그때가 초여름이어서 푸릇푸릇한 산에 꽂힌 거죠. 만약 집을 구입하는 거라면 좀더 신중했을지 모르는데 전세니까 ‘일단 살아보자. 안 맞으면 나오면 되지’ 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살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저희 가족과 잘 맞아요.
전원생활이 좋은 점은 일단 자연이 가까이에 있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따져보니 하나같이 자연이 주는 것들이더라고요. 비 오는 날은 풀 냄새, 바람 불 때는 꽃내음에 감동을 받아요. 사계절 다른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지금 집이 참 좋아요. 딸 소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통학 문제 때문에 시내로 나오긴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싫으니 큰일이에요.

소유의 반응도 궁금하네요
이사 처음 왔을 땐 어렸으니까 멋모르고 “춥다”, “눈 맞기 싫다” 했어요. 요즘엔 바람 불면 “엄마, 좋은 냄새 난다”고 말해요. 그럼 전 “다른 친구들은 자연을 모르고 클 수도 있는데 너는 복 받은 거야” 해요. 나중에 소유가 커서 ‘그때 참 좋았다’고 생각하면 고마울 것 같아요.

교육 정보는 어디서 얻어요? 많은 엄마들이 커뮤니티도 하고, 모임도 하는데 아, 처음으로 말문이 막히네요. 사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유치원 선생님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전부거든요. 아이의 성향에 대해선 관심이 많지만, 교육에 대해선 글쎄요. 관심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요. 뭘 가르치기보단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하고 여행을 다니게 하고 싶어요. 저 또한 어릴 때 많은 걸 배워봤는데, 결국엔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단 걸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제 딸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모르고 자라는 것 같아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커요. 자연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요즘 같은 날씨에는 거의 양양에 함께 가요.
그렇지 않을 땐 마당에 돗자리 깔고 누워 있어요. 어떤 분들은 ‘먹고 살만 하니 그런 여유를 부린다’고 하시는데, 직업상 저희도 불안하고 초조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좋은 기운을 모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나요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누렸으면 해요. 제가 어릴 때도, 지금도 사교육 열풍은 여전하지만 저는 교육도 아이가 선택하게 하고 싶어요. 만약 소유가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하면 호화롭게 지원은 못해줄지라도 ‘너의 선택을 존중해’ 하고 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사교육에 돈을 쓰고 싶진 않아요. 그냥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지내고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사는 정도면 만족해요.

행복의 기준이 명확하네요
제 주변만 봐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된 케이스보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만약 학벌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달라졌겠죠. 제가 친하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들은 전자에 가까워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 행복한 삶을 추구해요. 항상 무엇이 행복할지 생각하고, 어떤 게 행복했는지 돌아봐요. 그래서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회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내가 원하는 대로 했는데 후회하면 이기적이잖아요.

대개 일찍 결혼하면 후회한다잖아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공백기에 일에 대한 목마름이 커졌을 때, 결혼 안 하고 일만 쭉 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그 삶도 무조건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이 남자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으니 이제부터 열심히 일하면 될 것 같아요. 돈 욕심보다, 오랫동안 꾸준히 연기하고픈 마음이 커요. 누구와 경쟁한다는 생각보단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롱런하는 게 목표죠. 육아에 올인하고 싶어서 잠깐 제동을 걸었다가 요즘 다시 시동을 걸고 있어요.

이천희씨와 아홉 살 차이지만 마치 친구처럼 보여요
남편은 굉장히 진지하고 듬직해요. 왈가닥인 저를 꽉 잡아주거든요. 남편은 외유내강, 저는 외강내유예요. 한 길을 가면서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관계라 좋은 것 같아요.

가치관도 잘 맞는 편인가요
생각부터 라이프스타일까지 잘 맞아요. 하지만 성격은 좀 달라요. 전 좀더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라 포커페이스가 안 되고, 남편은 차분하면서 객관적이에요. 그래서 남편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편인데다 일과 가정이 딱 구분되는 타입이에요. 반면 전 누굴 대하든 한결같고요.

주말엔 세 식구가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요즘 같은 날씨에는 거의 양양에 함께 가요. 그렇지 않을 땐 마당에 돗자리 깔고 누워 있어요. 어떤 분들은 ‘먹고 살만 하니 그런 여유를 부린다’고 하시는데, 직업상 저희도 불안하고 초조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좋은 기운을 모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양양에서 만나는 분들도 대부분 여유가 넘치기보다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취미를 즐기면서 좋은 에너지를 담아가려 노력하더라고요. 저희도 비슷해요.

 

멋진 집에 살아서일까, 이천희씨 본가가 굉장한 부자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전혀요. 저희도 다르지 않아요. ‘이번 달은 좀 빠듯한데’ 싶은 때도 있거든요. 사실 돈은 있어도, 없어도 늘 걱정하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저 스스로 대견한 부분이 있어요. 지나치게 현실적이면 버겁고 힘들 수 있는데, 전 딱 오늘내일만 생각하는 타입이라 돈에 크게 스트레스 받진 않아요. 허튼 데 돈을 쓰지도 않고요. 저희 부부가 관심 있는 쇼핑 아이템은 대부분 서핑슈트나 보드예요. 물론 가격이 꽤 높기 때문에 돈을 열심히 모아야 하지만요.

종종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질까’가 삶에서 꽤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물론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라 ‘신경 좀 쓸걸’ 잠깐 생각도 했지만, 전 최신 아이템엔 관심이 없어요. 선물도 더러 받는데다 이미 가진 옷도 많거든요. 그래서 매년 한 번도 안 입은 옷을 지인에게 다 풀어요. 집은 그야말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죠. 자전거와 각종 장비들. 쇼핑도 귀찮고 백화점도 싫어요. 장보러 갈 때도 필요한 것을 메모해 그 코너만 가요.

서른이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역 배우로 많은 선배님들 속에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때 너무 완벽하고 무게 있는 어른보다는 조금 빈틈이 있어서 후배들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선배님들이 좋더라고요. 저 또한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일에 집중할 땐 집중하고,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요. 지금을 잘 보내야 60대까지 길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만나보니 빈틈이 많기보단 속이 꽉 찬 것 같은데요
하하하. 배우 전혜진과 개인 전혜진의 삶을 정확히 구분하고 싶은가봐요. 워킹맘이 출근해서 일에 집중했다가 퇴근한 뒤 집에서 아기를 돌보듯요.
저 또한 일하는 순간에는 배우로서 한없이 몰입하고, 일상에서는 나 자신을 찾고 싶죠. 좋은 작품을 만나면 설레고 기운을 받지만, 일상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해요. 단지 규칙적인 삶이 아니니까,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즐겁게 보낼까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요즘 편해요. 친구들은 이제 막 결혼해서 커리어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결혼할 땐 한창 일할 나이라며 말리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땐 ‘결혼하면 왜 일을 못하지?’ 하고 생각했어요. 이젠 다시 날개를 달고 ‘전혜진이 결혼해도 괜찮네’ 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배우 전혜진도, 개인 전혜진도 아주 멋져 보이는데요

내조만 잘하는 얌전한 사람으로들 많이 오해하는데, 정말 아니거든요. 앞으로 저의 리얼 라이프를 많이 어필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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