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깊은 숲 탐방기

나무 사이로 바람이 수런거리는 곳, 숲. 도시라는 물질문명이 제공하는 편리에 익숙해져 잊고 있던 숲이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손꼽히는 울진 숲을 돌아봤다.

울진 금강소나무 숲

깊은 숲
서울을 출발해 네 시간쯤 달리면 영주 시내를 지나 다시 울진으로 향하게 된다. 봉화 같은 낯익은 이정표를 보며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통과하면 어느새 주위 풍경이 달라졌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소나무가 고속도로 양옆 산자락에 모습을 드러낸다.
금강송이라고도 하고 금강소나무라고도 부르지만, 금강소나무라는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부터 울진, 봉화, 영덕과 청송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가 일반 소나무와 달리 줄기가 바르고 마디가 긴 것을 보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가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다만 금강소나무는 반듯한 만큼 결이 곱고 또 단단해서 목재로 켠 뒤에도 크게 휘거나 트지 않는다는 장점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건축재로 꼽혀왔다.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는 금강소나무 집단 분포지로 숙종 때부터 지정 관리가 되었고,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뒤 2001년에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됐다.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다가 2009년 개방한 뒤로는 매일 제한된 인원만 예약을 받아 탐방할 수 있다. 탐방 때는 숲 인근 두천리와 소광리 주민들이 숲해설가로 안내를 나선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첫 번째 숲길로 길 양옆의 경사면에는 키가 큰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금강소나무숲은 총 2274헥타르에 이르는 광활한 군락지에 수령 30년에서 500년을 넘긴 금강소나무 160만여 그루가 들어서 있다. 곧은 소나무가 빼곡하지만 산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부상들이 미역과 소금 같은 일상용품을 바리바리 싸서 보따리로 또 등짐으로 이고지고 이 길을 오르내렸다. 고개에는 ‘바릿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9년 이후 순차적으로 개방된 탐방로는 총 4개 구간. 탐방시간과 난이도가 제각각이어서 4시간짜리 구간부터 7시간이 걸리는 구간까지 있다. 그중 3구간에서는 수령 530년을 넘긴 보호수 ‘오백년 소나무’와 수령이 350년을 넘기고 높이가 35미터를 넘는 ‘미인송’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오를 수 없을 만큼 가파른 높이에 있는 ‘못난이 소나무’도 이 구간에 있다.

 

못난이 소나무도 수령이 530년이 넘는다. 탐방로에는 산딸기와 비슷한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는 산딸나무와 초여름에 하얀 꽃을 피우고 높이 8미터까지 자라는 마가목도 보인다. 둘 다 붉은 열매가 열려 야생동물의 먹이가 된다. 가지가 층층으로 달린다고 해서 이름도 층층나무인 나무도 소나무와 섞여 자란다. 금강소나무숲은 숲이 깊어 사람이 찾아오기가 어려운 만큼 자연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소나무라서 정감이 가지만 그래서 더욱 영겁의 기운을 풍긴다. 가까이하기에 쉽지 않은 그래서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숲이지만 잊히지 않는 숲이다.

 

 

숲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든 풍경

울진이라는 이름이 낯선 연유를 되짚다보니 오래전 반공의 시대에 때로 실체가 없는 간첩이라는 망령으로 뉴스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사람을 위압하는 거친 바위 계곡과 검은 숲, 굽이굽이 휘몰아치듯 돌아가는 산길은 모퉁이 돌아 어디선가 음습한 소문이 기다릴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불영계곡을 걸어가면 깊숙한 곳에서 그림처럼 펼쳐지는 불영사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사찰은 단정하고 검박하고 온화한 느낌이 아름답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730호로 조선시대 후기에 지어져 1981년 보물로 지정된 응진전 등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옹골찬 모양새를 하고 있다.

 

산에 둘러싸인 공간을 현명하게 나누고 조밀하게 배치한 모양새가 한눈에도 세련돼 보인다. 연초록과 진초록, 온통 초록의 공간에서 갑자기 한 무더기의 철쭉이 달려들어 눈길을 끌기도 한다. 금강소나무숲을 배경으로 널따란 밭을 경작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은 자연 앞에 사람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확인시켜준다. 물론 이 숲 가운데서도 사람은 설 자리를 찾아내고 자기 몫을 쟁취해내는구나 하는 경외감도 뒤따른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농부의 일상이 외부인의 눈에는 감탄할 만한 성취가 된다.

 

숲을 나와서

오후의 후포항에선 붉은 대게를 사러 온 중년들이 어슬렁거린다. 오후까지 팔리지 않고 남은 붉은 대게가 햇살을 받아 더욱 투명하고 붉다. 항구에서 가까운 전망대에 올라볼 수도 있지만 바로 옆 등기산 공원이 백배는 더 낫다. 해일 피난 시설에서 조금 더 올라가 언덕 정상에 오르면 후포등대와 함께 너른 평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항구 쪽을 봐도 너른 바다 쪽을 봐도 좋지만 너무 오래 머물렀다가는 저녁을 놓치기 십상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인데도 후포의 식당들은 8시면 문을 닫는다. 추천할 만한 곳은 후포리 백년식당(054-701-1336). 가성비 좋은 대게정식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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