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판사님

엘리트 중의 엘리트, 재판정 가장 높은 법대에서 판결을 내리는 판사. 공정한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을 하지만 왠지 우리와는 딴 삶을 사는 사람들인 듯 위화감도 들고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았다. 알고보니 정의롭고, 따뜻하고, 친근감 넘치는 판사님들은 이미 우리 곁에 많이 있었다. 세상이 다 아는 프렌들리 판사들을 만났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감정 소통가
변호사 서기호

그의 이름 석 자가 유명해진 건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전담부서를 만들어 심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당시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였던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방통심의위는 나의 트윗을 적극 심의하라. 심의하면 할수록 감동과 훈훈함만 느낄 것이고 촌철살인에 감탄만 나올 것이다. 앞으로는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을 먹게 되니.”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정치적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보수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판사 연임에 실패했다. 소위 ‘사상검열’에 따른 ‘부당해고’ 격으로 법복을 벗게 된 그는 야당 의원으로 정치권에 몇 년 발을 담갔다가 최근 변호사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판사 재임용에는 실패했지만 하나는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소통했다는 것이죠. 사실 판사 재직 시절에도 ‘감정’ 문제에 대해 늘 고민했어요.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판결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습니다만, 감정적인 부분에서 비롯된 사안이나 심리적 문제 때문에 생긴 오해는 심리적인 부분으로 들여다봐야 하거든요. 따뜻한 마음으로 진행하되, 결론은 냉정하게 내려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이제 또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됐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좀더 따뜻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감정 표현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배려’, ‘보호’, ‘나눔’, ‘솔직함 등등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수십 장의 감정 카드가 붙어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이 감정 카드를 통해 관계 소통에 도움을 얻는다는 그는 퇴임식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비록 타의에 의해 법복은 벗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민판사’라는 수식어와 함께 법원 앞에서 새로운 법복을 입혀줬던 것. 그때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오명을 벗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은 서울대 법대 시절, 서울카톨릭대학생연합회 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구속되어 2개월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전력(?)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민법, 형법 체계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인 법학에 매료돼 판사를 꿈꾼 그는 2년 만에 사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판사 임용 후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부딪혔다. 재판을 하다보니, 각 사건마다 성격이 다르고, 소위 논리적 판단만으론 불가능한 감정적 영역에 한계를 느꼈다. 2007년부터는 법학이 아닌 심리학 서적을 주로 봤는데, 마셜 로젠버그 박사의 매슬로우 욕구를 발전시켜 만든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욕구가 갈등의 시작’이란 사실도 깨달았다고.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꿈이 생겼어요. 출세지향적인 리더들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보단 잇속을 챙기기 바쁘니, 정의로운 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며 여러 활동을 했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사회 지도층일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문화를 저부터 만들고 싶습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 궤변을 늘여놓는 법조인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을 위한 대변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 만연한 부조리와 맞서 싸울 것이다.

 

 

글 쓰는 현직 판사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 문유석

칼럼과 기고로 시작해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판사유감》 등 어느덧 3권의 책을 펴낸 문유석 판사. 법원 게시판과 각종 언론에 쓴 글이 화제를 낳으며 이름을 알린 문유석 판사. 활발한 저술활동을 바탕으로 책도 이미 세 권이나 펴냈다. 다양한 분쟁과 법정 풍경, 판사들의 속마음을 소설로 풀어낸 《미스 함무라비》,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또는 집단주의적 사회문화를 때론 날카롭게 지적하고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린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로 일하며 겪은 일과 사회 단면을 묶어낸 《판사유감》등이 그것. 최근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문 판사는 얼마 전 실검에도 이름이 올랐다. 바로 지난 1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전국의 부장님들에게 감히 드리는 글’ 때문이다.

“힘을 가진 사람은 뭔가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하라.”, “부하 여직원의 상사에 대한 의례적 미소를 곡해하지 마라. 그게 어려우면 <도깨비> 공유와 이동욱을 본 후 거울을 보는 요법을 추천한다”

등의 메시지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사며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젊은 세대와 소통이 단절된 꽉 막힌 판사 이미지를 부순 문 판사. 실례로 “판사님 비트 한번 주세요”라는 네티즌 댓글에 “둠칫 두둠칫”이란 회신을 보낸 그는 이미 10대~20대 사이에서 귀요미로 통한다.

 

 

무 소의 뿔처럼 달리는 독설가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이정렬

보통 판사를 하다 사회로 나오면 변호사 개업을 한다. 하지만 창원지법 부장판사였던 그는 현재 변호사 개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 발단은 이명박 정권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즘 본 신종라면’이란 제목으로 사진을 올리면서다. 사진은 꼬꼬면과 나가사키짬뽕을 패러디한 ‘꼼수면’과 ‘가카새끼짬뽕’. 패러디는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자를 견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그의 게시글은 논란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그 후에도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무죄 판결, 영화 <부러진 화살> 관련 재판 합의과정 일부 공개 등의 판결로 보수집단의 화살을 맞으면서 건강상 이유로 2013년 사직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 후부터다. 판사 퇴임 후 그는 변호사 등록 신청을 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변호사 등록신청 거부를 당한 것. 그래서 그는 현재 한 법무법인 사무장 신분이며, 문재인을 지지하는 더불어포럼 공식 팟캐스트 방송인 ‘달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날린다.

 

 

 ‘김영란법’ 만든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법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김영란

작년 우리 사회의 큰 이슈였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해 만든 법안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이 법은 문화를 바꾸기 위한 겁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접대문화, 청탁문화를 바로잡고 싶었어요. 부패지수가 왜 안 바뀌나 생각해보니 사소한 것부터 바꿔야 할 것 같더라고요.”

더 많이 비판하고 토론하는 사회가 되길 원한다는 김영란 전 판사는 동네 어른들 사이에도 당연시되는 부탁과 전화 등의 관습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소한 변화로 시작한 문화 개혁이 사회의 큰 부패도 잡을 수 있다는 그의 바람처럼, ‘김영란법’ 시행 1년이 채 안 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패의 사슬을 끊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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